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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비 Aug 09. 2020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삶을 내려놓았던 서른 살 여자, 진짜 죽을 뻔했던 프랑스 여행기 11


(여행 3일 차-후반전. Le-Puy 기차역.)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을 보지 못한 건 이유가 있었다. 나중에 검색을 하고서야 알았다. 일요일은 프랑스에서는 쉬고 노는 날이 아니라 진정한 ‘주일’이었던 것이다.

웬만한 가게들도 영업을 하지 않는다. 파리에서 가장 큰 백화점인 ‘쁘렝땅(Printemps)’도 일요일에는 쉬었다. (바뀌었는지 지금은 구글 지도로 확인하니 일요일에 영업을 한다.) 우리로 치면 관광객들로 붐비는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이 일요일에 문을 닫는 셈이다.


진정한 일요일 휴식을 취하는 프랑스 문화에 1초 감탄했다. 곧 여기까지 와서 대성당도, 생 미셸 성당도 못 보고 가는 나의 멍충미를 또 1초 잠깐 생각했다가, 그냥 말았다.

반성은 하지 않았다. 일은 원래 다 그런 법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여행이라고 다를 것 없으니.



내가 그토록 노력했지만 세상은 내게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다. 퇴근하고 공부하고, 퇴근하고 스터디 가고, 주말에 다들 놀러 가는데 나는 또 스터디 가고. 몇 번이나 뜯어고친 자기소개서 100여 개가 넘게 저장된 나의 노트북은 엄마가 모르고 포맷을 해 복원도 안 되었다. 온몸에 피를 흘리며 달려간 면접장에서 나는 그저 호기심에 한 번 방송사를 찔러본 심심한 회사원일 뿐이었다.


그때 내게 가장 한이 되었던 말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메시지.

거짓말이다.


간절히 바라안 이루어진다.



심심한 마음으로 뒤돌아섰다. 시간은 오전 10시도 안 되었는데 중세도시는 너무 고요하다. 빌빌대던 핸드폰은 이제 배터리가 거의 없음을 쿨럭거리며 알려주었다. 밤새 충전했는데 한 시간도 안 되어 20% 남았으니 당시 내 핸드폰의 상태를 알만하지 싶다. 핸드폰이 마지막 기력이 있을 때 구글 지도를 이용해 기차역으로 가야 했다.


행사 같은 것이 있었는지, 골목을 가리는 가림막 텐트가 사진 찍는 데 원망스러웠다.


생 미셸 성당에서 내려오니 공원 같은 곳이 나왔다. 고요한 시골 공원의 아침을 만끽하고 걷는데 뒤에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지 오늘 마주한 건 사람은커녕 멍멍이 한 마리였는데. 뒤에서 들리는 엔진 소리에 신경 바짝 섰다. 엔진 소리는 멀리서 작게 시작하더니 가까워오는지 점점 소리가 커졌다. 남자 목소리가 들리는데 한 명이 아니다! 나는 긴장했다.



어쩌지, 어떻게 하지. 핸드폰은 이제 전화를 걸기만 해도 꺼질 수 있다. 여기서 뛰기 시작하면 더 따라오겠지? 아니 뛰어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뒤돌아보자니 두렵고, 나는 매고 있던 크로스백 가방만 더 꼭 쥐었다.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부우웅 하는 엔진 소리는 바로 뒤까지 왔고, 푸르르르 하는 소리를 내며 곧 나를 지나쳤다. 엥. 뭔가 김 빠지는 소리와 함께 내 앞에 보인 것은 오토바이에 앞뒤로 탄 백인 남자아이 둘. (말이 아이들이지 사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더 어려 보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많이 낡아 보이는 오토바이는 속도가 점점 늦어지더니 100미터 정도 앞에 가서 멈추었다. 나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후진할 건가? 오면 어디로 가야 하지? 두 백인 남자아이들은 오토바이에서 내리더니 갸웃거리며 오토바이를 살폈다. 낡아 보였던 오토바이 여기저기를 점검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참을 연구하는 남자아이 둘을 나는 스쳐 지나갈 수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혼자 낄낄거리고 웃었다.

