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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까비 Aug 09. 2020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삶을 내려놓았던 서른 살 여자, 진짜 죽을 뻔했던 프랑스 여행기 13


(여행 5일 차-전반전. 자끄팬티의 선물)



부지런이 여행객은 오늘도 제일 먼저 밥을 먹고 일찍 나왔다. 말이 첫 번째이지 테러 때문에 텅 빈 민박집에 아침밥 챙겨 먹는 사람이 거의 나 혼자 밖에 없었다. 사실 내가 아니었으면 우리 파리 이민 일주일째 주인장은 아침에 좀 더 잘 수도 있을 것이다.

오전 비행기로 나는 오늘 툴루즈(Toulouse)를 거쳐서 고대하던 카르카손(Carcassonne)으로 간다.

에어프랑스로 예약했던 파리-툴루즈 이동 국내선은 파리 오를리(Orly) 공항에서 11시 25분에 출발했다. 리옹에서 환승을 망해 본 걱정 많은 나 홀로 여행객은 공항에 9시 30분 전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였다.

숙소가 있는 파리 11구는 세계적 관광지인 파리 안에서도 비교적 현지인들이 많이 주거하는 편이라고 했었다. 새소리 들으며 아침 일찍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걷고 있으니 왠지 출근하는 파리 현지인, 아니 현지인은 조금 오버인 것 같고 파리 유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투척하는 주민이 보였고, 그 주변에 비둘기 몇 마리가 모여들었다. 바게트 빵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장바구니를 드신 할머니랑 눈이 마주쳤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사람 대여섯 명이 있었는데 다들 출근하는 현지인 같았다. 나도 관광객 티 안 내려고 버스정류장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 물론 핸드폰 수명을 고려한 것도 있었다.

183번 버스 거의 종점에서 시작했던 버스는 50분 정도 걸려 종점인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했다. 버스 창 밖으로 성당과, 마켓과, 아시아 식자재 상점, 헤어숍들이 있는 마을을 관통해 스쳐 지나갔다. 마을 마을마다 보이는 작은 성당들이 좋았다. 오를리 공항에 가까이 와서는 공항 주변다운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들판이 나왔다. 처음 보는 관광지 아닌 파리의 속 모습.

오를리 공항 근처에 다다른 183번 버스 운전석
흔들린 183번 버스 내부의 모습. 휘어지는 버스 너무 좋다.


오를리 공항에 빨리 도착할 줄 알았는데 9시 반 넘어서 도착했다. 대부분의 외항사들이 체크인을 출발 1시간 전부터 시작하는 것을 알고 있긴 했다. 그래도 10시가 넘어가는데 도통 체크인을 해줄 생각을 안 했다. 안내 멘트도 없고... 전광판은 잠잠. 그때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자니 테러 여파인 듯싶다.


게다가 내가 체크인 해야 하는 Orly 공항 서쪽 터미널은 183번 버스가 내려준 곳에서는 엄청 가야 하는 곳이었다. 당시 내가 느낀 거리감은 지금의 인천공항 1청사와 2청사 간의 거리처럼 느껴졌다. 공항 간 이동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 지 안내도 너무 없고. 스타벅스 직원과 공항 경찰과 많은 사람한테 물어 물어 물어서 겨우겨우 서쪽 터미널에 아슬아슬한 시간에 도착했다.

반가운 마음에 찍은 서쪽 공항. Ouest가 영어로 West에 해당하는 듯 싶었다.


체크인도 늦었고 테러 때문에 보안 통과도 한참이나 걸렸다. 안 그래도 공항에는 동양인이 워낙 없어서 걱정 많은 나 홀로 여행객은 게이트 찾는데도 허둥지둥했다. 다행히 보딩 타임을 15분 정도 앞두고 게이트에 도착해 화장실 다녀오고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에어프랑스 승무원과 기장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적기 항공사 승무원들은 무척 각 잡혀 보이던데, 이들은 무지 피곤한 인상이었다. 곧 게이트도 정비에 들어갔다. 지상직 승무원들이 탑승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에 에어프랑스를 비롯해 외항사들이 좌석 구역 구분해서 그 순서대로 탑승시키는지 몰랐다. 꽤나 뒤쪽 좌석이었던 나는 뒤로 밀리고 밀리고 밀려서 대기줄 거의 마지막 즈음서야 했다. 

