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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비 Aug 05. 2020

노견 까비, 동물병원 다닙니다

Scene1. #응급실1


12월 25일 01:46




크리스마스 새벽 서울대학교 동물병원 응급실. 고요하다. 의료기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대기실에 앉아있자니 어쩐지 차분해진다.

지구 상에 모두가 사라지고 우리 가족만 대기실 의자에 남은 것 같은 기분.

새벽의 아무도 없는 대학 동물병원은 이렇게 깨끗하고, 아무도 없다.



이렇게 오도카니 앉아있다 보니,

당연한 생각이 남다르게 떠오른다.


'사람은 진짜 밤에 자는나.'
카페와 식당은 24시간 운영하는 시대. 편의점이 아니어도 마트에서 새벽에도 장 보는 시절인데도, 다급할 땐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밤에는 정말, 도움을 받을 길이 없다.

잠옷에 점퍼만 대충 걸치고 나온 우리 가족 세 명 너머, 또 다른 후줄근한 복장인 사람 넷이 있는 가족이 있다. 아들 같은 사람은 말없이 핸드폰 게임을 한다. 어머니와 두 딸로 보이는 나머지 셋이서 무심한 듯한 대화를 이어간다. 딱히 심각해 보이지 않는 표정들다.

응급실 수의사 손에 우리 집 멍멍이, 까비를 혼자 들여보내고 넋 놓은 우리 가족이 이들을 멍 때리고 쳐다본다.

곧이어 수의사가 진료실에서 나오고, 오매불망 소식을 기다려 벌떡 일어난 우리 가족은 수의사가 아니라며 손을 저어 엉거주춤 자리에 앉는다. 수의사는 저쪽 가족을 향한다. 그리고 곧 접수대 쪽으로 불러 모았다. 쪼르르 모여드는 후줄근이 가족.


"오늘 밤을 못 넘길 수 있습니다"
라며 동의서 서류를 전하는 수의사.



후줄근이 가족 넷 모두 동시에 울음이 터진다. 나직했던 수의사 목소리에 우리 가족도 모두 왈칵 눈물이 고였다.


후줄근이 가족은 갑자기 전화를 하고, 화를 내고, 더 크게 울고, 당황한 듯 이리저리 방황했다. 쳐다보고 있기 힘들어 고개를 돌렸다.

"못 보겠다, 우리 나가 있자"며 울던 엄마가 말했다.

한창 추웠던 한 겨울,

생판 본 적 없는 두 가족은 서울대학교 동물병원 응급실에서  한마디 나눠보지 않고도 한 마음이었다.   
"의술이 발달했다면서요, 동물은 안 돼요?"

부질없고 미련 넘치는 마음은 응급실 대기실 허공에 부유한다.

'강아지는 원래 갑자기 가요.'라던 동네 수의사의 말이 떠오른다.



삶과 죽음은 이렇듯 종이 한 장 두고
서로의 얼굴을 맞대어 응시했구나...
황망한 마음은 아픈 가족이 동물이라, 더 무겁다.
부고도 실리지 않는 녀석들.
길 밖에 친구들은 추운 겨울,
더 조용히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동물병원 밖으로 나오니, 소복이 눈이 쌓여 오고 있었다. 내려앉은 눈따라 마음도 같이 차곡차곡 내려앉는 밤이다.


개 키우는 사람, 다 같은 마음.

후줄근이 가족이 자리를 비운 텅 빈 대학 동물병원 응급실 대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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