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지트
따뜻한 남쪽 울산에 살고 있는 저희 지역에는 벌써 벚꽃이 만개했어요. 울산 곳곳에도 벚꽃 명소가 많지만 조금만 가면 부산, 경주 등에 벚꽃 명소도 갈 수 있어 늘 주말이면 도로에는 차가 붐빕니다. 저도 물론 이 시기에 주말은 벚꽃 구경을 하느라 늘 바빴지만 이제는 길가에 핀 벚꽃이면 충분하다며 굳이 찾아다니지 않아요.
어느 봄날 남편과 동네를 산책하던 아주 평범한 빌라 사이에 표지판 하나 없는 작은 공원하나를 발견했어요. 큰 벚꽃나무들이 우거진 벚꽃 명소였죠. 우리만의 아지트를 발견한 듯이 매년 벚꽃이 필 때면 혼자 아침부터 굳이 돌아가는 이 길을 걸어가 사진을 찍고 온답니다.
어르신들만 많은 한적한 동네에 유일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굳이 왜 골목골목을 돌아가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남편은 나와 달리 안 가본 길을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기에 매번 같은 길만가는 나를 이끌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아파트 주변으로는 오래된 주택들이 많은 곳이라 아주 좁은 골목길이 많아 처음에는 헷갈렸지만, 이제는 그 골목을 다니면서 피어있는 정원에 피어있는 꽃과 밭에 심어 놓은 대파 등으로 계절을 확인하고 있어요.
이 공원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지만, 아이들은 전혀 이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유모차를 끌고 나와 정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참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낯선 젊은이가 방문한 것이 신기하신지 눈에 띄게 저를 쳐다보셔서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벗어나게 됩니다.
처음 이 동네에 이사를 올 때는 동네의 분위기를 전혀 몰랐고 신축 아파트라서 아파트 내부와 가격을 보고 선택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동네가 한적할 줄은 전혀 몰랐어요. 밤 8시면 아무도 다니지 않는 동네라니 말 다했죠. 정말 할 것이라고는 없는 이 동네의 아침은 부지런하고 아파트에서 5분 거리에는 작은 시장이 있어 장날이면 다들 어디에서 이렇게 나왔는지 모를 만큼 붐빕니다.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5년이 넘게 살다 보니 이제는 이 한적한 동네의 매력에 빠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