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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봉기 May 08. 2022

닥터 스트레인지와 이블데드, 행복하지 않은 영웅

브루스 캠벨에서 오징어게임이어진 추억

북한 미사일과 후배의 아이템 문제로 사실상 반근무하며 보낸 휴일이 아깝기도 하고 해서 심야영화를 봤습니다. 사실 북한이 아무리 미사일이 많아도 낮에 쐈으면 적어도 하루 이틀은 더 안 쏠 것이기도 했고....


해서 2년 여만에 마블영화를 극장에서 팝콘 먹으며 봤는데 역시 그 자체가 그동안 유예됐던 돌아온 일상이었습니다. 비록 팝콘 사는 줄이 어마어마해서 20분 가까이 기다린 덕에 영화시작을 1분 정도 놓쳤지만...


근데 사람들이 왜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아니라 '대환장의 멀티버스'라 하든지 좀 이해는 됩니다. 이 영화의 멀티버스 개념이 어려워서는 아닙니다. 양자역학적 의미의 분기되는 우주인지, 한 세계로 묶이는 지역우주가 전체 공간안에 무한히 많다는 무한우주 개념인지 그런 것도 구별 안해도 되는 말그대로 누구나 들어는 본 정도의 멀티유니버스 개념만 대충 '그런거지'하고 가면 됩니다.


**여기서부턴 아주 약간의 스포가 있음**


그보다는 애플티비의 티비시리즈 완다비전을 안 본 사람에겐 지구를 구한 선한 영웅 '완다'가 왜 갑자기 여러 우주를 넘나드는 초극악, 말 그대로 우주 대마녀가 돼서 무수한 영웅들을 집단 학살하는지가 도통 알 수 없게 됩니다.그냥 아이들을 찾아 행복을 누리고 싶어서란 이유가 나오지만 그런 감정적 이유가 바로 와닿지는 않죠. 그리고 완다비전에서 보여준 '아이들과 되살아난 비전의 비밀'이나 그 과정에서 완다의 '흑화'과정을 알아야하니까요.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건 그전 사전정보가 없더라도 이 영화안에서 확실한 이유와 설명이 돼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겁니다. 극적인 인물의 변화와 사건 전개의 인과성이 좀 느슨하고 그러다 보니 갈등구조가 날카롭지 못해서 스토리가 긴장감이 그전 작품들보다 좀 덜한 감이 있습니다. 완다비전을 다 봤더라도 그런 점에서 '환장의 멀티버스'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반가왔던 건 저 '브루스 캠벨'의 등장. 역시 어이없는 엑스트라 급이지만 거의 유일한 개그캐릭터였습니다. 샘 레이미의 페르소나로 '이블데드'에서 잘린 팔에 전기톱 붙이고 좀비를 썰던 그 모습은 대학시절 과학생회방에서 몇몇 이들과 같이 봤던 그 시절이후 뇌리에 잘 남아있습니다. 사실 '뭐 이런 쓰레기 같은 영화를 명작이라고 보라했나'하며 봤는데, 내 기억이 맞으면 이 영화를 추천했던 선배는 90학번 황동혁 선배였던 것 같습니다. 오징어게임에서 선 보인 피튀김의 미학은 여기서부터 싹수가 보였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건 샘 레이미 답게 이전 마블영화와 달리 아주 약간의 고어적 요소도 있고 뭣보다 '좀비'가 등장합니다. 마블의 확장성은 정말 끝이 없긴 합니다.


아무튼 지구를 구한 수퍼영웅들도 결국 행복하지 못하고 그래서 행복을 찾다 세계를 거의 작살낼뻔하다 겨우 다시 구하지만 또 그래서 더 행복하지 않게 됩니다. 사실 유구한 전통을 가진 영웅설화는 모두가 이런 구조죠, 영웅이 온통 생고생해가며 세계를 구하지만 자신은 그래서 더 불행해지는 희생을 하고 그래서 더 진정한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 억지로 영웅설화를 만드는 현대의 영웅 즉 독재자들은 자기 나라를 구했다고 선전하는 이야기를 만들지만 결정적 요소가 하나 빠지게 되는데 자신들이 불행해져 희생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없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아무리 핵과 미사일로 미국과 남조선의 호전세력을 물리치고 북한을 구했다는 극적 영웅설화를 만들어내도 우리가 보기에 허망한 건 그가 영웅답게 희생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북한 민중들이 희생해서 김정은이 사치스런 독재자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도 마찬가지이죠.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장의 멀티버스'에서 시작된 상념. 북한 미사일 보다는 역시 이런 영화 이야기가 그래도 '이야기거리'가 됩니다. 방송사 보도국엔 요새 잘 있지도 않지만 그래도 문화부기자가 되고 싶은데 현실은 다들 잘 몰라 관심없는 외교안보팀의 역시 잘 모르는 팀장이니 나 자신 역시 영웅은 아니지만 행복하진 않은 듯 하네요.


그리고 추가로 말하면 완다비전은 시청을 추천할 만한 시리즈라 생각합니다.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미국 시트콤을 패러디해가면서 진행되는 형식이 아주 이색적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언제나 사소한 갈등이 해소되고 '화목한 결말'로 끝나던 그 시트콤의 이야기구조가 바로 이 '완다비전'의 핵심요소고 그 자체의 주인공 완다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야기 구조가 됩니다, 단 그대로가 아니라 거꾸로 비틀어서죠. 그런 화목한 결말인 정상성을 아주 비정상적으로 추구하는 완다의 '변질'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이끄니까요, 또 그게 어찌보면 이번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사실상 주인공인 완다로 바로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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