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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랑의 책읽기 Aug 17. 2020

한국 사회가 공정성 그 너머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

[능력주의], 마이클 영   

내가 여태 본 디스토피아 소설 중 가장 현실적인 작품. 

이제 내 개인적인 디스토피아 소설 랭킹은 1. [능력주의]  2. [멋진 신세계] 3. [1984] 순이다. 



가장 무서운 점은, 우리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이 그려내는 세계를 유토피아라고 믿고 있다는 점. 이 책에서 처음으로 나왔던 조어 “능력주의Meritocracy”는 21세기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추구하는 이상적 사회모델이 되었다.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가 ‘영국사회는 철저한 능력주의사회로 가야한다’는 주제의 담화문을 발표하자 마이클 영이 이에 반대하는 칼럼을 썼을 정도로, 이 책이 예측하는 미래는 소름끼칠정도로 현실화되고 있다.



이 소설은 작가와 동명이인인 가상의 저자가 2034년에 쓴 논문의 형식을 하고 있다. 따라서 소설 자체의 재미는 크지 않다. 독자에게 이 미래세계의 특징이 어떠한지 차근차근 소개해주지도 않아서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런데 다행히도 유강은 번역가의 훌륭한 번역이 이 까다로운 책을 살려냈다. 말이 되는 문장들과 적절한 시점의 번역자주석이 아니었다면 이해하기 상당히 까다로웠을 듯. 앞으로 이 분의 번역은 믿고 봐야겠다.



스포일러가 꽤 많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글을 보기 전 먼저 책을 읽으시길 추천.






능력주의meritocracy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회이다. 능력이 좋은 사람이 더 높은 자리에 올라 돈을 많이 벌고 대접받는 사회. 부모의 계급이나 자산이 자녀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개인의 능력 (= 지능 + 노력) 이 그의 삶을 결정하는 사회. 공정한 시험. 결과에 따른 상과 벌. 매력적인 사회이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이념들은 인간의 본성에 호소하는 단순한 구호를 가지고 있다.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주의가 그렇고, 하이예크-프리드먼의 시장자유주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능력주의사회에 대한 신념이 정말 강하다. 한국에서 끊임없는 화두인 “공정한 사회”는 “능력주의 사회”와 뜻이 거의 겹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을 지배하는 공정성 담론이 극한으로 간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이 소설이 그려내는 2034년 영국이 힌트를 준다. 짧은 결론: 공정성이 유일한 기준이 되는 사회의 모습은 행복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여기서는 자세한 줄거리 대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능력주의 사회가 가지는 근본적 약점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한 번 상위계층으로 올라간 사람은 자식이 내려가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한다. 


가족간의 사랑은 위대하다. 지구상의 모든 아기는 가족의 사랑 덕분에 정상적인 인간이 된다. 그리고 그 가족애는 인류사회의 불평등을 지속-악화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수백 년 동안 사회는 두 거대한 원리, 곧 가족에 따른 선발의 원리와 능력에 따른 선발의 원리가 충돌하는 전장”(p.53)이었다.


능력주의 사회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이 사회가 ‘불공정해보이는’ 귀족계급의 세습을 타파한다는 점에 있다. 재능이 있는데도 멍청한 부잣집 아들에 막혀 기회를 못 잡는 숨은 천재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가족애이다. 가난하지만 능력있는 사람이 공정하게 기회를 얻어 부와 명예를 얻었다고 치자. 그런데 그는 그의 멍청한 아들이 다시 사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까? 


이 책에서도 능력주의로 지위상승을 이룬 집단이 그 세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 [머리 좋은] 부모들은 이제 더는 자녀를 일반 초등학교에 보낼 필요가 없으며, 국가가 특수 학교를 제공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미 몇몇 지역에 사립 학교를 세우는 중이다. 이런 학교에서는 특수 계급 자녀들끼리만 어울리게 된다. 이제 부모들은 요람에 누운 아이가 결국 어떤 교육을 받게 될지 모르는 채 궁금한 눈으로 쳐다볼 필요가 없다. 부모 눈에 비치는 아이는 단순한 어린이가 아니라 고귀한 운명을 타고난 통치자다. (p.284)



[능력주의]가 가지고 있는 가족애의 본질적 문제를 아예 제거한 사회가 [멋진 신세계]의 사회이다. 부모와 가족을 태아생산공장으로 대체한 사회.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날 필요를 없애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아마도 기존 인류가 발전시켜 온 도덕관념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사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유전자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수록, 능력주의의 도덕적 기반은 무너진다. 


