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회의록의 마지막 줄에서 멈추지 않는다.
하역장이 열리고,
악기들이 실려 들어온다.
반입된 검은색 케이스들이 무대 뒤편을 채운다.
화물용 엘리베이터 문이 묵직하게 여닫힌다.
무대 위로 이어지는 손발의 분주함.
한기 서린 공기와 케이스 표면의 차가움이 손끝을 스친다.
나는 오늘의 타임테이블을 꺼내 펼친다.
손끝에 종이의 뻣뻣한 감촉이 닿는다.
줄지은 숫자들이 빽빽하게 시야를 채운다.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자연스레 생략된 나의 점심.
그 시간에 바라보는,
세팅된 무대의 잠시뿐인 고요.
의자들은 가지런히 놓여 있고,
조명은 옅게 바닥만 비춘다.
무대 위에는 아무도 없는데, 무언가 울리는 듯한 착각.
그리고 적막을 깨는 연락들이 시작된다.
무대 위에서, 무대 뒤에서,
대기실에서, 공연장 로비에서,
서로 다른 방향의 요청들이 동시에 덮쳐온다.
“이 의자가 불편해.”
“보면대 각도가 이상해.”
“마이크 좀 옮겨 주시면 안 돼요?”
“조명이 눈을 찌르잖아요.”
“지휘자 포디움 위치 어때요?”
“커튼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대기실 문이 열린다.
“대기실이 너무 건조해요.”
“잠긴 캐비닛 비밀번호 아세요?”
“스팀다리미 있나요?”
“물은 어디서 구하죠?”
로비 쪽에서도 전화가 온다.
“출연자 가족이 왔어요,
backstage에 안내해 달래요.”
“화환 금지인데 꽃이 배달 왔네요?”
사무실에서도.
“청구서에 사인해주세요.”
“지출내역 확인 부탁드려요.”
회의록에는 쓰이지 않았던 말들은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고.
너는 왜 이런 걸 무시했느냐고, 왜 모르는 척했느냐고.
내가 나를 다그친다.
뾰족한 말, 날 선 눈빛들.
칼칼하게 마른 공기가 우리를 에워싼다.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뭉근한 A 피치가 홀을 울린다.
나는 지휘자의 대기실 문을 두드린다.
“Time to go!”
회의실에서나 보던 창백한 형광등이 비추는 복도를 지나
조금은 신경질적인 무대 조명을 받으며 포디움 앞에 선다.
자, 이제 리허설을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