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냄새도 감성이 되던 시절, 우리는 진정한 힙스터였다
동아리방에서 과방까지.
곰팡이 냄새도 감성이 되던 시절, 우리는 진정한 힙스터였다
1998년 3월, 동아리방 문을 처음 열었을 때의 충격이란.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낡은 나무 의자가 삐걱거리며, 형광등이 깜빡이는 그 완벽한 빈티지 무드를 마주했다.
지금 홍대 감성카페에서 인테리어비 수백만원 들여 연출하는 그 '낡은 감성'을, 우리는 공짜로 매일 누렸다.
심지어 에어컨도 없어서 자연 통풍까지 완벽했고, 겨울엔 난방이 안 돼서 패딩 입고 앉아있던 모습도 생각이 난다.
요즘 패션 인플루언서들이 추천하는 레이어드 룩을 거의 매일 실천했던 그때.
우리만의 찐 아지트
동아리방에서는 선배들과 라면 끓여 먹고, 커다란 부피가 큰 모니터의 컴퓨터로 채팅도 하고 매일 똑같은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찐 레트로 감성은 그때 다 있었던 듯.
요즘 정말 그때의 느낌을 낸다고 일부러 낡은 소파와 벽을 만들기도 하던데 예전 그 공간이 진짜 감성 끝판왕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요즘 '감성카페'라고 하면 비싼 에디슨 조명에 콘크리트 벽, 빈티지 가구로 도배된 공간을 떠올리지만, 우리에겐 그런 인위적인 연출이 필요 없었다. 자연스럽게 낡아서 생긴 그 모든 것들이 진짜 빈티지였으니까. 게다가 벽에 붙어있던 각종 포스터들과 선배들이 남긴 낙서들은 지금으로 치면 '인스타 감성 벽화' 그 자체였다. SNS도 없던 시절, 우리는 벽에다 감성을 남겼다.
원룸텔의 원조 동아리방
공부, 과제, 연애, 식사, 수면, 심지어 빨래까지 이 모든 걸 한 공간에서 해결했던 공간.
요즘 대학 동아리방은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르니 비교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좋지 않을까?
내가 기억하는 동아리방의 모습이라면,
엘리베이터도 없는 동아리건물을 힘들게 올라가 어두운 동아리방에 들어서면 그 타임 공강시간이거나 아니면 수업도 없는데 학교에 나온 선배들의 "야, 신입생! 어서 와!" 하는 소리.
긴 테이블 하나에 여러 명이 앉아서 각자 다른 일을 하는 구조는 그 때 동아리방이나 과방의 좀 세련된 모습이었다.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는)
복잡한 책상 위에 뚱뚱한 모니터 몇대.
그리고 청소를 한 건지 알 수 없는 장판 위에 비스듬이 누워있는 선배들이 있었다.
여기까지의 기억은 진짜 나만 그럴 수도 있다.
한쪽 구석엔 휴식 공간으로 쓰이는 소파, 그리고 공용으로 쓰는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까지.
어쩌면 요즘 스타트업 사무실이나 공용 사무실 같은 곳 분위기와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일종의 소통과 협업을 위한 공간이라 하고 그냥 공강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쉼터 정도일수도.
거기서 라면까지 끓여먹고 누가 가져온 지 모르는 프라이팬에 삼겹살도 구워먹었었다.
거기는 요리 동아리도 아닌데,... 나름 컴퓨터 동아리.. 였는데 말이다.
(나우누리 동아리였던것.)
요즘은 돈을 내고 그런 공강시간을 보낼 수 있는 휴식 공간을 이용하지만, 우리는 과 선배들의 '사랑'으로 무료로 이용했다는 점이 요즘과 다르다.
족보를 나눠쓰던 사이- 족보를 위해서라면야!
족보가 없는 과제는 진짜 '무한도전'이었다. 선배들의 과제물도 없고, 인터넷 검색도 제한적이고, 오직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해야했다.
그런 와중에 족보가 있는 것은 진짜 가뭄의 단비였다.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족보를 구하는 일, 과방에서 일어나는 일 중 하나.
게다가 동아리방에서는 다른 교양과목의 족보도 구하는 일이 허다했다.
지금 대학생들이 챗GPT한테 "과제 좀 써줘" 하면 되는 일.
그때는 그걸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는 것.
나는 그떄가 얼마나 순수한 노가다 시대였는지 실감한다.
도서관에서 두꺼운 전공서적 뒤적이고, 복사기 앞에서 30분씩 줄 서고, 손으로 직접 써서 제출하던 그야말로 '아날로그 학습의 끝판왕' 시절이지 않나?
요즘 나도 챗GPT에게 많은 것들을 물어보고 바로바로 정보를 얻고 있지만 어쩌면 스스로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며 정보를 알던 때보다는 더 남는 것도 없고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그때는 '복사'조차 큰일이었다. 한 장에 50원씩 하는 복사비가 부담스러워서, 친구들끼리 돌려가며 한 권의 책을 복사하곤 했다. 지금은 PDF 파일 하나면 끝나는 걸 말이다.
과제 하나 하려면 정말 발품을 팔아야 했다. 참고문헌 찾으러 시내 서점까지 가서 몇 시간씩 서서 읽고, 중요한 부분은 손으로 메모하고. 요즘처럼 인터넷에서 검색 한 번이면 나오는 자료들... 대박 신세계
그렇게 정성스럽게? 찾아서 쓴 과제나 리포트는 정말 애착이 갔다. 지금처럼 복붙하고 조금 수정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내가 직접 만든' 결과물이었으니까. 물론 그 결과물이 항상 좋았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진짜' 내 것이었다.
내가 직접 알아보고 찾아보고 발품을 팔아서 만들어낸 조금은 부족하고 말이 안되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내 머릿속에 온전히 들어있는 결과물이니 말이다.
끈끈한 함께라는 의미
과방이나 동아리방에서 선배 한 명이 "오늘 치킨 시킬까?" 하면 순식간에 10명이 모여든다.
누가 라면 하나를 끓인다고 하면 모두 달려들어서 한입만을 외친다.
그럼 한개 끓이려던 것이 10개, 또는 그 이상으로도 늘어난다.
이게 가능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인것 같다.
불나면 어떻게해? 그런건 생각도 안해본 듯.
생각해보니 과방과 동아리방이 그리운 이유는 단순했다. 그곳은 진짜 아지트였기 때문이다.
아무 때나 들러도 문이 열려있는 곳이었고 언제나 찾아가도 누군가 있던 공간이다.
궁금한게 있으면 누구든 붙들고 물어보면 어떻게든 해결해주려고 애쓰던 사람들이 있었다.
홈 카페? 조금 시끄러운 스터디카페? 그냥 놀러가도 놀아줄 사람이 언제나 있는 곳.
돈을 내지도 않고 무제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곳.
물론 지금의 대학생들도 20년 후엔 지금 이 시절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각자의 시대에는 각자만의 '과방'이나 동아리방은 있는 거니까.
그게 어떤 모습으로든 바뀌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 레트로한 모습은 아니지 않을까? 점점 더 이전의 동아리방이나 과방같은 모습은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요즘 이전의 그런 생활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걱정스러운 부분이 없는 것이 아니니까.
그래도 그때 다 같이 달려들어서 먹던 라면이 너무 맛있었다.
다들 뭐 하고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