능력주의가 도덕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공정성”이라는 도덕적 감수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재능도 있지만 부당하게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즉각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그런데 유전자가 한 인간의 “재능”을 심지어, 그가 “노력”을 얼마나 하는지를 결정한다면? 그리고 그 메커니즘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유전자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면, 위쪽에 있는 사람은 단지 운이 좋은 것 뿐이고, 모든 것은 복권당첨과 비슷해진다. “수저로또”를 “유전자로또”가 대체하는 것 뿐이다.


이 책에서도 유전자에 대한 이해가 발달하면서, 태아때의 분석으로 이 아이가 지능이 얼마나 높을지, 갑자기 지능이 발달하는 시기가 언제인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 (8장) 이에 따라 (늦게 지능이 발달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평생교육정책이 약화된다. 실제로 유전자가 사회적 계층이동을 결정짓는 요소라는 연구는 이미 나와 있다. 


유전자의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그 다음은 인공적인 조작이다. 수저로또에 당첨된 사람은 유전자로또의 번호를 돈을 주고 알아내는 셈. 이런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예전과 같은 도덕적 지지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능력에 대한 정확한 측정은 환상일 수 있다.


마지막 비판은 앞서 말한 두 번째 비판과 정반대 지점에서 능력주의 약점을 지적한다. 아무리 정확한 측정 기술과 유전자 기술이 발달한다고 할 지라도, 정말로 모든 개인의 진정한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사회가 올까? 


[능력주의]의 사회에서는 논란의 여지 없는 측정기술이 개발되어 이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나오지만, 2034년까지 실제 지구사회가 이를 모방하기는 힘들어보인다. 2020년의 우리 통계적 기술로는, 능력주의 정책 하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서 억울한 삶을 사는 사람이 항상 존재한다. 당장 수능 한 번으로 삶의 지위가 결정되는 한국 대학입시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 부정확한 측정은 여러가지 한계를 드러낸다. 첫번째, 측정이라는 말 하에 오히려 집단에 대한 차별이 심화될 수 있다. 실제로 회사에서 “능력주의” 정책을 시행한 이후 여성승진률이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 이유또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각 집단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한계 (여성의 경우 양육)를 고려하지 않는 단순한 능력평가를 시행하는 경우. (2) 이미 각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bias가 정성평가에 반영되는 경우.


두번째는 좀 더 철학적인 질문인데, 과연 통계적 기법으로 모든 예외적 사건들, 예외적 능력들을 전부 측정하고 예측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는 “통계학”이 순응주의에 근거한 학문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과도 맥이 닿아 있다. 모든 예술가들의 새로운 창작물들을 그들의 유전자로 예측할 수 있을까? 



대안은 결국 다양성과 결과의 평등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능력주의가 고착화된 사회에서 새로운 갈등이 나타나는 현상을 서술하면서, 저자 본인의 사상을 잠깐 드러낸다. 능력주의를 반대하는 파퓰리스트 집단이 발표하는 “첼시 선언”이 대표적이다.


> 계급 없는 사회는 다양한 가치를 소유하는 동시에 그런 가치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사회가 되리라. 우리가 사름들을 지능과 교육, 직업과 권력만이 아니라 친절함과 용기 상상력과 감수성, 공감과 아략에 따라서도 평가한다면, 계급이 존재할 수 없으리라. (…) 계급 없는 사회는 또한 개인적 차이를 수동적으로 관용할 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장려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마침내 그 온전한 의미를 찾게 되는 관용적인 사회가 되리라.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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