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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박스 Oct 18. 2023

ADHD는 예체능에 유리할까?

저는 아직도 우당탕탕 살아갑니다...!

 Prologue :: 저는 아직 하고 싶은게 이렇게나 많은데요?


 여러분은 계속 글과 함께 올라오는 그림들을 보시며 눈치를 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본업은 사실 미술 작가입니다. 지망생에 가까운 삶이기는 하지만, 예술고등학교와 미술대학을 졸업했고 개인전을 가졌으니 글보다는 그림이 본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요즈음은 서울문화재단의 청년작가지원 예술공모가 한창인데요. 저도 그 사업에 도전하고자 어제 교수님께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귀담아들을 멋진 말씀을 많이 들었지만, 그 만큼 고민도 많아지는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술인으로서 ADHD가 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한번 고찰해봅니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


 저는 예고와 미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술고등학교 미술과는 1학년을 파운데이션 과정이라고 해서 동양화, 서양화, 디자인, 공예, 조소(조각)를 전부 체험하는 기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2학년에 진급할 때, 내 세부 전공을 결정해서 남은 2년을 훈련하여 미술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것이죠.

(전공이 맞지 않는 학생을 위해 대학처럼 전과 제도도 있습니다.)


 저는 자극에 민감한 사람이라, 주기적으로 새로운 활동을 하는 이 예술고 1학년 생활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2학년에 진급하면서 최종적으로 동양화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남들이 잘 하지 않으면서 내 적성에 맞는 전공! 정말 근사했죠. 미술대학 한국화 전공을 졸업한 현재도 그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문제는 입시 미술이 끝나고 작가를 지망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어느덧 진짜 내 이름을 걸고 전시를 해야 하는 작가가 되자, 작가로서 일관성 있는 작업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듣게 된 것이죠.


 저는 사실 당황스러웠습니다. 흔히들 입시 미술이 더 엄격하고 자유를 억압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다양한 학교가 제시하는 다양한 시험 유형을 연습하면서 다양한 그림을 그릴 기회를 누렸습니다. 이제는 그런 방황을 끝내고 세상에 내 그림을 보여줄 시간이 된 것입니다.


 이제 좀 준비가 된 것 같아!


 저는 아직도 제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예고 3년에 미대 4년을 보내고도 부족하다고?

 의아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 7년간 놀았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첫 1년은 어떤 전공을 선택할 지 고민하는 기간, 2년 간은 동양화가 무엇인지 입문하고 대학 실기를 준비하는 기간, 학부 생활은 그 동양화라는 틀에서 내가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고 다른 진로도 탐색해보는 시간...


 저는 예고 2학년 때 동양화과를 선택했습니다.

  예고 3학년 때는 정물화로 대학을 들어가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내게 채색화보다 수묵화가 잘 맞는구나, 나는 순지보다 장지를 잘 쓰는구나... 하는 기법/재료적 학습과 학예사 체험 프로그램 참여, 문화재 수리기능자 자격시험 준비, 공모전 참여 등 다양한 관련 진로를 알아보고 준비하는 시간도 가졌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저에 대한 자아인식을 구체화하고 포트폴리오를 쌓아나갔습니다.


 그 결과 졸업 전시를 할 때 즈음 강사 제의를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실기력이 생겼고, 개인전 제의를 받아 초대 개인전을 열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소소한 공모전 당선 이력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저의 방황은 이제 끝났고, 노력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의 아주 큰 오산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요...?


 아마 많은 미술학도들이 공감하는 부분일겁니다.

미술대학에 들어가면 내가 지금껏 배운 입시미술을 거의 다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미술대학을 졸업하면 학부생 때의 버릇을 버려야 하죠.


  어쩌면 미술학도 뿐만이 아니라 학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일 겁니다.

초등학교 수학 시간에 숫자는 실수만 존재한다고 배웠는데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는 허수가 튀어나오는 그런 당황스러움이요.


 저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간 나의 훈련은 그저 훈련이었고, 진짜 나의 작업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습니다.

이제는 작가로서 나의 일관성 있는 생각과 그에 따른 작업물을 보여주어야 할 시간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그 정도로 확실한 주관이나 철학이 없습니다. 기실 지금도 어찌나 막막하기 짝이 없는지 모릅니다.


창의성의 허상


흔히 ADHD들은 창의성이 높을 것이고, 그러니 예체능에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일단 이 창의성을 발산적 사고라는 중립적 표현으로 대체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ADHD 분들과 자조모임에서 대화를 나누어보면 ADHD는 일반인들에 비해 발산적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는 분들이 많이 보입니다. 아마 상대방 역시 저를 보며 그렇게 느꼈을 겁니다.


 그렇다보니 예체능이라기보다는 " 성실하게 규범에 수렴하기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도출해야 하는 진로" 를 선택하신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예체능, 개발자, 기획자 등의 직업군).


 물론 결코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혼자서 규칙적인 생활이 어렵다는 단점을 극복하고자 공직 등 조직 사회에 소속되거나 의사, 회계사 등의 전문직을 선택하신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다만 흔히 말하는 발산적 사고(창의성)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고 개선할 것인가를 고민한 다는 점에서 모두가 같아보였습니다.


 그러니 ADHD가 발산적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 정도는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개인의 몫이라는 거죠.


 여기부터는 각자의 몫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재능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극복의 대상일 것입니다.

내가 가진 그 요소에 신이 내린 의도 따위는 없습니다. 저는 그 판단은 언제나 개인의 몫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러니 이 글을 읽어주시는 당신이 혹시 ADHD이시다면,

본인이 ADHD라고 해서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만나는 수 많은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유일무이하고도 평범한 개인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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