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집사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없이 사는 부부는 씀씀이가 클 수밖에 없다. 가족들을 만날 때도 아이가 없이 때문에 용돈을 줬으면 줬지, 받을 일은 없는 입장이다. 친구모임에서도 늘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는 친구네 가족들과 달리 단출한 우리 둘은 늘 손해를 보는 편이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손해 본다는 생각에 그냥 우리 둘을 위해 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이 들어 모임도 피하게 되었다.
이런 부분은 물질적인 부분뿐만 아니다. 아이핑계를 댈 수 없는 나는 늘 부모님과 병원을 동행해야 했고, 친정아버지 병간호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물론 내 부모니까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당연히 누가 해? 너 밖에 더 있어?"라는 말은 비수가 되었다. "아.. 사람들은 나의 불행이 어쩌면 편리하게 생각이 될지 모르겠구나."라며 나는 더욱 침울해했다. 뒤통수는 늘 가장 가까운 사람이 친다더니 그렇게 뒤통수를 쌔게 맞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를 위한 삶. 아니 나를 위한 삶을 살기로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도 심부름도 잘하고 엄마가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는 착실한 아이였다. 그런 내가 남편을 만나 결혼한 것도 엄마의 세뇌가 한몫을 했다.
"너는 아버지처럼 사람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가정에 충실한 사람을 만나야 해. 술도 안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하는 말에 이끌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물론 지금은 나의 둘도 없는 술친구지만 정말 가정적인 사람이다.
"엄마 말이 다 맞아"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나는 결혼 후 독립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외동아들이지만, 각자도생이 가훈인 것처럼 독립적인 삶을 사는 시댁에서 자란 남편은 이런 나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월 1회는 무조건 가족식사가 있는 우리 집은 꽤나 친밀한 편이었다. 절대 화목한 집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화목하려 노력하는 집이었다.
아무튼! 엄마의 그늘을 벗어나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일단 엄마와 멀어지는 연습을 했고, 점점 나의 삶을 살아가는데 집중했다. 다행히 많은 시간 혼자 있으며 터득한 나만의 취미들이 있었고 가을이까지 생겼으니 나의 삶은 꽤 채워져 갔다.
그런데! 간과한 것이 있었다!
아이가 없이 살다 보니 그때그때 하고 싶은 여행도 하고 사고 싶은 것도 사고, 하고 싶은 것도 샀던 나는 돈을 모아놓은 게 없었다. 아니 돈을 모을 이유도 딱히 없었다. 만약 남편이 직장에서 잘리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때 돼서 뭐라도 하면 충분히 둘은 먹고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집을 사는데 올인을 했고 그 후 큰 목돈이 없었던 우리였다. 그런데 가을이가 생기고 나니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이 작은 생명을 내가 끝까지 책임을 지려면 돈이 필요했다! 우리 둘 어찌어찌 살아가면 되겠지라는 마인드였던 나였는데 갑자기 "가을이가 아프면 어떻게 하지? 돈이 없어서 병원도 못 데려가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단순하게 사료와 간식을 먹일 수준만 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소중해지면 소중해질수록 나이 든 가을이가 병치례라도 하면 그때 나는 돈을 모아놔야 한다는 번뜩 들었다. 어찌 보면 나나 남편이 아플 수도 있는데 그런 순간을 대비하기는커녕 가을이 걱정부터 한다니 참 대책이 없는 사람이다.
주변을 돌이켜보니 아이가 한둘씩 있는 친구들은 맞벌이를 해서 열심히 돈을 버는데 나는 집에서 먹고 놀고나 있다니 갑자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를 갖기 위해 자발적으로 백수가 되었지만, 막상 나는 아이도 없고 나이는 마흔이 다되어가니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경력단절녀가 되어버렸다.
그동안 집에서 자잘한 알바를 하고 생활비 정도는 벌고 있었지만, 돈이 굳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편의 월급만으로도 빠듯하지만 생활이 가능했고, 굳이 바깥에 나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몸을 챙기며 집안살림을 사는 게 낫다고 남편과 이야기가 끝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문득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알바천국을 뒤져봤다.
그리고 재택근무 알바를 운이 좋게 얻었고, 가을이도 돌보며 집에서 충분히 일과 가정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가을이 통장을 따로 마련했다. 아직 동물보험이 잘 되어있지 않은 한국에서는 한 달에 만원이라도 미리미리 저축을 해놓는 게 목돈이 나가는데 덜 부담스러울 거라는 얘기를 듣고 저축을 시작했다. 집을 사고는 저축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만원씩 저축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아이를 만드는 일에만 올인을 하면서 돈을 벌어 병원비로 들인 것만 해도 얼마인지 모른다. 물론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지만 교통비며 초기에는 개인 부담금이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아이 낳기 좋은 몸만들기를 하느라 한약에 이것저것 좋은 것들을 먹는데 돈을 아낌없이 썼었다. 참 부질없는 일이었다. 결국 다 내 살로 갔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좋은 것을 먹고 결국 살 빼기 위해 운동을 끊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그런 실수는 안 할 것이다.
남편과 대화를 하면서 아이가 없는 건 살아갈 의욕이 없는 것과 같다는 얘기를 한 것이 있다. 남들처럼 명품을 갖고 싶다거나 여행을 다니고 싶다거나 하는 의욕이 없는 우리에게 소원은 단순했다. 엄마 아빠가 되는 것.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한 노력은 다른 분들에 비해 아주 미비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과정보다는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드리고 시간을 투자했지만 남은 것은 10kg가 넘는 불어난 살과 텅텅 빈 통장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요즘 가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남편에게 "아, 사람들이 이래서 힘들어도 아이를 키우는 거구나. 뭔가 얘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어"라는 말을 했더니 "그래 바로 그거야. 돈을 버는 이유가 뭐겠어"라며 그토록 아이를 바라던 남편의 탄식이 들렸다.
풍당풍당 돈을 쓰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적도 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즐거운 여행을 하며 내 인생을 즐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남는 것은 허무함이었다. 이제는 멀리 가고 싶지도 않고 굳이 비싼 옷이나 가방에 눈이 돌아가지도 않는다. 아주 작고 소소한 행복만을 원했는데 나는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씁쓸함이 다시 나를 짓누른다.
가을이를 만나 이제야 나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