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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그냥, ‘그렇구나’만 해줘도 되는 날

참 쉽지가 않다. 관계라는 게.

by 율마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때, 그 사람이 “아, 그렇구나.” 하고 가볍게 공감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게 전부였는데.

그런데 어느 날, 반대 입장이 되었다.



내게 고민을 털어놓던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그냥 들어주면 안 돼? 해결해달라고 말한 거 아니야. 그냥…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말한 거야.”


그 순간,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그저 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날들.
아무런 판단도 해답도 없이 그저 누군가가 내 말에 “그랬구나” 하고 공감해주길 바랐던 기억.


그런데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 본능처럼 반응하곤 했다.


“그건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힘든 거 아니야?”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싫어했던 그 말들을, 결국 내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서운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어떻게 된 걸까.

요즘 흔히 말하는 MBTI로 따지면, 나는 아마도 ‘T’형일 것이다. 감정보다 논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
그래서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 말의 진짜 의도보다 ‘이걸 왜 말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에게 해결해달라는 뜻일까 싶어서 머릿속엔 어느새 해결책이 쏟아졌다.

그게 내 방식의 ‘도움’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식이 늘 통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말하는 사람은 그저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던 것뿐인데 듣는 사람이 해결하려 드는 순간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부담이 된다.

그리고 듣는 사람은, 또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는 왜 자꾸 피곤해지는 걸까.’


얼마 전, 그런 내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나는 네가 그렇게 얘기하면, 뭔가 해결해줘야 할 것 같아. 그래서 좀 피곤해.”


그랬더니 상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제 너한테는 아무 말도 못하겠다.”


그 말에, 이번엔 내가 마음이 상했다. 참 아이러니하다.

말하는 사람은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거고, 듣는 사람은 진심으로 잘 듣고 싶은데.
서로의 방식이 조금만 엇갈려도 우리는 이렇게 서운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미묘하다.
너무 솔직한 말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또 오해가 생긴다.

결국 우리는 가끔은 말 한마디로 충분할 때가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냥 “아, 그렇구나.” 그 한마디만으로도 마음이 풀리는 날이 있다.


나도 그랬다.
내 감정을 꺼냈을 때, 누군가가 코치하듯 조언하면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런데 반대 입장이 되자, 나는 또 상대의 말이 피곤하게 느껴졌다.

결국은 나도 상대도 조금씩 이기적인 것이다.

공감해달라는 마음과 피곤하다는 마음이 엇갈리던 날.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무거웠던 하루.

사람과 사람 사이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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