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
그게 때로는 위안이 된다.
그러다 사람들이 도착하고,
무대 위로 빛이 들어오고,
조율 소리가 벽을 넘을 즈음
나는 슬며시 옆으로 빠진다.
그제야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한다.
왜 나는 아직도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할까.
나는
이 일을 좋아한다. 온 맘 다해.
아름다운 게 좋고,
그걸 나누는 사람이 좋고,
그들과 함께하는 공간이 좋고,
그래서 그 순간을 준비하는 일이 즐겁다.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그 순간이 아름답지 않을 때 든다.
서로가 못난 얼굴을 하고,
못난 말을 내뱉고,
엉뚱한 곳에 마음이 쏠릴 때.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상처받을 정도로
이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오늘도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꺼지고,
빈 객석이 남아 있다.
나는 덕지덕지 붙여진 상처밴드 위,
새 살에 간지러움을 느끼며 밴드를 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니,
좋아서, 또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