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와 수용 : 내가 원래 그러려던 건 아니고
말의 핑퐁 : 나는 왜 니 말을 안 듣고 싶을까
오늘은 제가 지은 제목이긴 하지만 서두가 다소 도발적이군요.
물론 저것도 저의 고질적인 말버릇에서 따왔습니다.
저는 왜 일이 잘 안 풀릴 때 저렇게 말을 덧붙이게 되는 걸까요?
오늘은 제가 시간도 많고 해서 이 부분에 대해 고찰하는 글을 남겨봅니다.
아니 진짜 그러려던 게 아니라
살다 보면 누구나 타인과 갈등을 하게 됩니다. 채무관계나 송사 같은 명명백백하고 스케일 큰 전투에서부터 니는 사람이 왜 그러냐, 하는 유치한 입씨름까지...
이 글에서 제가 초점을 두려는 갈등은 바로 입씨름입니다. 니가 맞네 내가 맞네 하는 바로 그 한 판 승부 말입니다.
일상적인 상황 하나를 가정해 봅시다. 친구끼리 어느 펜션에 여행을 간 상황입니다.
저녁을 차리려는데 친구가 나한테 버터를 사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저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마트로 향합니다. 마트에 버터가 없을 리 없고, 나는 버터가 어떻게 생겼는 지도 알죠!
의기양양하게 마트에 가서 버터를 사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벌컥 화를 냅니다.
" 야, 이거 마가린이잖아."
" 아니 포장지에 버터라고 대문짝만 하게 쓰여있잖아. 뭐가 문제야?"
" 식물성 버터...? 세상에 식물로 만든 버터가 어디 있어, 이거 마가린이야."
놀랍게도 포장지 한쪽에는 마가린이라고 쓰여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포장지 앞면에 낚여 마가린을 사 온 것입니다.
제가 3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그 옆에 있는 다른 버터를 샀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버터를 사 오는 정도의 단순한 일에 그 정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죠.
아마 잘못에 지분이 있다면 50%는 마가린을 식물성 버터라고 표기한 이 포장지 탓이고 50%는 제 덜렁대는 성격 탓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 제가 돌이켜봤을 때는 그래요.
이러니 저러니 누구나 그렇듯 자기 책임으로 돌리는 것을 내켜하지 않습니다.
저는 상대방 탓을 하기로 마음먹었죠.
" 아니 나는 식물성 버터라길래 이것도 버터인 줄 알았지, 사람이 좀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네가 식물성 버터는 마가린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려줬어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저는 상대방을 도발하고 만 것이죠.
" 버터는 동물의 유지방을 굳힌 거야 이 멍청이야."
당연히 상대방은 더 화가 납니다.
" 그럼 사람이 좀 멍청할 수도 있지 거. 내가 실수하려고 실수한 건 아니잖..."
" 아니 변명할 시간에 환불하고 버터를 사 와."
" 야 유제품을 어떻게 환불을 해."
" 아니 가서 물어보기라도 하면 되잖아!"
대화는 어느새 생산적인 결론에서 저만치 멀어져 입씨름이 되어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일단 수용해야 하는 이유
정답은
" 어 뭐야, 마가린이었네. 나도 포장지 때문에 헷갈렸다 미안."입니다.
물론 내가 100% 미안할 상황은 아닙니다. 사람이 좀 헷갈릴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대화에 있어 어느 정도 나의 책임을 인정할 때 좀 더 생산적인 결론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상대방 탓을 하지 않고 저렇게 대답했다면 상대방의 대답도 좀 달랐을 겁니다.
" 아냐, 그럴 수도 있는 거고 뭐 어쩔 수 없지. 그럼 그냥 버터 대신 마가린으로 할까?"
" 뭐, 나 같아도 헷갈렸겠다. 진짜 미안한데 마가린 말고 버터로 다시 사다 줄래?"
내가 틀렸다고?
우리는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어, 우리가 아니라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이 내가 틀렸다!라는 생각으로 확장되면서 상대방이 나를 공격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제게 중요한 태도는 이겁니다.
사고에 있어 상황적 맥락과 관계적 맥락을 분리하는 겁니다.
언뜻 듣기에 어려운 말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전혀 어려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 저 사람이 지금 나를 지적했다고 해서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저는 누군가와 갈등을 빚을 때마다 의식적으로 이 명제를 되뇌입니다.
물론 진짜 상대방이 괜히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짜 상대방이 이상한 놈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갈등은 기본적으로 더 나은 결과로 나아가기 위해 여러 사람이 벌이는 일종의 협동에 더 가깝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공격하기 위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이러한 훈련이 절대 쉽지는 않습니다. 모든 갈등 상황에 들어맞지도 않습니다.
다만 많은 상황에서 이 명제는 갈등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해소하는 데 있어 도움을 줍니다.
적어도 당장의 갈등이 감정 싸움으로 변질되어, 한두 가지의 사소한 사건으로 서로를 손절하는 비극을 막아줍니다.
내가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고, 상대방이 나의 의견을 수용함으로써 우리는 관계를 지키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도 서로 다정히 살아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