내 차례가 되어 탑승권을 내밀었는데, 승무원이 여권을 물었다. 국내선 탑승이라 여권이 필요 없을 줄 알았던 나는 당황했다.

"Passport"
"I....do not have, right now......"
"You can't" (탑승할 수 없다고 손으로 나를 막았다)


여권을 안 가지고 온 건 아니었다. 다만 지금 그것을 꺼낼 수 없는 위치에 있을 뿐이었다.
어, 어떻게 하지? 출발 시간은 이미 넘었고 사람들은 대부분 다 탑승하러 들어간 상황이었다.

"I have my passport"
"?' (아까 없대메-라는 표정으로 차갑게 쳐다보는 승무원)
"I have"
"Where is it?"
"In my underware"
'???'
"Please wait for a minute, I go and get it"

승무원은 거의 쓰레기를 봤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쓰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애절한 표정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들이닥쳤다. 지금 와 생각하니 내 여행에 많은 일은 화장실과 연관이 많았구나...

실은 나는 제일 중요한 여권을 자끄팬티의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외국인이니 국내선 탑승에서도 여권이 필요한 지 생각을 못했던 나는 제일 안전한 곳에 고이 모셔두었다. 금액권이 큰 지폐와 여권은 자끄팬티가 금고였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고,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좀 오버라고 생각했을 법한 지상직 승무원에게는 '여권은 속옷에 있어요'라고 했으니 나를 제정신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헐레벌떡 여권을 들고 요란하게 뛰어오는 나를 보고 아까 그 차갑던 승무원은 활짝 웃어주었다. 사실 속옷에 있었던 여권임을 알았으니 성격에 따라 집어 들기 싫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승무원은 여권으로 나를 확인하고 탑승 게이트로 들여보내주었다. 나 스스로도 너무 급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내 뒤로도 세 명 정도의 승객이 더 들어왔다.

저질 체력인데 갑자기 이렇게 뛰고 난리 쳐서 비행기 타고 토하면 어떻게 하지 살짝 걱정했다. 탑승한 AF6118기는 3-3 좌석 라인의 비행기였고, 안이 무척 깨끗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징적이었던 것은 좌석이 무엇인가 되게 얇았다. 나름 세계적인 항공사 중에 하나로 알았는데 얇게 저민 플라스틱에 가죽만 씌워놓은 것처럼 가벼워 보이는 좌석이 좀 신기했다.

에어프랑스 AF6118 내부 모습


한 시간 정도의 이륙 시간 동안 음료와 간단한 샌드위치를 주었다. 말이 샌드위치이지 빵 두쪽 사이에 한 개는 오이, 한 개는 치즈를 껴 주었는데 '마요네즈라도 좀 발라주지 너무하네' 싶은 맛이었다. 식비를 아끼려고 뭐든 공짜로 나오면 챙겨두고 먹었던 나이지만 이 샌드위치는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지금 글을 쓰며 생각하니 '죽어도 상관없다'며 프랑스를 찾아 간 나는 생각보다 식탐을 부렸구나. 어이가 없다.

툴루즈 공항은 무척 크고 현대적인 건물이었다. 프랑스 여행 이전에 이탈리아 밀라노 말펜사 공항 여행으로 가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유럽, 특히 수도가 아닌 도시의 공항은 꽤 꼬질꼬질하고 낡았을 줄 알았는데 툴루즈 블라냑 (Blagnac) 공항은 세련된 인천공항 느낌이 났다. 승객들도 관광객보다는 비즈니스 트립을 온 듯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Toulouse-Blagnac 공항 내부. 유명한 렌터카 업체 Hertz가 보여 인상적이었다.


공항을 나와 미리 찾아봐두었던 를 찾았다. 마찬가지로 무척 현대적으로 생긴 에 나랑 다른 승객 한 명이 탔다. 툴루즈의 기차역인 툴루즈 마타뷰 (Matabiau)로 가는 전차.


