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암선고를 기다리는 기간 동안
지금 생각하면 다행인 일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2022년 8월 암선고를 받았다.
그런데 그때는 코로나시기이긴 했지만 의료대란은 없던 시기였다.
그래도 대형병원은 예약을 잡기가 참 많이 어려웠다.
최대한 빨리, 진료를 볼 수 있게 예약을 잡은 것이 유외과에서 초음파로 암선고를 받고 한 달 뒤였다.
사실 초음파만 보고 암선고를 내리진 않는다. 초음파를 하면서 조직검사를 위해 조직을 떼어내고 그 조직이 암인지 아닌지 결과지가 나와야 한다.
"서울대병원에 가서 치료 잘 받으세요. 요즘은 유방암 완치율이 높아서 치료만 잘 받으면 되실 거예요."
"아직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죠? 제가 서울대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했는데 암이 아닐 확률이 있을까요?"
"제가 보기엔.... 림프전이까지 있어 보여요. 오른쪽에 있는 종양도 조직검사 결과를 봐야 할 것 같고요."
너무 단호하게 나는 암이란 얘기를 했었다.
왼쪽에 있는 종양은 암이 확실해 보이고 겨드랑이 림프로의 전이도 있어 보인다 했다. 거기에 오른쪽에 있는 종양모양도 좋진 않아 보여서 조직검사 결과를 봐야 한다고 했다. 그 모든 말들은 물속에서 듣는 소리처럼 다 먹먹한 소리로 들렸다.
조직검사결과가 나왔을 때 왼쪽종양은 암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가지고 미리 예약한 서울대병원에 갈 날을 기다렸다. 예약된 날짜 4주 뒤, 미친 듯이 매일 전화를 걸어 일주일을 당겨 3주 만에 나는 서울대병원에 가서 유방외과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은 정말 더디게 흘러갔다.
나는 그 3주 동안 암환자가 되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다시 말하면 암이란 얘기를 들은 것 말고는 일상생활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은 아침에 출근을 했다. 아이들은 제시간에 일어나 학교에 갔다.
나는 모두가 나가고 나면 똑같은 루틴으로 집안일을 끝내고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생각을 하지 않을 시간이 필요했다. 최대한 몸을 바쁘게 지내야만 했다.
암선고를 받는다고 해서 모든 치료가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큰 병원에 예약을 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생긴다. 당장 오늘내일하는 위독한 상태가 아니라면 한 달 두 달 기다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얼마큼 아파야 오늘내일하는 위독한 상태가 아닌 것일까?
암은 언제 어떻게 커질지 알 수 없다. 오늘 괜찮아도 내일 당장 어떻게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렇기엔 나는 너무 멀쩡했다. 암선고를 받기 전과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가슴에 딱딱한 무언가가 만져지기 전에도 가슴은 아프지 않았고 만져진 이후에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암환자였다.
그게 마음이 아팠다.
사실은 없다.
매일을 덜덜 떨며 나는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유방암은 참 이상했다. 아픈 곳이라도 있으면 당장 어느 병원이든 달려가서 나 아프니까 빨리 진료라도 해달라고 하겠는데 아픈 곳도 없으니 가만히 예약된 날짜를 기다리기만 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만져지는 바둑돌 반쪽 모양의 딱딱한 무언가가 내 왼쪽 가슴에 있었다. 내 손가락으로 암덩어리를 만질 수 있다는 것이 묘한 기분이었다. 피부껍질 아래 단단하게 만져지는 덩어리 때문에 당장 나는 내일 "몇 개월 남았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암환자란 얘기였다.
"자꾸 만지지 마. 커지면 어떻게 해."
내가 무의식 중에 손가락으로 내 왼쪽 가슴의 그 딱딱한 무언가를 누르고 있으면 남편이 울음을 꾹꾹 목구멍으로 눌러 내리며 한마디를 했다. 나는 그 무렵 내가 암에 걸렸단 것을 아는 몇, 남편과 엄마, 그리고 아빠, 삼총사 S언니 Y언니... 그들이 내게 무언가를 말할 때 목구멍에 울음을 가득 머금고 몇백 번을 생각하고 한 마디씩 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조그만 게 뭐라고... 이따위 때문에 나 안 죽어."
진짜 나는 그 따위 조그만 것 때문에 죽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내가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우울해하고 슬퍼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미리 앞당겨서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 오늘부터 병원에 갈 때까지 설탕 들어간 거 안 먹을 거야."
"나 오늘부터 하루에 이만보씩 걸을 거야."
누군가를 위해 씩씩 해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얘기하고 모두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고 그럴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위해야 했다.
죽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안심하라고 다독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