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라고 하기엔 어딘가 미지근하다.
뜨겁지 않은 감정이 너무 오래 가라앉으면,
그건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다.
그저, 무언가 응고된 감정이 된다.
기획자의 감정은 대체로 조용하다.
소리 지르지 않고, 울지도 않는다.
불편함을 말하지 않는 건
예의이자 효율이다.
다툼은 구조를 흐트러뜨리고,
목소리는 감정을 낳는다.
그러니 나는 감정을 삼킨다.
되도록 조용하고, 되도록 단정하게.
하지만 그날의 에어컨 바람은 이상하게 건조했다.
숨을 들이쉬면
내 안 어딘가가 바스러질 것 같았다.
회의에서 나오는 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불쾌하지 않은 얼굴로,
불만 없는 사람처럼 걷는다.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문제가 없어졌다고 믿는 얼굴들 사이에서
나는 다시 다음 공연을 준비한다.
나는 문제를 꺼내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간에 맞춰 리허설을 시작한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는 누군가 소리를 낸다.
숨을 내뱉고,
빛을 받으며,
땀을 흘린다.
나는 그 무대 뒤에서
검은 옷을 입고,
숨을 죽이고,
소리를 삼키고,
빛이 닿지 않도록 조심한다.
내 존재는
비워진 무대의 그림자에 스며들고,
나는
보이지 않아야만 보이게 되는 공연을 만든다.
감정은
나의 언어가 아니다.
침묵은,
내가 배운 유일한 문장이다.
분노는 말이 되지 못하고
조금씩 굳는다.
뜨겁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그저 오래된 무게처럼
몸 안 어딘가에 가만히 눌러앉는다.
들어본 적 있는가?
기획자의 분노에 대해서.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한스러운 창가,
가사 없는 세레나데.
그렇게,
한스러운 무언가로 예술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가
내 창가에 데롱데롱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