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역사적인 날은 말이다. 선크림이라도 더 덧발라야 했다. 엄마가 늘 말하던 대로 입술 좀 발라야 했다. 아니 근데 내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겠는가? 내 공연도 아닌 지인의 연극 공연이었다. 폭염이고 두 명이니(?) 택시 좀 타자는 나의 부탁에도 엄마는 상가그늘막을 차지하며 가만있으면 안 덥다는 말을 시전 했다. 땀방울은 쇄골까지 내려오면서.
아무튼 도착한 극장은 그래도 시원했고
곧 우리는 암전 속에서 조용히 관람을 시작했다.
오랜만의 엄마와의 데이트,
숨죽이며 보는 소극장에서의 연극관람,
기대보다 훨씬 찰 진 지인의 연기실력에 신이 났다.
연극이 끝나면 뭐다?
쭈뼛쭈뼛 좁은 계단을 서로 양보하며 내려가
배우들과의 포토타임을 갖는다.
바로 그때였다.
내 앞 앞앞줄이었을 것이다.
한 남자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기, ‘없는 영화’에 나오신 배우 분 맞으시죠?” “네? 아 네 맞아요!” “종이달에도 나오셨죠?” “네! 와 눈썰미 되게 좋으시닿ㅎㅎ” “제가 다 즐겨보는 것들이라서요.”
끝이다.
무슨 ‘팬입니다’, ‘앞으로도 잘 지켜보겠습니다’, ‘사진 한번..’
뭐 이런 말은 없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뱃속에서부터 목구멍까지 뿌듯함이 차올랐다.
엄마가 뒤에 있었어서 더 그랬을까.
지인과 사진을 찍고 극장을 나오면서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역시 난 화장을 하든 안 하든 똑같나 봐~”
엄마는 그래도 입술은 바르라는 말로 내 입을 막았고,
우리는 올 때와 똑같이 갈 때도 손부채질을 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조금은 들뜬 마음,
그것을 감추려 스마트폰을 켰다.
사실, 그분이 말한 작품 중 한 작품을 끝낸 후,
개인 sns 댓글이나 디엠으로 사람들의 반응을 느끼긴 했었다.
한 사람은 디엠으로
“혹시 지금 지하철 9호선 아니세요?”
라며 나를 알아보는 듯했지만 나는 그 당시 집이었다.
친절하게 현재 위치를 알려드린 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어디서 봤는데’도 아니고,
‘어디 나왔지’도 아니고
정확히 두 작품을 뙇 뙇 말하며 나를 기억하시는 분이라니.
잠깐 편의점 앞 의자에 앉혀 바나나우유를 쥐어드리고
연기평가라도 듣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큼 감사했다는 말이다.
집 가는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해 봤다.
길 가는데 사람들이 다 알아볼 만큼 유명해지면 어떨까?
좋을까? 귀찮을까?
오늘이 처음이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좋을 것 같다. 아니 알아봐 주는 게 좋다.
언젠가 팬사인회도 할 날이 올까?
오면 좋겠다.
한 분 한분 꾹꾹 눌러 적은 내 메시지에
악필인 게 드러나더라도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사랑받고 싶어 연기하는 건 아니지만 사랑받는다는 건 언제나 감사한 일이니까. 빨리 연기를 하고 싶다. 기억에 남는 연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