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로 40대 맞이하기
요즘 난 달리기를 시작했다.
봄에는 하양, 분홍 흐드러지게 핀 철쭉을 구경하며 아파트 단지를 돌고,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예쁘게 물든 단지를 돌며 걷는 운동이라도 했는데,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부터는 픽업 다니기 바빠 운동할 짬이 나지 않았다. 아니, 아이 등하교와 학원 픽업만으로도 충분히 만보를 찍었기에 더 게을러진 것도 있다. 하지만 이제 방학이 되어 아이 픽업 다니는 것이 줄어드니, 몸이 무거워져 운동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걷는 것 만으로는 무거워진 몸이 가벼워질 것 같지 않아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실 인스타에 팔로우 중인 '션'의 영향도 크다. 매번 연예인 혹은 지인들과 함께 새벽 달리기를 하는 영상이 올라오는 데 그런 피드를 보다 보니 '나도 달리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점점 달리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짙어져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시간대를 정해서 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션'은 가끔 마라톤도 하는데 이것도 보다 보니 '달리기를 좀 해보고 마라톤에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정말 생각만...
선선한 봄, 가을도 아닌 무더운 여름에 달리기라니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겠지만, 한 낮이 아닌 아침 일찍 시작하면 꽤 할만하다. 그래서 알람을 새벽 6시에 맞춰놨건만 왜 때문에 나는 8시에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둘째가 먼저 일어나 "엄마, 운동 간다며~" 하고 깨우기에 일어난다.
아이들은 나보다 일찍 일어나 방학 때 풀어야 할 문제집을 풀고 있다. 이런, 아이들보다 늦게 일어나는 엄마라니... 엄마로서 가끔 창피할 때가 있다. 물론 아이들 재우고 내 할 일도 좀 하고 그러다 보니 늦게 자게 되어 알람을 맞춰 놓은 시간과 무색하게 일어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3번 이상은 아침 달리기를 하려고 노력 중이다.
가벼운 운동복과 러닝화, 그리고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선다. 또 하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다. 음악이 없으면 굉장히 지루하기에 언제나 음악과 함께 해야 달릴 맛이 난다. 유튜브 뮤직 차트 인기곡을 틀고 먼저 가볍게 걷기부터 시작한다. 아파트 단지를 크게 돌면 2km 남짓 되는데 단지 뒤, 산 덕분에 적당히 언덕도 있어서 걷고 달리기에 딱 좋은 코스가 완성된다.
걷고 달리고, 걷고 달리고를 반복하다 보면 적당히 숨이 차오르는 것이 새삼 기분이 좋다. 어릴 땐 얌전히 걷지 못하고 그렇게 뛰어다녔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크게 달릴 일이 없다 보니 이렇게 숨이 차는 것도 오랜만이다.
단지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이어서 산으로 올라간다. 동네 뒷산이라 그리 높지는 않지만 올라갈 때 끝도 없는 나무 계단은 언제나 힘이 든다. 무거운 몸을 질질 끌며 겨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데, 앞서가는 할아버지는 나보다 거뜬히 잘 올라가신다. 난 언제쯤이면 이 나무 계단을 날다람쥐처럼 후다다닥 오를 수 있으려나, 벌써 저 멀리 보이는 할아버지보다도 못한 나의 저질 체력...
그리고 산을 오르며 음악을 듣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딸이 학교 방과 후 방송댄스에서 몸을 흐느적 대며 췄던 노래가 '엄마 퀸카'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I'm a 퀸카'였다. 역시 내 귀가 문제겠지만, 처음 시작하는 가사는 'Hey, you, 뭘 보니? 내가 좀 sexy, sexy 반했니'?? 운동할 땐 축축 쳐지는 노래가 싫어서 댄스 음악을 선정한 거였는데 이런... 가사였구나... 딸이 흥얼거리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1학년이 흥얼거리기엔 가사가 좀 그렇구먼. 산을 오르며 별 걸 다 깨닫는다.
산 중턱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산 중턱에 오르면 아저씨들이 맨손체조를 하는 조그마한 공간이 나온다. 빽빽한 나무에 숨겨져 있는 작은 공간인데 이곳에서 아저씨들은 스트레칭을 한다.
나이를 들어보니 왜 아줌마 아저씨들이 맨손체조를 하고
퍽퍽 소리가 나도록 등을 나무에 치며,
몸 앞뒤로 왔다 갔다 손뼉을 치는지 알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몸이 너무 시원하기 때문이다.
일찍 와서 이 공간을 오롯이 내가 차지해 스트레칭을 할 때면 별거 아닌 데도 희열을 느낀다. 때론 누군가 먼저 와 있을 땐, 스트레칭을 하지 못해 아쉬울 때가 있다. 아직 대놓고 할 만큼의 나이가 들지 않아서인지 숨겨진 공간이 아닌 곳에서는 좀 창피하기도 하고, 왠지 나도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나 싶기도 하다.
스트레칭을 끝내고 이제 길을 따라 산을 내려온다. 다시 단지를 반 바퀴 돌아 집으로 돌아오면 얼추 6000보 정도의 걸음이 되어 있다. 운동하면서 흘린 땀이 머리와 온몸에 미끌거리지만, 심하게 끈적이지는 않다. 운동으로 흘린 기분 좋은 땀이기에 그런 것이겠지.
땀에 흠뻑 젖은 채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엄마, 운동 엄청 열심히 했네!' 하며 알아주니 또 기분이 좋아진다. 좋아진 기분으로 아이들 아침상을 차린다.
이 시간이 꾸준해야할테지만, 어쨌든 오늘 하루도 운동할 시간을 지켜낸 나 스스로를 칭찬해 본다.
'하루를 시작하는 공복 달리기로 40대 맞이하기'라는 하반기 목표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