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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자아 superego Nov 15. 2021

동화 속 결혼과 내가 한 결혼

놀랍도록 정확한 신랑의 각도계산

집안 책꽂이 서류를 정리하다가 문득 발견한 낡은 종이 한 장. 그 종이는 춤을 추듯 흔들거리며 사뿐히 착지했다. 처녀 적 나였다면 바로 관심 밖의 주제인 그림이었을 종이 한 장. 그것은 바로 우리가 신혼이었을 당시 침실에 놓을 침대의 사이즈와 문이 열리는 각도를 계산한 그림이었다. 당연히 이 그림의 화가는 남편이었다. 이 화가를 알지 못하고, 아니 알려고 하지 않고 그림만 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결혼에 대하여 나는 환상에 좀 들뜬상태였다.



여하튼 이런 수리적 감각.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가 가진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차분함, 놀라울 정도로 강한멘탈, 그래서 약간은 뻔뻔함. 이것은 원래 그가 가진 것이었다. 그리고 살면서 내가 착각했던 것은 그가 차가운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뜨거운 사람이 아닐 뿐이었다. 철없던 시절의 나는 뜨겁지 않으면 차갑다는 것으로 양분화하면서 살았었다. 혼인 7년 차에 내가 제대로 안 것은 그는 "따뜻한 사람"이란 것이었다. 이토록 내가 생각했던 결혼과 내가 경험했던 결혼생활 속에서 많은 오류들은 수정되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호감이 가는 사람은 "서로 비슷한 사람"일까 아니면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일까? 이것은 생활방식, 가치관, 취미, 인간관계 등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며 큰 카테고리로 "성격"이라는 이름으로 범주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부간 이혼 사유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인 "성격차이"가 보여 주 듯, 행복한 혼인생활을 위해 진정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심리상담학을 공부해보니 "성격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와 당신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다름을 인정한 뒤 바로 뒤따라야 할 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인 것 같다. 물론 7년 차 결혼생활하면서 아직도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있다. 하지만 결혼에 대하여 깊게 생각해보면서 싸움을 싸움으로만 끝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점은 바뀌었다. 서로를 존중하는 법은 사랑이나 열정과는 다른 문제였다. 그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평생의 숙제이고 그 어떤 것 보다 노력해야 하는 것이었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정신분석에서는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거울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지만 거울 속 자신은 진짜 자기 모습이 아니다. 이런 허구에 가까운 상상계를 지나 아이는 점차 자라 자아를 형성하며 상징계에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사회와 의사소통하고 현실을 감당하며 책임지는 어른의 세계인 실재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라캉의 이런 이론은 정말 기가 막히게 연애 이론에도 꼭 들어맞다.



가만히 있어도 소개팅이 들어오고 애프터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상상계 속의 나의 20대에선 결혼생활은 환상이었다. 나이에 30이라는 숫자를 달고나서야 나는 겨우 상징계에 접어들었는데 그 이유는 소개팅도 가물해지고, 애프터는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고 남자들도 끊임없이 여자를 재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늦게 (연애에 대하여) 자아를 깨닫고 상징계에 접어든 현실은 혹독했다. 특히 결혼에 대하여 실재계 생활은 "책임, 언어를 통한 소통, 성숙, 어른의 세계" 투성이었다. 특히 아이를 낳고 나서 부딪히는 세상과의 소통은 정말 너무나 힘들었다. 상상계의 환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건 실재계에 들어오고 보니 매우 안정적이다. 상상계는 분명 신은 났지만 늘 들떠있는 느낌이었고, 상징계에서는 늘 불안했다. 비로소 인간의 최고의 지향점은 실재계인가 싶기도 하다.




벌써 6년이 지난 우리의 결혼식



아직도 여러 미혼인 지인들이 묻는다. 결혼생활 할만해요? 나는 아끼는 사람들에겐 결혼을 장려하지 않는다. 한다 해도 아이는 낳지 말라고 말을 한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사회구조가 임신, 출산, 육아에서 여성이 희생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사회구조는 진정한 실재계 속의 세상이다. 이쯤에서 자문자답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세상은 상상계인지 상징계인지 실재계인지.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실재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 또한 그러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배워나가는 과정은 끝없고 고통스러운 것은 확실하다. 그것을 모두 감수할 수 있다면 반드시 실재계 속의 안정되고 성숙된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나이 올해 37살. 아직 나는 세상을 배워가는 나이라서 혼란스러움도 많고 어려움도 많다.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은 더욱 크고 고민되는 것들도 많지만 실재계 세상의 문을 좀 더 활짝 열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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