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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박스 Oct 20. 2023

 ADHD의 청각 주의력 : 예? 뭐라고요?

 제가 청력이 나빠서 그런게 아니옵고

  제목은 제가 평소에 많이 하는 말이라 저걸로 한 번 정해보았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자꾸 상대방의 말을 놓치고 되묻게 됩니다. 청력에는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에요.


 제가 청각 주의력이 부족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상당히 최근의 일입니다.



 

 주의력 부족 : 단순히 산만하다는 것이 아니다

 요즘 금쪽같은 내 새끼들 등 이런저런 육아 프로그램을 보면서 ADHD를 '산만한 사람'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ADHD는 기본적으로 주의력 결핍이기 때문에 산만한 사람의 비율이 높은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ADHD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ADHD 관련 커뮤니티에서 서로의 경험담을 공유하며 알게 된 점이 있습니다. 주의력 결핍이 생각보다 정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누군가는 충동성이 높은 나머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서 의도하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는 무얼 먼저 해야할 지 몰라 이리저리 움직여보지만, 나의 행동에 대한 결과가 그만큼 늦게 나오기도 합니다.

 더러는 누군가는 무얼 먼저 해야할 지 몰라 반대로 움직이지를 못하는 게으름으로 나타납니다.

 

 생물학적 원인은 모두 같지만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라는 점이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조용한 ADHD

제 경우는 흔히 말하는 조용한 ADHD(정확히는 주의력 결핍인 AD만 있고, 과잉 행동을 의미하는 HD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경우도 진단명은 ADHD로 나올 수 있습니다.) 입니다.


 저는 유년기를 돌이켜봤을 때 과잉 행동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주 게으른 것만도 아니라서 학업에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예체능이었는데, 쉬는 날에도 종종 도서관이나 미술학원에 갈 정도였거든요.

 게임 중독은 좀 있었지만 사춘기 이후로 자연스레 흥미가 줄었습니다.

성인인 지금도 쇼핑 중독, 술, 담배, 스마트폰 중독... 저는 아무 것도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 아니 그럼 뭐가 문제야? 이거 그냥 패션 ADHD 아냐?'


 죄송합니다, 잘 못 들었어요!

 제 문제는 청각 주의력과 작업 기억이었습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고 일머리가 없다는 거죠.

언뜻 들으면 사소한 문제 같습니다. 하지만 사회 생활을 하시는 성인 이상의 분들이라면 저게 꽤나 성가신 문제라는 데 공감하실 겁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한결같이 상대방이 말을 할 때 집중력이 떨어졌습니다.

귀에 뭔가 목소리는 들리는데... 언어가 와닿지 않는겁니다. 마치 ASMR을 듣고 있는 것처럼 저의 정신은 무한한 세상 그 너머로 잠깁니다.


 그런 저의 습벽은 제 일상의 많은 부분에 지장을 야기합니다.

약속 날짜를 기억하지 못해서 상대방에게 되묻게 됩니다.

이미 설명을 들었음에도 일의 순서를 기억하지 못해 일을 하는데 있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미 일정이 바뀌었다는데 저만 듣지 못해서 홀로 엉뚱한 행동을 합니다.

 

 흔히 말하는 일머리 없는 사람의 전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한 번만 더 말씀해주시겠어요?

 안타깝게도 저는 부지런하기까지 합니다. 잘못 들은 것 같으면 몇번씩 다시 확인하고 싶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은 저의 점검을 피곤하게 느끼게 되고, 이는 저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 들었거나 못 들었는데 내가 알아서 일처리를 해버리면 그 때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하고 맙니다.

진퇴양난의 우리네 인생은 참 쉬운 일이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듣는 말의 양을 줄여라

 어이없게도 제게 있어 그 답은 듣는 말의 양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진짜 어이없죠?

하지만 조금만 더 읽어보시면 이게 무슨 말인지 여러분도 아마 납득하실 겁니다.


 저는 말이 진짜 많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진짜 좋아하고, 내 이야기를 지껄이는 것도 정말 좋아하죠.

그래서 취미로 문학, 비문학 책을 가리지 않고 읽으며, 한자 캘리그라피를 하고, 일기도 씁니다. 노래나 라디오를 틀어놓고서요.

