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까비 Aug 12. 2020

노견 까비, 동물병원 다닙니다

Scene2. #응급실 2


12월 25일 02:30 am


후줄근이 가족이 조용한 곳에서 대화하는 것이 필요했는지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대기실 밖에서 들어오니, 까비의 진료를 부탁했던 응급실 수의사가 까비를 안고 나왔다.

"괜찮은 것 같은데요? 말씀하신 대로 휘청거리지도 않고... 일단은 응급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귀가하시고 아침에 오시는 것이 좋겠어요."

수의사 선생님이 까비를 대기실 바닥에 내려놓자, 까비는 조금 휘청대긴 했지만 대기실 바닥 여기저기를 킁킁대며 쏘다녔다.

그렇지만 우리는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도움받을 곳 없는 밤이 얼마나 무서운 지 알아버렸으니까. 다른 여러 동물병원을 거치면서 '잘 모르겠으니 일단 귀가해라'는 말을 얼마나 들었던가. 분명 조금 전까지 괜찮았던 것 같은데 갑자기 어딘가 안 좋은지 까비는 잠들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런 까비를 두고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옆에 앉아 같이 잠들지 못하던 밤은 너무 괴롭다. 까비에게 너무 미안하, 나의 무능과 무식을 탓한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이대로 까비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밤이 될 것만 같은.


우리는 아침 진료 시간까지 대기실에 그냥 기다리고 있겠다고 애절하게 부탁했다. 수의사 선생님이 급한 일 생기면 바로 부르라며 친절하게 진료실로 돌아갔다.



시간은 새벽 3시를 향해 가고, 전날도 밤을 새운 우리는 차라리 차에 가 있자고 했다. 전날도 온몸을 떨고 토를 하는 까비를 데리고 밤을 꼴딱 새웠고, 해가 뜨면서 동네의 큰 병원에 하루만 입원시켜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집에서 뭔가 위급함을 느끼고 결국 이 새벽에 서울대 동물병원 응급실에 들이닥친 길이었다. 사실 피곤함보다도 조금이라도 낯익은 공간에 있으면 까비가 조금 안정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었다.


요즘 같지 않게 크리스마스에 함박눈이 왔던 날 새벽, 까비를 담요에 꽁꽁 싸서 나와 차에 들어갔다. 차 안은 히터를 최대치로 켜도 금세 따듯해지지는 않았다.
"우리 아무래도 대기실이 그나마 따듯하지 않을까?"라며 다시 우왕좌왕 대기실로 돌아가던 그때.



까비를 안고 있던 엄마가 "어... 어.... 어...."소리를 냈다. 이상한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안겨 있던 까비가 목을 제치더니 이빨을 드러내고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까비의 검은 눈동자는 뒤로 넘어가 허연 부분을 드러냈다.

본 적 없는 까비의 기괴한 모습.  

"어..... 어.... 선생님!!!! 선생님!!!!!"
내가 소리를 지르며 응급실 비상버튼을 눌렀고 우리 가족은 울며 달려가 진료실로 곧장 들이닥쳤다. 문장으로 표현했지만 2초 채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어... 어... 어? 진짜네?!"
조금 전까지 까비 멀쩡한 모습을 보았던 수의사 선생님은 놀랐는지 중얼거리며 급히 까비를 받아 안아갔다. 다른 선생님들 급히 수술대 같은 곳으로 모였다.


까비를 넘겨 보내준 엄마는 다리에 힘이 풀 휘청거렸고 울었다. 순간적으로 엄마를 붙잡고 보니 동생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허망한 표정으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동생의 얼굴 옆선에 눈물이 비친 것도 같다.

진료실 안에는 아까 보이지 않았던 후줄근이 가족이 있었다. 둥그렇게 모여든 가족의 한가운데에는 아까 보지 못했던 작은 멍멍이가 수술대에 있었다. 그냥 보기에도 아파 보였던 녀석 주변에서 후줄근이 가족들이 울고 있었다. 마지막일 수 있는 인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진료실에 들이닥친 우리를 보고 또 같이 울었다.

