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제학], 사뮤엘 보울스, 2/4
[도덕경제학] 리뷰:
(1/4) 경제학자들은 언제부터 도덕을 무시하게 되었는가?
(2/4) 물질적 인센티브가 평범한 사람들을 악인으로 만들 수 있다
(3/4) 상을 주는 것이 사람들의 의욕을 저하시킬 수 있다
(4/4) 사람들의 행동은 프로그램화할 수 없다
어제에 이어 [도덕경제학] 정리. 오늘은 경제학자들의 “호모 이코노미쿠스” 가정이 현실과 크게 다를 뿐만 아니라, 실제 정책결정과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경제학의 가정이 틀렸음은 지난 수십년간 꾸준히 실험으로 증명되어왔다. 실험경제학-행동경제학의 컨센서스는 이기적 인간, 이타적 인간,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현실 생활에서 매일 느끼는 바이기도 하다.
> George Loewenstein 연구팀은 자신들이 실시한 실험실 게임에서 경기자를 세 유형으로 분류했다. “성인군자는 항상 평등을 선호하며 상대 경기자와의 관계가 적대적인 경우에도 자신이 상대 경기자보다 더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 의리 추구자는 상대 경기자와 중립적이거나 호의적인 관계에서는 자신이 더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적대적 관계에 있는 상대에 대해서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불평등을 원한다. 무자비한 경쟁 추구자는 상대방과 어떤 관계인지에 상관없이 항상 상대방보다 나은 결과를 얻기를 선호한다.” 이들이 실시한 실험에서는 실험 참가자의 22퍼센트가 성인군자, 39퍼센트가 의리 추구자, 29퍼센트가 무자비한 경쟁 추구자에 해당했다. 나머지 10퍼센트는 어떤 유형에도 속하지 않았다. (3장)
<이기적 선호 vs. 사회적 선호>
저자는 이렇게 사회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는 선호를 “사회적 선호”라고 부른다. “이기적 선호”의 반대 개념을 “이타적 선호”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자. 저자는 '사회적 선호'를 정의할 때, 단순한 이타심 뿐만 아니라 “규범을 잘 지키고 싶은 마음”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려는 동기는 진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기지 않고 싶은 사람도 존재하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아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던가, 혹은 정부가 지시하는 대로 무조건 따르고 싶은 욕망도 존재한다.
(나의 생각: “규범을 잘 지키고 싶은 마음”이 “권력에 대한 부조건적인 복종”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한국의 코로나 방역성공을 두고 프랑스에서는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은 아시아인들은 권력을 따르는 경향이 강하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한국인들의 강한 사회적 선호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회적 선호를 가지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행동에서 “체험가치experienced values”를 얻는다. 체험가치는 “공공재에 기여하도록 만드는 근접 동기”이다. 체험가치는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테면 쇼핑할 때와 투표할 때, 우리가 공익을 생각하는 정도는 매우 다르다.
사실 인간이 사회적 선호를 가지고 있다는 가설은 이미 행동경제학에서는 오래전부터 검증된 사실이다. 경제학자들 대부분도 이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동시에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기존에 규범을 잘 지키고 사회적 고려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다. 우리가 고려하는 대상은 “악한 인간”,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형벌 혹은 인센티브를 줌으로써 그들의 행동이 공공선과 일치되도록 할 수 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고, 실제로 그러한 사람들의 행동을 좋은 쪽으로 유도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
이 지점에서 Samuel Bowles의 핵심 주장이 나온다. 정부가 “최악의 인간”을 가정하고 정책을 수립하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정말로 “최악의 인간”이 되기도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인간의 사회적 선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그리고 정부의 인센티브 정책이 사회적 선호를 변화시킨다.
저번 편에서 소개했던 하이파 어린이집 실험이 대표적인 예이다. 금전적인 벌금을 부과했는데, 오히려 지각하는 학부모가 늘었다. “벌금을 부과하는 행동”이 학부모들로 하여금 이기적 인간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Samuel Bowles는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온 방대한 실험결과들을 소개한다. 카르데나스가 실시했던 공공비재화 게임 (Public bad game)을 예로 들어보자. 컬럼비아의 농부들을 대상으로 “가상의 숲에서 나무를 얼마나 벨 것인지”를 물었다. 숲에서 나무를 베면 자기는 많은 수익을 얻지만, 모든 사람이 쓸 수 있는 숲이 그만큼 사라진다. 모두가 알아서 조금씩만 베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 상황에서 조금 더 나무를 벤다면 “개인적으로는 이득”이다.
처음 몇 라운드의 실험에서 농부들은 “최악의 상황 (나무를 다 베어버리기)”와 “최선의 상황 (알아서 조금씩만 베기)”의 중간 정도로 나무의 양을 결정했다. 그런데,카르데나스는 이제 그룹을 반으로 나누어 각각 다른 정책을 편다. 첫 번째 그룹은 나무를 베기 전에 서로 소통하고 대화할 시간을 주었다. 두 번째 그룹에게는 나무를 필요이상으로 많이 배면 벌금을 부과했다. 자, 각 그룹에서 나무베기의 양은 감소했을까, 증가했을까?
결과: 서로 대화를 나누었던 첫번째 그룹은 나무를 덜 베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벌금을 부과한 두 번째 그룹 사람들은 나무를 더 많이 베었다. (!)
의사소통과 암묵적 합의를 추구했던 첫번째 그룹 사람들의 사회적 선호가 올라간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두번째 그룹 사람들은, 벌금으로 인해 나무를 덜 캐어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회적 선호”가 증발해버려서 나무를 더 많이 캐게 된 것이다.
> …벌금을 부과하자 마을 주민들이 환경에 대한 관심을 줄인 이유는 무엇일까? 하이파의 부모들처럼 실험에 참가한 마을 주민들도 벌금을 사회규범을 위반한 대신 지불하면 되는 가격이라 여겼고, 벌금을 낼 위험을 감안하더라도 ‘숲’에서 자원을 과도하게 추출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3장)
우리가 인센티브 정책을 펴는 이유는 악인이 좋은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인데, 똑같은 인센티브 정책이 보통사람들을 악인으로 만들어버린다면? 정책의 효과가 좋을 리 없다.
이로써 Samuel Bowles는 ‘도덕은 우리 연구대상 밖에 있다’고 가정했던 지난 150년간의 경제학이론에 강력한 편치를 날린다. 인간은 도덕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 도덕심은 상황에 따라, 정부정책에 따라 변한다. 경제학이 도덕을 포함해야 하는 당위성이 생겼다.
경제학이 도덕을 연구해야 한다고 하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물질적 인센티브 정책이 인간의 도덕심을 변화시키는 메터니즘은 무엇인가? 언제, 어떻게, 왜, 사람들의 사회적 선호가 바뀌는가? 이에 대해서는 내일 정리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