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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자아 superego Nov 30. 2021

공무원 휴직을 결심했다

- 나를 돌보기 위해 휴직 후 내가 한 것들

"ㅇㅇ씨, 지금 발령 났어." 수화기 너머로 들린 주무님의 목소리는 독감으로 입원해있던 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했다. 그렇다. 나의 인사발령은 돌연했다. 독박육아와 건강문제로 인사과에 고충을 신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고충을 들어주지 않을꺼면 말이라도 해주지,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그것도 입원 병상에서 발령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퇴원 수속을 밟고 짐을 싸러 갈 준비를 해야 했다. 신생 업무를 맡게 되었고, 발령 난 지 한 달 만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공무원이었던 나는 재난의 최전방에서 근무할 의무가 있었다. 그것은 육아를 하든, 몸이 약하든지 예외가 없었다. 방호복을 입고 위험을 감수하며 근무를 했지만 이상하게 공무원은 계속 욕을 들었고, 확진자는 쏟아졌다. 마침 아이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입소하게 되었고, 코로나는 긴급 보육과 휴원을 번갈아가며 적응의 과제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렇게  집안과 일터 안팎으로  꾸역꾸역 일을 하면서 지쳐가고 있었다. 어쩌면 갑작스러웠던  인사가, 설상가상의 코로나 지금의  휴직을 있게  것인지도 모르겠다.



“달라진 일상”
- 아침 풍경

휴직을 하고 제일 먼저 달라진 것은 아침 풍경이었다. 그렇다고 늦잠을 잔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새벽 6시가 되면 눈을 뜬다. 하지만 마음이 달랐다. 여유로웠고, 편안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아침 풍경도 여유롭고 아늑했다. 눈뜨는 아침부터 나의 마음을 정화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오늘은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 걱정이 아니라 설렘으로 시작하는 것이 너무도 감사했다.



“달라진 일상”
- 새벽기도와 명상

우선 일어나자마자 운동 겸, 명상 겸 108번 절을 한다.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엄마라는 직업은 휴직할 수 없으므로 집에서 아이가 잠들어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운동을 절로 선택했다. 홈트도 좋지만 절은 운동하는 기분과 명상하는 느낌을 동시에 들게 한다. 108번 절을 모두 마치는 데는 15분 정도가 소요되고, 가쁜 들숨과 날숨을 정리하는 명상의 시간을 5분 정도 가진다. 하루 새벽 20분 절과 명상 시간이 내 하루의 시작을 탄탄하게 해주는 느낌이 든다. 절이 끝나면 현관문을 열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경제신문을 집어 책상에 올린 뒤 몸을 씻는다.


“달라진 일상”
- 경제신문 읽기

경제신문을 읽는 일은 주식을 잘하기 위해서도 부동산 투자를 잘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정치적 성향을 적게 받고 가장 객관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경제 속에 나타난 세상의 철학, 인문학, 과학 등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그리고 스크랩할만한 기사를 발견하는 것은 마치 보물을 찾은 것처럼 설렜다. 의미 없이 형식적으로 쥐어짜 냈던 보고서를 잡고 있던, 불과 한 달도 안된 워킹맘 시절을 생각하면 읽기와 쓰기, 생각하기가 이렇게 신나는 일일 수 있단 게 놀랍다.



“달라진 일상”
- 아침식사

휴직 생활 중 식탁에 앉아서 아침식사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나를 돌보는 명백한 행위였다. 일할 땐 아이 챙기랴, 출근 준비하랴 아침 식사는 언감생심이었다. 하루에 1끼는 과일과 채식을 하자고 결심을 했고, 찐 야채를 따듯할 때 여유롭게 먹을 수 있는 아침이 매일매일 펼쳐졌다.



“달라진 일상”
- 걷기와 독서 그리고 여유

출퇴근을 위해 운전하면서 교통체증을 겪고, 주차를 위해 의미 없는 공회전을 안 해도 되는 삶. 그 삶이 바로 여기에 있다. 휴직! 그런 삶을 대신해 독서와 5천보 걷기 일상이 들어왔다. 웬만한 이동은 지하철을 이용한다. 요즘은 코로나-19 상황이 좀 심해져서 문뜩 불안하지만, 마스크 잘 챙겨 쓰고 책 한 권 꼭 손에 쥐고 오며 가며 읽는다. 그렇게 하루 30분 기본 독서시간을 번다. 아 물론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온몸에 전율이 흘러 책을 쥐고 있는 손과도 연결된다. 가끔 책의 전율과 음악의 전율이 함께 만날 때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곤 한다.



“달라진 일상”
- 공부가 재미있다!

나를 설레게 하는 공부를 한다. 수많은 법령과 개정사항, 지침 속에서 허덕이는 삶은 이제 그만. 끝없이 學(배울 학)만 하던 수년간의 세월이 흘러, 비로소 휴직해서야 習(익힐 습)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교육학 박사로써, 상담과 심리를 전문 분야로 전공한 나는 요즘 제2의 인생을 꿈꾸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학습의 시간을 몰입하게 하는 고마운 휴직. 나를 위한 온전한 시간.





상담학에선 "신성한 이기심(holy selfishness)"이라는 말이 있다. 타인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은 자기를 돌보며, 타인을 돌보는 일의 균형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를 위한 휴직은 신성한 이기심의 발로에서 시작된 것이다. 나를 잘 돌봐야 아이를 챙기고, 가족을 보살피며, 궁극엔 공직에서 나라를 잘 이끌 수 있을테니까. 그 모든 것의 구심점엔 언제나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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