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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뜰날 Jan 12. 2023

마흔. 이 왔다.

2023.

1월 1일. 새로운 다짐을 생각할 새가 없이 아들이 열이 났고, 3일부터는 딸이 열이 났다.

아들은 중이염이 좀 심하게 온 거라고 했고, 딸은 다행히 독감도 코로나도 아니고

목이 조금 부은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꼬박 일주일을 열 보초를 하고 아이들 열이 떨어진 뒤에 내 몸 상태가 달라진 걸 느꼈다.

릴레이로 아이들이 아프다 보니 내가 아픈 건 그동안의 잠을 푹 못 잔 것과 이것저것 챙기느라 몸이 못 버텨 병이 난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몸살이 났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왜인지 모를 화도 났다. 이제 좀 아이들이 아픈 게 끝나서 편해질 만하니 내 몸이 아파서 힘든 게 배가 된 것 같이 느껴져서였을까... 아이들 아픈 건 내가 챙겨줄 수 있지만 나 아픈 건 내가 스스로 챙겨야 하는 서글픈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오한이 와서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약을 먹고 찜질을 하며 잠이 들기도 했다. 목이 아파 의도적으로 말을 줄이게 되니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같이 줄어드는 좋은 점이 있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열이 떨어진 아이들의 웃는 소리는 많아졌고, 표정은 해맑았다.


내가 놀아주지 못해도 스스로 창의적으로 놀이를 찾아 이불을 가지고 유령놀이를 하고, 소꿉놀이를 하고, 영상을 보고 싶다고 나에게 협상을 하기도 했다.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데 아이들에게 어려운 문제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문제는 어쩌면 내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방학인데 이렇게 아픈 치레를 하면서 보내는 게 내심 마음에 걸렸고, 주변에서 여기저기 방학을 기회로 놀러 가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해 주니,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줘야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도 같다.


몸도 아픈데 뭔가 마음도 아쉬움만 잔뜩 남은 날.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딸의 눈을 보며, 힘을 주겠다고 안아주는 아들을 보며,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2023년. 마흔이 됐다.  

이 40이라는 숫자가 주는 이상한 안정감이 있는 것 같다.


이제 스스로를 미워하는걸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마음이 강하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아이들 아픈 것들. 그리고 저절로 벌어지는 관계들의 사건 사고들,

내 힘으로 통제 불가능한 일들로 어차피 일어나는 일들에 이제

그만 집착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시선을 돌리자고,  용히 나를 달래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래. 이제 그럴 나이가 되었나 보다.

현실을 수용하는 게 편해지는 나이.


반갑다. 나의 마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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