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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Nov 24. 2020

컵라면은 끓는 물을 넣고 3분만 기다리세요.

프롤로그

연애시절, 아내에게 해 주는 요리의 종류가 늘어갈수록, 요리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늘어갔다. ‘왜?’를 끊임없이 외치는 어린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매운맛을 원하면 청양고추를 넣으라는데, 대신에 고춧가루를 넣으면 안 되는 건지. 그럼 고추장은 어떨 때 써야 하는 건지. 국물의 간을 맞출 때 넣는 소금과 간장은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 표고버섯육수를 사용하라는데, 집에 멸치밖에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탕 대신 올리고당을 넣으면 좀 더 건강한 맛이 되는 건지.


국간장과 진간장은 어떻게 다를까. 나물을 진간장이 아닌 국간장으로 무치면 맛이 없을까. 직접 맛을 보면 차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냉장고에서 국간장과 진간장을 꺼냈다. 티 스푼에 간장을 따라 맛을 봤다. 생각보다 결론은 간단했다.   

‘둘 다 엄청 짜다.’


아내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아내는 요리에 관해서는 ‘왜?’라고 묻지도 않는 갓난아기와 다름없었다. 요리에 대한 궁금증으로 갈증이 느껴졌다. 해 주는 대로 아내가 맛있게 잘 먹어서 뿌듯했지만,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재료를 가지고 내 맘대로 놀고 싶었다.

‘나 요리학원을 다녀볼까 봐.’




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하는 한식 요리 클래스가 눈에 띄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10개의 강좌로 채워져 있었다. 메뉴는 꽃게탕, 소갈비찜, 닭볶음탕, 탕수육 등. 모두 평소에 접하던 음식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강의시간에 맞추려면 퇴근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회사를 나와야 했다. 팀장에게 일주일에 한 번은, 한 시간 먼저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유가 요리학원 때문이라고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강의 첫날,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다. 40대, 50대의 가정주부들이 대부분이었고, 남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옆자리에 앉아 눈인사를 건넨 아주머니들이 한 마디씩 보탰다.

‘어휴. 기특하네요. 남자가 요리도 다 배우고.’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30대의 남자를 요리학원에서 만나게 된걸 모두들 신기해하셨다.


강사는 50대의 남자분이셨다. 어느 어느 호텔에서 20년 경력을 다졌고, 지금은 유명한 어느 식당을 운영한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외모에서 고수의 느낌이 묻어났다. 믿음이 갔다.

‘오늘 처음 해볼 요리는 꽃게탕입니다.’

강사의 손놀림에 시선을 두었다. 멸치와 다시마, 새우로 육수를 내고, 고추장, 된장으로 만든 양념장을 풀었다. 국물이 끓어오르자, 미리 다듬었던 꽃게와 각종 야채들을 넣었다. 뚝딱뚝딱 10분 정도가 흘렀을까. 꽃게탕이 완성되었다.

‘자 이제 여러분도 해보세요.’

음 이게 다인가? 다른 설명을 더 해주지 않는 건가?


조리대에는 꽃게탕을 만들 재료들과 레시피가 적혀있는 프린트물 하나가 전부였다. 4인 1조로 자리를 잡고 레시피에 적혀있는 순서대로 요리를 했다. 재료를 씻고 다듬는 건 내 몫이었고, 육수를 만드는 것, 양념장을 만드는 것, 국물의 간을 보는 것 등은 다른 분들이 맡았다. 수업방식에 의문을 갖는 건 나뿐이 아니었다. 같은 조의 아주머니들이 수군수군했다.

‘설마 이게 다예요? 꽃게탕 안 만들어 본 사람이 어디 있다고.’

몇몇 분이 강사에게 질문을 했다. 암게와 수게가 맛의 차이가 있는지, 활꽃게는 어떻게 손질하는지, 더 들어가면 좋을 야채와 그에 따른 국물 맛은 어떻게 다른지를 물었다. 강사는 시큰둥했다. 손을 들고 물어야만 답을 해주었는데 그 답조차도 속 시원하지 않았다. 강사에게서 열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평생교육원은 학원이 아니다. 따라서 수강료도 많지 않다. 초빙된 강사가 배우려 하는 사람들에게 재능을 나눈다는 의미가 크다. 전에 들었던 다른 수업의 강사님들은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강의는 그렇지 못했다. 강의는 주어진 레시피대로 한번 만들어 보는 게 전부였다. 3주 차쯤 되니 강의에 빠지는 사람들이 생겼다. 4주 차를 마지막으로 나도 더 이상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집에는 두 권의 요리책이 있다. 그날 먹을 식사 메뉴가 정해지면, 요리책 두 권에서 조리법을 찾는다. 설명을 각각 비교해보고 내 마음대로 절충해서 음식을 만든다. 입맛에 맞게 양념의 양을 조절한다. 재료를 가지고 놀 수준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왜?’라는 질문은 많이 줄었다.  


예전부터 요리 글을 써보고 싶었다. 언젠가 요리에 정말 자신이 생겼을 때 요리와 관련된 글을 쓰려했었다. 당연히 몇 년은 지난 후의 일 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런치에 이런저런 글을 쓰다 보니, 요리에 관해서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요리를 잘할 때까지 기다려지지가 않는다. 그냥 한번 써볼까. 주제를 생각해봤다. 쉬운 요리여야 글 쓰는데 부담이 없다.


쉬운 요리로 한정하니 주제가 의외로 쉽게 나왔다. 간단한 조리법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은퇴 부부의 아침밥상’.


혹시나 기대하실 분들이 있을까 미리 언급하지만, 앞으로 쓰일 글은 내가 10년 전 다녔던 요리학원보다도, 당연히 요리책보다도 부실하다. 도움이 될 아무런 정보가 없다. 그저 완성된 요리를 봤을 때, 혹은 한입 먹었을 때, ‘아 이거 된장찌개를 한 거구나.’ 정도의 실력만으로 요리 글을 쓴다.

‘컵라면은 끓는 물을 넣고 3분만 기다리세요.’

딱 그 정도의 정보만 담은 글이다. 어쩌면 요리 관련 내용은 얼마 없고, 딴 얘기만 잔뜩 있을지도 모른다.


읽히고 싶어 쓰는 글이 아니라,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나의 구독자분들이 앞으로 발행할 요리 글을 보시고 구독취소를 하실까 살짝 겁나기도 한다.

‘얘는 요즘 은퇴 얘기는 안 하고 자꾸 옆으로 새네.’

글을 읽으면서 시간을 뺏길 구독자분들께 미리 양해를 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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