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나랑 긴 약속 잡기
나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혼자 잘 노는 사람이다. 이 둘은 정말 다르다.
혼자 밥 먹는 것도 좋고, 혼자 카페 가는 것도 좋고, 혼자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말도 안 하고 하루를 보낼 때도 있는데,
그걸 누가 보면 '무슨 일 있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로선 아주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하루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싫은 건 아니다.
친구들 만나면 웃고 얘기하고 나름 잘 논다.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충분히 즐겁고 의미가 있다.
근데 가끔 그런 날 있다.
수 많은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하지?”
생각해보면, 그 피곤함은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 거였다.
때때로 뭔가 맞지 않는 대화, 애써 공감한 이야기들,
웃고 있었지만 사실 그 순간 마음과 생각은 그 자리에서 좀 멀리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 문득 드는 생각은...
‘이 시간에 그냥 나 혼자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그게 나쁜 건 아닐 거다.
그들과의 시간이 싫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나와 보내는 시간이 좀 더 편하고 즐겁다는 사실.
나이가 들면서 공감대보다 편안함이 더 중요해진 것 같다.
어릴 땐 누군가와 꼭 붙어 있어야만 안심이 됐는데 지금은 그 ‘누군가’가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됐다.
노트북 하나 정도 있으면 하루종일 입을 닫고 혼자 앉아있다고 해도 그리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무언갈 써야할 공간이 있고 주제가 있다는 것이 마음을 바쁘게 한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혼자 그렇게 오래 있으면 힘들지 않아? 하고 묻는다.
근데 이상하게 그런 잉여시간이 생기면 오히려 마음이 바빠지고 신날 때가 있다.
요즘 뜨개질을 처음 시작해서 한참 뜨개의 재미에 빠진 지인이 있다.
그 전에는 늘 "오늘 뭐해?" 라며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을 찾곤 했었는데 한동안 그런 연락이 없어서
먼저 안부를 물어봤다.
"뭐해. 바빠?"
"응 바빠."
"뭐하는데."
"뜨개질 하느라 바빠. 혼자 하루종일 뜨개질만 했으면 좋겠어. 하루가 왜 이렇게 짧니?"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서 더 공감이 갔다.
내가 나와 잘 놀줄 알게 되면 내가 무엇을 하면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을지를 찾게 된다.
혼자놀아서 좋은 점은 감정소모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카페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어도 그 시간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와 잘 지냈다.
혼자라는 시간이 주는 여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소한 즐거움, 소소한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