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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Dec 01. 2020

엄마가 자주 해 주셨던 이유. 간장계란밥.


심야식당이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었다. 심야식당이라는 이름처럼, 주인공은 밤 12시가 되어야 식당 문을 열고, 새벽까지 영업을 했다. 메뉴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늦은 밤 시간에 어울릴 법한 사연을 가진 손님들이 각자의 추억이 담긴 메뉴를 요구하면, 주인은 그에 맞춰 요리를 내놓았다. 드라마 한 회당, 요리 하나와 그 요리에 담겨있는 손님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식당을 차리겠다고 생각하던 때, 드라마에 나오는 그 식당은 정답처럼 느껴졌다. 혼자 운영하기 버겁지 않을 작은 식당, 내 마음대로 만들어 내놓는 요리, 자유로운 영업시간. 식당을 차리면 저런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둔 지금, 비록 식당의 꿈은 잠시 미뤘지만, 언젠가 차릴지 모를 식당의 모습을 상상할 때, 늘 떠오르는 식당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드라마에 나왔던 요리를 직접 만들어 본 적이 있다. 바지락술찜이다. 그즈음 아내와 자주 마시던 소주에 어울릴 안주 찾기가 한참이었는데, 바지락술찜이 소주 안주로 적당해 보였다. 마침 칼국수를 해 먹겠다고 사놓은 각종 야채와 바지락이 냉장고에 있었다.

‘정종은 없는데. 그냥 소주 넣어도 되겠지?’

아내에게 묻긴 했지만, 답을 기대한 건 아니다. 요리에 관해선, 내가 모르면 아내 역시 모른다.

‘그럼, 같은 술이니까 괜찮을 거야.’


겉모습은 그럴듯했다, 입을 벌린 바지락과 색색의 야채들이 먹음직스러웠다. 소주 한잔을 입에 털어 넣고, 국물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썼다. 개운한 입가심을 기대했는데 소주를 한잔 더 먹은 느낌이었다. 참이슬의 술안주로 처음처럼을 먹는 기분.

‘이거 원래 맛이 이런 건가?’

한 번도 바지락술찜을 먹은 적이 없으니, 제대로 된 맛인지, 실패한 맛인지 알 수 없었다. 술안주로 술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 이후로 바지락술찜을 다시 해 본 적은 없다.


다른 편 에피소드로 버터라이스가 나온 적이 있다. 뜨거운 밥 속에 버터 한 조각을 넣어 녹이고, 간장과 함께 비벼 먹는 간단한 요리였다.

‘어릴 때 엄마가 간장계란밥 자주 해주셨었는데.’

아내는 드라마 속의 버터라이스를 보면서 간장계란밥을 떠올렸다. 나도 어릴 때 자주 먹었던 기억이 났다. 다음 날 아침메뉴가 간장계란밥으로 정해졌다. 들어가는 재료는 딱 네 가지.

버터, 계란, 간장, 밥.

간단하다. 이전에 간장계란밥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굳이 레시피를 검색할 필요는 없었다. 넣는 순서의 고민도 없이 적당히 버무려 익히면 됐다. 어릴 때 먹던 그 맛이다. 앞으로도 자주 해 먹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심야식당을 보고 난 후, 해 본 음식은 바지락술찜과 간장계란밥 두 가지였고, 지금 우리의 메뉴에는 간장계란밥만 살아남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무거웠다. 전날 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자기 전 읽던 소설이 하필 클라이맥스를 지나고 있어 책을 놓을 수 없었다. 배는 고픈데, 밥 차리는 게 영 귀찮은 아침. 간장계란밥이 딱이다.

‘간장계란밥 어때?’

아내는 무얼 해주던 잘 먹는다. 반찬투정도 하지 않는다.

‘좋아.’


재료는 뻔하다. 버터, 계란 3개, 버터, 즉석밥 하나.

냉장고에서 버터와 간장, 계란 3개를 꺼낸다. 버터는 저렴한 서울우유 버터를 써왔는데, 어느 날 아내가 이즈니버터에 꽂혔다. 맛있는 빵에는 모두 이즈니 버터가 들어간단다. 늘 쓰던 버터보다 두배 정도 비쌌다. ‘우린 빵이 아니라 간장계란밥을 만드는 건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번 사놓으면 오래 쓰긴 하니, 별 말없이 아내의 선택을 따른다.  


버터도 듬뿍, 계란도 듬뿍.

즉석밥 하나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고, 프라이팬에 버터를 듬뿍 떼내 녹인다. 즉석밥이 데워지면, 녹은 버터 위에 쏟아붓는다. 조심스럽게 즉석밥 가운데를 넓힌다. 그 안으로 계란 3개를 깬다.


나무주걱은 필수다.

간장 한 숟갈을 두르고 나무주걱으로 잘 섞으며 익힌다. 밥알이 하나하나 흩어지도록 신경 쓴다. 나무주걱이 없을 때, 밥 숟가락으로 휘젓다가, 프라이팬의 코팅이 벗겨지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팠다. 나무주걱을 구입했다. 넓은 프라이팬보다는 바닥이 깊은 것이 편할 것 같아서 궁중팬도 함께 샀다.


완성.

간장계란밥을 만드는 동안 아내가 함께 먹을 반찬을 꺼낸다. 멸치볶음과 오징어 진미채, 김치면 충분하다. 사실 더 내놓을 다른 반찬이 없긴 하다. 계란옷을 입은 보슬보슬한 간장계란밥은 실제보다 양이 많아진다. 밥그릇에 담으면 넘쳐서 국그릇에 담는다.




어쩌다 간장 한 숟갈 두르는 걸 잊어버리지 않는 이상, 간장계란밥은 실패 할리가 없다. 항상 집 냉장고에 있는 재료와 10분도 걸리지 않는 간단한 조리법, 언제 먹어도 평균 이상의 만족감을 주는 맛이다. 한 끼 메뉴가 딱히 떠오르지 않고 밥상 차리기가 귀찮을 때,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이제는 어릴 적, 엄마가 간장계란밥을 자주 해주셨던 이유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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