 "아이고, 저쪽 아가도 안 괜찮은가 보네~어떡해요"



우는 엄마를 붙잡고 나도 울었다. 순간 수술대 쪽을 바라보는데 눈물방울에 까비가 맺혔다. 저 멀리 작게 수술대 위 까비가 눈을 뜨고 멍한 표정으로 앉아 수의사들을 둘러보는 것도 같았다. 이럴 때만 꼭 혼자 매정하고 차분한 나만 눈 부릅뜨고 까비를 보고 외쳤다.
"엄마, 까비 눈 떴어! 눈 뜬 거 같아!"


까비가 죽지 않았다는 생각에 순간 마음에 엄청난 빛이 든 기분이었다. 급실에서 심장에 충격을 주어 사람을 살려내는 이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우리는 밖에서 잠시 진정하라는 수의사의 말대기실로 다시 나왔다. 비틀비틀 거리며 진료실을 나왔다. 대기실 의자에 기다린 지 20분 정도 지나니 수의사 선생님이 까비를 안고 나왔다.



"까비, 괜찮아요"


눈물 콧물 쏟고 꾀죄죄하게 눈이 퉁퉁 부은 우리 가족 셋은 까비를 받아 안았다. 까비는 몸을 계속 떨고 조금 어리둥절해 보였지만, 아까 보았던 그 기괴한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응급 처치로 눈두덩을 눌렀다고 했다. 눈 뒤쪽에 신경을 자극해 혈행을 좋게 하는 방법이라며 우리에게도 알려주었다. 혈압이 지나치게 높아 조금 전 순간적인 혈행 장애가 두뇌 쪽에서 일어난 것 같다며 수의사 선생님이 설명했다. 지금 바로 검사해 볼 수 있는 항목은 없지만 심한 통증이 있을 걸로 보여서, 교수님과 통화해 아주 미량의 마약을 투여했다고 했다. 아침 진료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응급의학과 내과 교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 두었다고 했다.


눈이 눌려 억울한 표정이 되어버린 까비


정신 나간 듯이 웅얼거리며 연신 고맙다고 하는 우리 가족에게 수의사 선생님은 웃어주시고는 입원 환자들을 보러 갔다.


까비를 다시 안아볼 수 있었다. 조금 전 모습이 까비의 마지막일 줄 알았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을 했다. 우리 까비 사랑한다고. 까비를 안은 채로 우리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까비에게 했다.


"까비~사랑해~ 우리 까비가 최고~"


혹시라도 놀라 충격이 있을까 봐 작은 뒤통수에 입도 맞추지 못하고, 우리는 아주 조심스럽게 담요에 싸인 비를 토닥토닥해주었다. 어떻게든 떨림이 잦아들고 잠들 수 있기를 바랐다.
 

엄마가 말했다.

"형아가 우리 까비 안아주네~ 형아가 제일 잘 놀아줬지? 우리 까비 잔다~ 낸내한다~" 


'놀아줬다'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엄마의 말이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추억을 회상하는 마지막 말인 것 같아 싫었다.
까비에게 미안하고 또 서운하고, 후회가 되었다.


나도 잘 놀아준다고, 한다고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놀아줄 걸. 중요한 일들도 아니었는데 놔두고, 그 좋아하는 공놀이 한 번만 더 해줄걸. 주말에 잠 좀 덜 자고 산책 한 번만 더 해줄걸. 가족사진 찍기로 했었는데 더 일찍 갔다 올 걸.

