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마 Nov 09. 2024

암진단을 받은 날 무얼 할까?

사람들은 암진단을 받은 날 뭘 하며 보낼까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의사의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되묻고 싶었다.

암인 줄 알았다면 일찍 왔을 거라고.


어두운 초음파 진료실 안에 누워서 가슴을 다 드러내놓은 채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다가 나는 암선고를 받았다. 의사는 그 자리에선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의 얘기는 분주하게 이루어졌다. 큰 병원의 예약을 빨리 잡아야 하고 최대한 빠른 시기에 진료를 볼 수 있게 알아봐 주겠다는 얘기가 들렸다. 환자복을 잘 챙겨 입고 대기실에 앉아있으라는 얘기를 하고 의사는 서둘러 초음파실을 나갔다.


나는 가슴과 겨드랑이에 온통 칠해져 있는 초음파액을 닦아내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실감이 없었다. 그냥 잠깐 다시 눈을 뜨면 잠을 자다 깨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가끔 이상하고 무서운 꿈을 꾸고 나면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고 나서 '그래 꿈이지. 현실일리가 없지.' 그랬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모든 것은 현실이었고 아무리 눈을 감았다 떠도 나는 잠이 든 것이 아니었다.


옷을 여며 입고 초음파실을 나섰다. 밝은 대기실이 드러났고 함께 병원에 온 남편이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도 현실감이 없는데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병원에 오면서 초음파 진료를 받고 돌아가면서 뭘 먹을지 메뉴를 정하기도 했다.

나와 병원을 같이 가기 위해 오전 일을 빼고 동행했기에 오랜만에 낮 시간의 여유가 생긴 남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잠깐의 데이트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뭐래?"

내가 천천히 걸어서 대기실 끝 의자에 앉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남편이 물었다.

나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암 이래."

"..."


사실 감정이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 나도 현실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암이란 말을 들으면 오열을 하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 입으로 암이라고 내뱉기도 했는데 그래도 와닿지가 않았다.

내 대답이 너무 성의가 없게 들렸는지 남은 가만히 날 쳐다보고 있었다.

'장난해?'라는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암 이래. 큰 병원 예약 잡아야 한데."

"... 뭐... 왜..."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눈이 벌겋게 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때 때마침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핑계로 병원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 발걸음이 심하게 비틀거리는 것을 봤다.


나는 일어서지도 못했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상했다. 몸이 붕 떠있는 기분, 도통 무슨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다.


암인데, 나는 아픈 곳이 없다.

하나도 아픈 곳이 없었다.


"환자분."


간호사가 나를 불렀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병원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의 얼굴을 바라봤다. 눈이 너무 빨갛게 변해있어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대체 그 단어가 뭘까? 그 단어 하나에 나는 당장 내일이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때까지는 그랬다.



의사와 간호사는 갈 수 있는 큰 병원에 전화를 돌려 유방외과 예약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일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집과 가까운 서울대병원 유방외과로 예약을 했다.

그 빠른 진료가 한 달 뒤였다.

그날부터 남은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유방외과에 진료일정을 당길 수 있는지 전화를 했다.

그리고 일주일을 당겨 정확히 암선고를 받은 지 3주 뒤 서울대병원 유방외과에 갈 수 있었다.  


암선고를 받은 날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유외과에서 서울대병원 예약을 잡고 돌아오며 나는 울지 않았다.

내가 울지 않으니 남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얼마나 울음을 참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입술이 다 터져있었다. 얼마나 꼭꼭 참으려 씹어댔을까.


현실과 꿈사이.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는 병원에서 돌아오고 나서 다시 내 일을 하러 갔다.

혼자 일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가 내가 병원에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 친구의 엄마 전화를 받았다.


"병원에 간다더니 잘 다녀왔어?"

"...."

"괜찮다지? 내일 차 한잔 마실래?"

"나..."

"어?"

"암 이래."


나는 그때....

눈물이 터졌다.

그냥 일상 같은 말 한마디에 나는 무너졌다.


내일 차 한잔 마시자는 말이 뭐라고.

그걸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느껴지는 순간 무서워졌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는 두 시간을 내리 울었다.

무서워서 울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서러워서 울기도 했다. 억울해서 울기도 했고 막막해서 울기도 했다.

하도 울어서 머리가 아플 때까지 울다가 그만 울고 멈췄다.


그러고 나서 받아들였다.


'이제 난 뭘 해야 하지.'


무섭고 서럽고 억울하고 막막하지만 나는 뭐든 해야 했다.

나는 남편과 데이트도 해야 하고, 이제야 거의 키워놓은 아이들과 여행도 해야 하고, 써야 할 글도 널려있고, 언니들과 내일 차도 마셔야 하고, 이제 막 시작한 영어공부도 끝내야 하고...

죽을 계획은 없었다.


암선고를 받은 날, 나는 해야 할 것들, 하고 싶은 것들, 죽지 못할 이유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젊은암환자. 나는 아직 젊은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