어쨌든 그래도 안심했다.




기차역에 가까워 올 즈음 Le-Puy의 중심가가 나왔다. 세상의 모든 예쁜 색은 다 가져다 벽에 바른 듯한 집과 가게가 꽉 찬 거리가 나왔다. 왜 프랑스 사람들이 이곳에 휴가를 온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프랑스에서 개인 의류 쇼핑몰을 한다면 여기서 찍을 것 같은 알록달록한 느낌.

가게는 모두 문을 닫았고, 빵 가게만 하나 열려있었다. 그마저도 오전 11시까지만 한다고 문에 적혀있었다. 커다란 개를 데리고 나온 남자가 빵 가게에서 나왔다. 개는 내가 반가운 지 잠시 내 주변에 있다가 주인에게 돌아갔다.



기차역 근처에 다다랐다. 중심가라서 그런지 사람 몇 명을 보았는데, 노숙인이거나 술을 찾는 듯한 취객이었다. 길거리에 쪼르르 앉아 모두가 하나같이 지나가는 나를 보며 프랑스어로 자기들끼리 대화했다. 아마 보기 힘든 동양인 여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러 더 못 들은 척하고 지나다.



기차는 12시 출발이었다. 아직 1시간 30분이 남았고 기차역 지붕에는 눈이 쌓이고 있었다. 역에는 역무원 한 명과 대기 중인 승객 한 사람을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이른 시간으로 예매할 걸’ 후회했지만 이 핸드폰 배터리로 다시 예매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기차역 구경도 5분 만에 끝나고, 멍 때리고 앉아있는데.





신호가 왔다.


사실 내내 추웠다. 11월 말에 프랑스에서 첫눈을 맞을 줄은 몰랐지만, 정말 내내 으슬으슬 떨었다. ‘한국에서 11월에 이렇게 추운가?’ 나는 내복에 두터운 니트에 롱 패딩까지 다 챙겨 입었지만 발이 그렇게 시렸다. 어렸을 때는 배가 아프면 발이 시리고, 발이 시리면 배가  아프고는 했다. 그리고 배가 아프면 바로 화장실 직행이었다. 되게 오랜만에 발이 시렸다. 바로 옆에 있던 화장 문 앞에 섰다. 길거리마다 모든 가게가 닫혀있었기 때문에 기차역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료다.

문만 보이는 화장실은 1.2유로를 지불해야 한다. 그것도 코인으로.


유럽에서 공중화장실이 유료인 건 알고 있었지만, 나를 당황케 한 것은 막상 따로 있었다.


거스름돈도 없다는 것.

그리고 더 낼 수도 없다는 것.

즉 정확하게 1유로 코인 한 개와, 10센트 2개를 넣어야 하는 것이다.


내 주머니에는 코인은커녕 2유로짜리 지폐도 몇 장 없었다. 젠장. 괄약근에서 신경을 타고 올라오는 긴급하다는 전기 신호는 두뇌에 여유를 주지 않았다. 급하게 둘러보니 텅 빈 기차역에 커피 자판기가 있었다. 빙고!


우아한 에스프레소 자판기


그러나...

커피를 즐기는 종주국 소도시의 자판기는 우아했다. 우리의 200원짜리 싸구려 믹스커피 같은 것은 없고 가장 저렴한 에스프레소가 0.9유로. 계산을 하니 2유로짜리만 가진 나는 1잔으로는 화장실에 갈 수가 없다!




비장한 마음으로 2잔을 내렸다. 4유로를 썼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에스프레소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나였다. 아무도 없던 기차역 벤치에 2잔의 에스프레소를 곱게 내려놓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와...’