예쁘게 입고 까비와 같이 가족사진을 찍자고 말로 계획만 세운 지 몇 년이 지났다. 이제 다시 다 같이 사진을 못 찍게 될까 두려웠다. 평소에 셀카 찍는 것을 싫어하는 나인데도 이 순간에는 열심히 핸드폰 카메라로 우리 가족의 사진을 찍었다. 이틀 밤을 새운 엉망인 몰골이지만 , 다시는 이 순간이 오지 않을까 다급한 마음으로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응급실 대기실 의자에 앉은 채로 우리는 차례로 까비를 안며 그렇게 밤을 새웠다. 새벽 6시가 넘어갈 즈음에는 동생이 순간적으로 졸기도 했다. 살짝 잠든 까비가 깨지 않도록 아주 가끔 서로 속삭이며 대화했다. 이틀째 정신 놓고 동물병원만 뛰어다녔던 우리 셋은 속삭이려고 입을 열 때마다 단내가 심하게 났다. 가족과 작별할 뻔한 상황을 함께 나눈 가족이기에 맡을 수 있는 냄새였다. 타인이었다면 못 버텼을 것이다.


그렇게 밤을 새우니 피곤했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눈이 시큰거릴 즈음에 시곗바늘이 7시를 넘어갔다. 아직 밖은 어둡고 무척 추웠다.


응급실 정문이 열리고 어떤 중년의 남성이 들어왔다. 이른 시간에 온 남성은 바삐 움직이며 밤새 응급실을 지 수의사들과 무엇인가 대화를 나누었다. 까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곧 수의사 가운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걱정 많이 하셨죠? 괜찮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순간 우리에게 구세주의 말로 들렸다. 안도의 한숨을 우리는 길게 내쉬었다. 진료 시작시간보다 훨씬 일찍 출근한,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그는 응급의학과 교수였다.


방언 터지듯 까비의 증상을 열심히 쏟아내는 우리의 이야기를 그는 하나하나 잘 들어주었다. 근 몇 년간 누군가에게 이토록 절박하게 고마워한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마음이 묵직했다. 순간 불치의 병을 앓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왜 비과학적인 치료에 사기를 당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절박하면, 너무나 간절하면 한 줄의 지푸라기도 빛으로 느껴지는 법.

응급의학과 교수의 소견을 듣고 까비는 응급실이 아닌 진료동의 내과로 진료 시간 시작하자마자 갈 수 있었다. 전담 수의사 선생님 만났고, 과도 인사를 했다. 채혈은 기본이고 엑스레이 찍고 혈압 재고, 검사는 끝이 없었다.


까비가 검사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후줄근이네 강아지가 어떤 수의사에 품에 안겨 이동하는데 마주쳤다. 살았구나! 넥 칼라를 하고 링거를 찬 녀석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우리는 반가워했다. 살아주었구나.


까비는 그날 바로 입원했다. 200에서 300 사이가 정상이라는 췌장 수치가 2500을 넘어 정이 안 된다고 했다. 입원실 옆에 따로 마련된 면회실에서 30분의 시간이 주어져 까비에게 열심히 인사를 했다. 내일 또 올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선생님 말 잘 듣고 밥 잘 먹어야 된다고. 입원실이 답답해도 조금만 참고 잘 자고 있으라고 이야기했다. 까비가 불안해할까 봐 못 알아들을 걸 알면서도 열심히 말로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긴 하루를 보낸 우리 가족은 해가 진 저녁에 집에 들어왔다. 좁은 집 거실에는 까비가 토한 것을 닦은 휴지가 미처 치우지 못해 엉망으로 뒹굴고 있었다.


까비 없이 셋이서 저녁밥을 아주 조금 떠먹고 잠자리에 누웠다. 혹여라도 까비가 나이 든 자신을 병원에 버렸다고 생각할까 봐 걱되어 금방 잠들지 못했다. 오늘 밤새 입원실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뛰어가야지 하는 생각에도 몸에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물론 새벽녘에는 셋 다 기절해 코를 골았다.



까비야, 내일 면회 갈게. 조금만 기다려.      


작가의 이전글 '이제 집에 가자' 죽으러 간 프랑스에서 귀가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