제 하루는 가히 언어로 시작해서 언어로 끝난다고 할 수 있어요.


선택과 집중

 언뜻 보면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제 일상에서 저와 여러분이 눈여겨봐야 할 점은

 " 뇌에 입력되는 정보량이 너무 많다"

라는 점입니다. 이 점에서 저와 여러분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합니다. 저처럼 책을 읽으시건, 유튜브를 보시건 모두가 정보의 홍수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같을 겁니다.


 하지만 ADHD는 주의력 결핍으로 인해 이 정보들 사이에서 선택과 집중을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어진 정보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빠트린다거나,

중요한 정보보다 중요하지 않은 정보를 기억합니다.

 더러는 내 사고의 틀이 강한 나머지 내 사고에 맞게 정보를 왜곡하여 수용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게 최대한 필요한 정보만 제공되는 환경을 만들어보는 겁니다.


나만의 알고리즘 : 내가 주체가 되어보자

요새는 알고리즘이 사회적인 화두가 된 지 오래입니다. 단순히 SNS나 유튜브에만 적용될 줄 알았던 알고리즘은 개인의 검색창과 쇼핑 영역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제는 포털이 개인의 인터넷 기록을 활용해 맞춤형 광고를 송출하는 시대가 도래했죠.


 그래서 알고리즘이 개인의 사고를 편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라는 사회적 우려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사회에 이렇게 촘촘하게 알고리즘이라는 기술이 스며든 이상, 알고리즘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한번 발상의 전환을 해봅시다. 내 검색 활동 내역이 알고리즘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알고리즘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저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안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의도적으로 제가 필요한 정보의 컨텐츠만을 검색해서 뒤져보며 좋아요를 눌러댔습니다. 불필요하거나 내 정신건강에 안좋다 싶은 컨텐츠는 직접 찾아보지 않되, 내 알고리즘에 뜰 때마다 제한이나 차단 기능을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제 알고리즘에서 제가 선택한 분야의 컨텐츠가 약 70% 정도의 비율을 차지하게 됩니다. 보기 싫은 컨텐츠들은 홍수같이 쏟아지기에 아쉽게도 다 차단하는건 불가능하더라구요.

 하지만 이건 사실 제 나름의 실험이었는데, 제게는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저는 작가로서 갤러리 계정들을 팔로우하고, 공모전 관련 피드들에 좋아요를 누르며 그 페이지들에 오랜 시간 머물렀습니다.

 인스타그램을 그런 식으로 사용한 결과, 제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은 불필요한 정보의 비율이 확연히 줄고 제게 필요한 공모전 정보를 우선적으로 추천했습니다.

이런 결과는 유튜브 알고리즘에서도 동일했습니다.


 제가 제게 필요한 정보를 통제하는 경험을 한 것입니다. 꽤나 짜릿했어요.


서두에 언급한 듣는 말의 양을 줄여보자라는 것은 이런 의미였습니다. 내게 불필요한 정보가 들어오는 기회를 줄여보는 거죠.

알고리즘 이야기는 그 중 하나일 뿐, 저 같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은 꽤 다양합니다.


노래 듣는 걸 좋아한다면 가사가 있는 가요보다 뉴에이지나 클래식으로 대체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 이 역시 락 음악을 좋아하던 제가 수험생 때 사용하던 방법입니다.)


방이나 책상 위가 산만하다면 청소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시각적 요소는 우리 사고의 무려 6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글을 읽을 때도 저자의 신뢰도를 한번 검증하고 읽으면 마구잡이로 읽을 때보다 내가 수용하는 정보의 질이 올라갑니다.

( 유튜브 등 다른 컨텐츠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안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저는 ADHD 치료를 통해 갑자기 신세계에 눈을 뜬다던가 하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ADHD는 그 증상과 정도의 다양성 만큼 치료에서도 개인차가 무척 큽니다.)


 다만, 약의 도움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약을 복용함으로써 저런 다양한 생활습관 개선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ADHD인에게 있어 궁극적인 치료는 생활습관의 개선인 것 같아요.


그러니 저는 그저 여러분과 이런 경험들을 계속 공유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함께 안온한 일상에 안착할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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