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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무 Feb 18. 2022

세상을 이끄는 겜돌이들

킹덤의 전설


 나는 게임을 그렇게 즐겨하는 편은 아니다. 스타크래프트가 나온 것이 중학교 때였나.

게임을 하기보단 중계나 분석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대학에 들어올 때까지 할 줄은 알았지만 PC방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하는 편은 아니었다.

1998년 출시된 스타크래프트가 우리나라 IT 발전에 큰 영향이 끼쳤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내가 입학한 2002년도는 월드컵도 있었지만, 이전까지 프로게이머들이 등장하고 여러 대회들, 게임 채널들이 성장하던 시기였다. 광안리에 게임 리그를 보겠다고 10만 관중이 모이던 시기가 이때였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선, 후배들도 대학에 들어와서 2년간 예과라는 자유시간 동안 친구들과 보내는 많은 시간은 PC방에서 보내는 게 거의 일상이었다.

당시 e 스포츠의 열기는 광안리에 10만 관중을 동원할 정도로 뜨거웠다

학교 축제에서도 스타크래프트 게임 리그는 늘 좋은 아이템이었고, 동아리별 길드를 만들어서 대항전도 하고 WEB 상에 만든 아이디로 서로를 부르는 유치한 놀이도 자주 했던 것 같다. 게임 실력에 따라 친구들 사이의 위상도 달라졌고, 2년의 예과 생활을 채워주는 즐거운 유희 거리였다.

본과에 올라오면 모두가 그동안 잘 놀았으니, 공부에 몰입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다. 하지만 전국에서 1등들을 다 모아놓아도 그 안에서 1등부터~200등까지 생기듯, 각자 자기 위치에 적응을 하기 된다. 본과에 오면 게임을 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하나 둘 다시 겜돌이로 복귀하는 친구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디아블로 2의 출시와 본과 때 열린
 WOW(World of Warcaraft) 세상은 많은 이들을 유급의 길로 이끌었다.


신기한 것은 대학로의 PC방이 크게 2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갈 때면 늘 2,3, 4학년 선배님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게임을 하고 계셨다. 1학년들이 들어가면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들어가곤 했었던 것 같고, 그때는 아마 서로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땡땡이치고 PC방 죽돌이라니...’

 어렴풋한 기억 속에 한 곳은 '인터네피아'라는 곳이었고, 학교 강의실과 조금 가깝지만 한 층이 작고 여러 층으로 되어 있어 올라가면서 아는 얼굴을 만나면 인사하고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본과 4학년 형님들이 맨 위에서 죽치고 계셨던 것 같다. 여기 출입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잠깐 머리 식히고 다시 들어가야지”라는 마음가짐이었다면,  

조금 더 먼 곳에, 지하에 으슥한 담배연기가 자욱했던 음침한 ‘킹덤’이라는 곳이 있었다. 한번 정도 우연히 가보고 그 후로부턴 전설처럼 무용담만 들어보기만 했는데,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진짜 찐들만 모이는 곳이라고 했던 것 같다. 열댓 명의 고정 멤버가 있다고 들었는데, 대부분 1년 정도는 유급을 하더라, 프로게이머에 데뷔를 한다더라. 며칠 간 학교에 안 나오면 거기 있다더라 등 소문이 무성했다. 각 학년 중에 제일 빠져있는 형님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소문만 들리고 우리 학년에도 가끔 가는 친구들이 있다고 듣긴 했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담배 연기 자욱한 대략 이런 느낌 이었던 것 같다


 영화 바람에 나오는 무서운 몬스터 서클 선배들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 생각하면 본과 3, 4학년들 참 귀여운 친구들인데 그때만 해도 왜 그렇게 무섭고 하늘같이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10년의 세월이 지나고, 그렇게 애정 했던 사람들도 WOW의 세계에서 탈출하고, 다들 전문의도 따고 결혼도 하고 아재가 되었다. 물론 새롭게 LOL을 시작한 사람도 있겠지만 예전만큼 게임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또래나 선배들에선 보지 못한 것 같다.


최근 간이식이나 외상 말고도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나 여러 가지 연구에 관심을 갖다 보니, 여러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기게 되고, 병원 내에서도 다른 과 선배들을 종종 뵙게 된다. 현재 병원에서 가장 많은 activity를 보여주고 있는 96~00학번 선배들이 대학이나 병원에 주로 계시고 종종 나가서 창업하신 분들도 계시고 사회 리더로 많은 주목을 받고 계신 분들을 SNS를 통해 알게 되거나 뵙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때 그 킹덤 이야기를 하실 때가 있다. 내가 그때 거기 있었는데 말이야.... 세상에...

라떼는 말이야...자네 킹덤이라고 있었는데 혹시 아나?

생각해보면 그때 도서관을 지키고 있던 세상을 바꿀 것 같던 천재 같은 형님들은 예상보다 많이 남아 계시지 않고, 개인의 행복을 위해 개원을 했거나 조용히 살고 있는 분이 많은 것 같고, 오히려 딴짓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던 선배들이나 동기들이 병원이나 사회 여러 곳에 많이 보이는 것 같다. 겜돌이 아니 딴짓하던 이들의 반란이랄까. 지금 의료 인공지능에서 주목받는 루닛도 힙합동아리 하던 친구들이 만든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위에서 내려오는 일들만 잘 해내는 개미 같은 사람보단 다양하게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사람들이 결국 빛이 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 기업 루닛의 대표 서범석 선생, 의대 후배(응원합니다^^)

얼마 전 공유했던 신수정 선생님의 글처럼, 범생이들의 시대가 저물고 원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친구들의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부모는 게임만 하는 아들을 걱정했지만, 게임 개발자가 되어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경우처럼 앞으로는 더 이런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P.S 그렇다고 거기 있던 선배나 동기들이 다 잘된 건 아니니 게임 중독이 되진 않기를^^


킹덤의 전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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