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난다.
무대는 조용히 꺼지고,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누군가는 손을 흔들고,
누군가는 박수를 받는다.
그날 나를 부르는 사람은 없다.
좋은 공연이었다는 뜻이다.
기획자는
보이지 않는 것을 준비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조율하며,
기억되지 않을 타이밍을 견디는 사람이다.
제때 빛이 켜지고
사람이 길을 잃지 않으며
음이 흐르고 감정이 고조될 수 있도록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율한다.
말보다 앞서 판단하고,
문제보다 앞서 조정하며,
불편보다 앞서 눈치채야 한다.
그 모든 일이
‘당연한 질서’처럼 작동해야 하기에,
자신의 흔적은 남기지 않는다.
그게 이 일의 방식이고,
나의 일이다.
그래서 잘한 일에는 이름이 붙지 않는다.
공연이 무사히 끝난 날일수록,
기획자는 더 조용히 사라진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이름이 불린다.
질문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호출된다.
“이건 누가 확인한 거예요?”
“그걸 왜 이제야 말하세요?”
그 순간, 나는
그날 회의록에 쓰이지 않았던 문장들을
다시 떠올린다.
기록되지 않은 긴장,
묵인된 불협화음,
빠져버린 타이밍.
기획자는 실수를 말하기 전에
실수를 대신 끌어안는 사람이다.
설명보다 먼저 미안해지고,
질문보다 먼저 책임을 감각한다.
그건 책임이 아니라,
태도라고 믿는다.
그래서 때때로 누군가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잘하셨어요”라고 말하면
나는 순간 멈칫한다.
혹시 무언가를 들킨 건 아닐까.
내가 남기지 않으려 했던 흔적을
누군가가 보게 된 건 아닐까.
이름이 붙는다는 건,
어딘가 어긋났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정말 잘한 날이라면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이 직업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인사다.
무사히 끝났다는 것.
내 이름이 남지 않았다는 것.
나는 없었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는 것.
그래서
잘한 날일수록
나는 조금 더 조용히 퇴근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무 일 없게 만든 사람이
되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