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매일 엄마와 1시간 이상을 통화한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해? 그렇게 할 말이 많아?"라고 나는 반문했다.
나는 엄마와 1시간을 전화로 말해본 적이 있던가?
우리의 전화통화 내용은 매우 단순 명료하다.
"여보세요"
"밥 먹었니?"
"그냥 전화해 봤다 잘 있는지 해서"
"별일 없지 뭐"
"그래 그럼"
"응"
남편은 우리의 통화를 옆에서 듣다가 왜 응만 하다가 끝나고 말했다. "길게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엄마의 전화는 목적이 있거나 아예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심심해서 전화를 했을 때는 위와 같은 패턴이지만 목적이 있을 때는 여보세요가 끝나기도 전에
"나 뭐 해야 하는데... "또는 "나 뭐 안된다"라며 대뜸 본인의 목적만 얘기하신다.
그럼 나는 "어쩌라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우리 두 딸들이 엄마의 문제점을 공통적으로 말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혼자 사는 엄마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나 이게 안되는데 시간 날 때 와서 좀 봐줘라" 또는 "너 시간 되니? 와서 한번 봐줄래"라는 말을 하면 될 텐데 전화를 받자마자 본론으로만 들어가니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엄마는 말투를 고쳐야 해. 말을 왜 그렇게 하는 거지.'라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말해도 들을 리 만무하다.
1시간 이상을 통화하는 내 친구 엄마의 경우에는 차근차근한 말투로 매일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별일은 없는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남편욕부터 다양한 일들을 엄마와 수다를 나눈다고 했다. 내 친구도 엄마를 닮아 말을 아주 차근차근하는 반면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한 편이다. 나도 성격이 급해서 전화를 하면 목적만 얘기할 때가 많은데 문득 엄마한테 지적질을 한걸 떠오르면 얼굴이 화끈해진다. 내가 엄마를 그대로 닮았구나 싶어서 다음에는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습관처럼 말이 나오게 된다. 이래서 가정교육을 중요하다고 하는 것인가 보다.
올해 82세인 엄마는 70이 넘도록 평생 일을 해오신 분이다. 청소일을 하면서 반장으로 오랫동안 일을 해서 그런지 늘 자기주장이 강하고 명령조인데 아빠는 물론이고 자녀들, 이모들에게도 어김없이 똑같이 말씀하신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으니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매일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를 보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를 했나 싶어 숨이 막혀온다.
에피소드 1. 작년 여름에는 새로 장만한 벽걸이 에어컨이 안된다며 당장 더워죽겠는데 와서 고치라고 하셨다. 저녁 늦은 시간에 뜬금없이 전화해서 화를 내면서 오라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폭염에 에어컨이 안 돼서 오늘 당장 못 주무신다는 어머니에게 나는 지금 못 간다고 말했더니 알겠다고 하시면서 전화를 뚝 끊어버리셨다.
전화를 끊고 천천히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어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성질내지 말고 일단 더우니까 거실에 에어컨부터 틀어 그리고 아랫집 아저씨한테 한번 확인해 달라고 해..."
다행히도 한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사시면서 아래윗집 등 친한 분들이 많아서 간단한 심부름이나 부탁을 들어주시는 분들이 있으시다. 그리고 엄마집은 작은 평수에 거실에 큰 에어컨 한대가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덥지 않게 보낼 수 있는데 안방 에어컨이 안된다고 화를 내신 거였다.
에피소드 2. 또 작년의 일이다. 에어컨 사건이 있고 몇 주 후 엄마한테 전화가 와서 새로 산 안방 TV가 안 나온다면서 고치러 오라는 전화였다. 남편이 직접 설치까지 해주고 문제없는 걸 확인하고 왔던 터라 당연히 엄마가 조작을 잘못했겠구나 싶었는데 대뜸 전화해서 TV를 안 보면 당장 큰일이 나는 것처럼 말하니 어이가 없었다. 남편은 이미 출근을 했고 나는 차가 없어서 못 간다며 가까이 사는 언니한테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몇 분 후 남편이 전화 와서 장모님이 TV가 안 나온다고 고쳐달라고 했다고 하는 말에 나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일하는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TV를 고쳐달라고 할 일인가 싶었는데 몇 시간 뒤 엄마의 전화를 받은 언니가 또 화를 내며 내게 연락을 했다. 결국 아랫집 아저씨가 보니 간단한 리모컨 조작문제였다.
참고로 우리 엄마 집에는 거실에도 큰 TV가 있다..
이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가 우리 두 자매는 우리 엄마는 왜 저럴까.. 화낼 일도 아니고 당장에 급한일도 아닌데 자식들을 오라 가라 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예전부터 이런 엄마 성격 때문에 엄마의 전화는 기쁜 일이 아니었다. 전화기에 엄마(하트)가 왜 이렇게 받기 싫은지 나에게 엄마의 전화는 숨이 막히는 전화였다. 부모는 나이가 들면 투정이 많아진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들도 자식의 힘을 빌리고 싶어진다. 40 평생 이런 전화를 받아온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처음부터 화를 내지 않는다. 한 템포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전화를 걸어 "엄마 차근차근해봐. 그래도 안되면 얘기를 해. 화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라며 엄마를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