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전공의 전임의 파업기간의 일기
<아래 내용은 2020년 8월 24일부터 약 2주간 지속된, 전공의 전임의 파업기간 동안 진료교수로 근무하던 날들의 기록입니다. 이미 1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당시에 감정과 기록들을 오랜만에 들추어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여전히 의료인이 아닌 국민들에겐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어, 파업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파업의 원인이나 결과에 대한 판단은 최대한 배제하고, 그저 당시 병원에서 일하고 있던 진료교수 1인이 바라본 파업기간의 병원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기록한 내용입니다. 편견 없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20.8.24
전공의, 전임의 파업 1일 차다.
코로나 19의 대유행 가운데 파업이라니, 제정신인가....라는 게 일반인들의 생각이다
이들이 왜 파업을 하는지, 전공의 전임의 없으면 어떤 상황이 되는지
그리고 그것보다, 이번에 나온 정책이 향후 10년 이후에 어떠한 모습으로 의료의 모습을 바꿀지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의약분업 때와 마찬가지로 의사들은 환자를 내팽개치고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파업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이기적인 돈만 밝히는 집단으로 매도될 것이다. 안타깝다.
오늘부터 쓰는 이 기록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파업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어떠한 정치적 목적이나, 의견을 피력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병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전공의, 전임의 선생들이 떠나간 자리를 지키는 “교수” 나부랭이 들의 일상을 하나씩 적어보려 한다.
다행히도 필수과 수련시간이라는 명목 하에 이번 주 3일간은 인턴 선생들이 일과시간에는 남아있다. 어찌나 다행인지.... 십 년이 훌쩍 넘게 술기와 오더 내기를 직접 해보지 않은 교수들에게 인턴 술기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아주 쉬운 비유로, 대기업 창업자에게 제품 조립공정을 20년 만에 다시 하나하나 다 해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오늘 들려온 여러 가지 교수들의 웃지 못할 슬픈 에피소드를 정리해보자면..
심전도를 찍고 전송하는 법을 몰라, EMR(전자 의무기록)에 업로드를 하지 못한 일, 최근에 바뀐 항생제와 수혈 처방 시스템을 몰라서 어떻게 쓰는지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다가 결국 30분 많이 냈지만, 믹스 수액을 안내서 병동에서 전화를 받은 일, 3일에 한번 처방하는 펜타닐 패치(이게 가장 복병이었다)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EMR 오류로 내는 법이 구전으로 전해오는 전설의 펜타닐 오더 내기... 그 앞에 많은 시니어 교수들은 좌절하였다.
이제 시작이다.
그래도 그들에겐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가 있지 않은가. 그동안 전공의들에게 말로만 지시하다가 직접 해보면 그들의 고충도 알게 될 것이고, 스스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실무를 하는 입장에서 앞으로는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조금이나마 해본다.
주니어 교수로서 가장 두려웠던 파업의 여파는, 시니어 교수들의 환자를 대신 전공의, 전임의처럼 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다행인지 병원과 과에서는 지정의 교수에게 무조건 콜을 하도록 지시하였고, EMR 시스템을 아예 쓰기 어려운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노교수님들은 자발적 타의(?)에 의해 레벨이 제일 낮은 나 같은 진료교수들의 서포트가 자연스럽게 붙었다.
그래 환자는 살아야지...
마취과 인력의 부족으로 운영할 수 있는 수술방의 수가 줄고, 수술과에서도 수술인력이 없어서 어떤과에서는 응급을 제외한 정규수술은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였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수술을 하기로 한 과여서, 수술하는 사이에 콜을 받을 교수 당직을 정하고, 그 백업을 정하고, 수술에 들어갈 인력을 어레인지 하느라 매우 고생을 하였다.
이 와중에 인력이 필요한 정규 간이식 수술을 교수진으로 인력을 꾸려서 진행하였다. 각방에 교수 2명씩은 배치해서 집도의와 어시스트를 번갈아가면서 진행하였다.
신기하게도 교수들이 일찍부터 들어오자, 수술시간이 빨라지는 기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난관은, 어려운 간동맥 문합술이나, 담도 문합술이 아니라 진정 오랜만에 해보는 검체 접수와 수술 후 회복실 피검사와 같은 매우 소소한 일들이었다.
한 교수님은 아이패드로 받는 전자 동의서 앱을 열지 못해서 끙끙대셨고, 가까스로 동의서를 여는 것에는 성공하였으나, 글씨가 작아 설명하는데 애를 먹으셨다.
오늘 하루는 다이나믹한 하루였다. 병동에서도 진짜 노교수님께 다이렉트로 콜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콜 하고, 술기도 “아무개 교수님, foley catheter 좀 넣어주세요...”라고 할지 고민하기도 하였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밤은, 처음으로 인턴 당직을 주니어 교수들이 서는 첫날이다.
그들은 10년 만에 받은 이 "콜과 함께 불타오를 밤"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인턴 첫날이 생각난다. 심전도 하나 제대로 찍지 못하고, ABGA 하는데 30분간 낑낑대며 울먹이던 동료들과 어리바리한 모습의 나...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빨리 적응해야 이 긴 밤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200명이 넘는 외래의 Descriptor로 차출되었다. 전임의 때 후임이 들어오지 않아서 4년 동안 들어갔다가, 작년부터 탈출한 시니어 교수님의 외래 보조라...
아직 기억하고 있어서 인계받을 게 없는 사실이 왠지 씁쓸하다.
의료공백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리겠다는 처음의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결국 어떻게든 굴러가게 만드는 이 노예근성이 이 파업의 힘을 약하게 할까 봐 걱정된다.
파업을 하는 그들의 마음과 내용은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로 파업을 하는 순간 여론의 싸늘함을 피할 수는 없고, 그 어떤 정당한 논리도 “환자를 버리고 병원을 나간 거 아니냐”는 공격 앞에 막을 방패막이는 없다.
모두가 노력은 하는데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나는 주어진 일을 할 뿐, 파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환자들 회진 때 잘 설명하는 것 정도가 내가 힘을 싣는 작은 노력일 뿐인 것 같다.
내일도 하루가 길거 같다. 오늘의 미숙함이 어서 짬바로 극복되길.
-파업 1일 차 진료교수 나부랭이 J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