프랑스 시골에 와서 처음 보는 놀라울 정도로 깨끗한 공중화장실. 르 퓌 기차역의 공중화장실은 모던과 깔끔함으로 무장했다. 그렇게 깨끗한 공중화장실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잠시 요란한 소리와 같이 찾아오는 내 마음의 평화.



그러나 3일째 발이 시렸던 내게 평화는 길지 않았다. 프랑스에 오자마자 Le-Puy로  화장실 갈 틈이 없던 내게 대장 선생님은 천둥 같은 철퇴를 두 번 더 내렸다.



처음에 남았던 2.2유로로 한 번 화장실을 이용하고, 다시 맞은 철퇴에 나는 또 에스프레소 2잔을 더 내렸다.

그제야 내게 강 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벤치에 멍하니 앉아 내 옆에 새초롬하게 앉아있는 고급스러운 에스프레소 4잔을 바라봤다.

나머지 세 잔은 어쩔 수 없이 버리고 한 잔만 먹어보았다. 자판기 커피가 커알못인 내가 먹기에도 진짜 맛있었다


거스름돈을 뺀다면 화장실 가는데 8유로를 썼다. 싸는데 만 원이 들었다.



싸는데 만 원이 들었다!!!

싸는데 만 원이란 말이다. 흐윽흐윽.


아, 너무하다. 유럽이 이런 걸로 짠 줄은 진즉 알았지만. 여행에 식비도 아끼는 내게 응가로 만 원을 내게 하다니. 한국에서 급할 때 여기저기 화장실을 찾아다니지만 돈을 내진 않았으니, 세금 낸 보람을 갑자기 느낀다.



장도 빠지고 영혼도 빠져가는 내 옆에 할머니와 꼭 그만큼 나이가 들어 보이는 멍멍이 한 마리가 벤치에 앉아있었다. 집에 있을 까비가 떠올라 몇 안 되는 아는 프랑스어로 말을 걸었다.

눈빛이 촉촉하게 이뻤던 이름 모르는 멍이다. 잘 지내고 있을까.


‘Beau.’ (예쁜, 아름다운)

‘Beau?'

할머니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만져도 되겠냐는 눈짓에 끄덕여주셨다. 이름이 뭐냐고 영어로 물었지만 못 알아들으시는 눈치였다. 얌전했던 멍이는 내게 사진 두 장을 허락해주고 이내 기차 타러 가는 할머니를 따라 자리를 떴다.


왠지 웃고 있는 것 같다.


좀 더 있다가 나의 기차도 도착했다. 객실 내에는 여행하는 멍이들이 꽤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Le-Puy의 상징인 성모 마리아상이 창 너머로 멀어져 갔다. 피곤했던 나는 객실에서 넋을 놓았다. 멍하게 파리가 가까워오는 프랑스의 산과 들을 바라보았다.


Le-Puy의 청년들, 안녕.
성모 마리아 상 잘 있어~


파리 리옹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해도 지지 않은 이른 오후에 집으로 갔다.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정신을 잃었다.





[살짝 철 지난 프랑스 여행 꿀팁]

1.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프랑스에서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코인을 꼭 챙겨야 합니다. 길어져 덧붙이진 않았지만 돌아오던 중부의  리옹역에서도 화장실은 0.7유로를 받았는데, 1유로를 내도 거슬러주지 않았습니다. ‘나 급하니까 그냥 1유로 줄 테니까 받아.’라고 해도 그런 것도 없습니다. 무조건 0.7유로를 딱 맞추어 내야 화장실 입구로 들어가는 문을 열 수 있더군요.


2. 프랑스는 기차뿐 아니라 지하철에서도 반려동물들이 많이 탑승합니다. 한국은 안내견을 제외하면 탑승 시에 케이지나 가방을 이용해야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반려동물들이 걸어 다닙니다. 주인 옆에 앉은 대형견들도 꽤 많이 보았는데 다들 안정되어 보였습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제게는 무척 부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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