는 툴루즈 마을 곳곳을 돌며 지나쳐 갔다. 빌라형 주택이 늘어섰고 시내 하천도 보였다. 도시가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사람이 살기 좋은, 쉽게 말하자면 좀 잘 사는 도시 같아 보였다.

지금 되돌아보면 툴루즈를 환승으로 지나쳐만 간 것이 좀 아쉽다. 처음 여행을 생각했을 때 툴루즈는 여행 장소로는 생각지 못했다. 저명한 비행기 제작사인 에어버스(Airbus)와 미슐랭 가이드를 탄생시킨 미셰린 타이어(Michelin)의 본사가 있고, 덕택에 산학 협력이 잘 되는 대학들이 있는 도시라고 알았다. 로마 문명지나 중세도시를 찾아다니고 싶었던 나는 몰랐는데, 툴루즈는 BC106년 로마군이 점령을 하고 톨로사(Tolosa)로 이름을 지은 요새도시 출신이다.



기차역에 도착해 얼마 지나지 않아 카르카손행 기차를 탔다. 1시간 정도 되어 내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까까손. 까까손"
영어로 읽어서 카르카손이지 프랑스 발음으로는 까까손이라고 읽나 보다. 묵직한 남성의 목소리로 기내 안내 방송이 녹음되어 있었는데, 그렇게 듣기에도 귀여운 이름이었다.



고대하던 카르카손,

아니 까까손에 왔다.






[살짝 철 지난 프랑스 여행 꿀팁]

1. 당시에는 프랑스 국내선이 생각보다 많이 검색이 되지는 않았는데요, 지금 보아도 파리-툴루즈 행은 에어프랑스가 대부분이네요. 저가항공사인 이지젯(Easyjet)도 있기는 합니다.
파리, 마르세이유, 리옹 다음으로 가는 프랑스 4번째 도시인데 왜 저가항공이 많이 나오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까다로워서 악명이 높은  아일랜드계 라이언에어(Ryanair)나 스페인계 항공사인 부엘링(Vueling)은 있을 줄 알았거든요. 아시는 분 좀 알려주세요.

2. 툴루즈는 사실 한국에는 도시보다는 화가 툴루즈 로트렉으로 더 유명할 것 같아요. 영화 물랑루즈에서 주인공들의 사랑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난쟁이 화가 툴루즈. 미술을 좋아하는 저는 툴루즈의 그림도 좋아하긴 하지만, 도시를 여행할 생각은 못했네요.
툴루즈의 별명은 '장밋빛 도시'입니다. 해 질 녘이 되면 카피톨리움 광장이 붉게 물든다고 합니다. 다녀오신 분들에게 전해 듣기로는 현대적인 건물이 많이 들어와 아쉬운 파리와는 달리, 매우 프랑스적인 느낌의 도시라고 하시더라고요. 다음번 프랑스 여행에서 꼭 가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3. 국내선 이용 시에 오를리 Orly 공항이 파리 중심부에서 거리가 좀 되어서 버스 탈 때 까르네(Carne) 티켓으로 못 가는 건가 걱정했습니다. Carne는 1회권 티켓(T-)을 10개 묶어서 조금 저렴하게 파는 것인데요. 파리 대중교통은 버스-지하철을 교차해 탑승해도 회수로만 구분해 문제는 없는데, 대신 지역별로 구분을 해요. 파리 중심부는 Zone 1, 조금 외곽은 Zone 2 등 이런 방식으로 구분을 해서 Zone 1에서 산 티켓은 Zone 2에서는 쓸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오를리 공항은 Zone 2가 아니었네요.



4. 유명했던 파리의 종이 대중교통 티켓인 Ticket-T는 작년 하반기부터 점차적으로 종이가 아닌 형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우리로 치자면 현금으로 지하철 탑승할 시에 쓰는 플라스틱 형태의 지하철 티켓으로 바꾸고 있는 것 같아요. 이용 방식은 충전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고, 발행은 예전과 비슷하게 Navigo (ATM)에서 가능하다고는 하는데요. 한 편으로는 런던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대중교통을 이용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프랑스는 전산 방식의 지불 방식이 대중화되지 않는지 의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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