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박스 Nov 15. 2023

화장실에 갇힌 단편

올린게 너무 없어 소설을 업로드해봅니다... 봐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해요

 화장실에 갇혔다. 왜 세상은 자취생에게 이런 시련을 주나.

 나는 모든 일을 개운하게 끝마쳤다. 그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선 문 고리를 쥐었다. 둥근 문고리를 부드럽게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우측으로 돌렸다. 잠금쇠가 잘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랬는데. 문고리는 불현듯 무언가에 걸린 듯 멈춰섰다. 식은 땀이 뒷목을 타고 흘렀다. 본능적으로 손에 힘을 주어 덜걱덜걱 문고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문고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 이 거지같은 문짝이 언젠가 사고를 치리라는 직감을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지금은 때가 늦었고.

 내가 지금 가진 게 뭐가 있지. 다행히 나의 반대편 손에는 변기에 앉아 시간을 때우려고 들고 온 휴대전화가 있다. 그래 전화를... 잠깐.
 전화를 어디에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머릿속이 어그러진다. 119에 전화를 할까? 허나 이런 하찮은 일로 긴급 신고를 하기는 너무 미안하다. 그럼 답은 집주인인가? 집주인에게는 이 집의 모든 방을 열 수 있는 여분의 마스터 키가 있다. 그에게 연락을 하는 것은 일견 제법 타당한 생각같다. 하지만 지금 집주인에게 전화를 한다고 한 들, 그가 바로 마스터 키를 챙겨서 이리 달려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그런 일을 벌였다간 이 집의 계약 연장이 험난해질 수도 있다. 친구나 가족에게 연락하고 싶지만 다들 지금 이 시간이면 직장에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휴대전화는 이 시련을 해결해줄 수 없다. 21세기 현대 사회에 자취방 화장실에 갇혔는데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니.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만약 이 집이 내 자가였더라면 저 문짝을 그냥 부수고 나갈 수도 있었을까. 나는 사실 그냥 저 문을 부수고 싶다. 단지 그렇게 했을 때의 집주인의 눈총과 수리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화장실 타일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것 뿐이다. 돈은 없고 눈치는 있는 이의 비애로다.

 영원히 여기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사실 평소에도 집 앞 편의점 외에는 딱히 외출을 하지 않기는 한다. 그러니 집에서 안 나가는 상황이나 화장실에서 못 나가는 상황이나 도긴개긴이긴 한데, 그렇기는 한데...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더 침울해진다. 그래, 그 이상 생각하지는 않기로 하자.
 나는 가만히 심호흡을 하곤 머리를 비웠다. 가만히 SNS를 켜서 메세지를 남겼다.

" 내가 우리 집 화장실에 갇혔다. 퇴근하고 시간이 남으면 구해주러 오라. 답례로 저녘을 사겠다."

 이 메세지는 24시간 동안 내 SNS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24시간 동안 한 놈 정도는 보지 않겠거니 하는 심산이다. 문득 이리 SNS에 글을 쓰는 동안 이러지 말고 친구들에게 각각 문자 메세지로 부탁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화장실에 갇혔다는 이 내용을 구구절절하게 여러번 반복해서 쓰는 것은 너무 구질구질하지 않은가. 어차피 부끄러운 내용을 알려야한다면 단박에 끝내버리는 편이 낫다. 나는 그래 손가락을 재촉하며 메세지를 남기곤 얼른 휴대전화 화면을 꺼버렸다. 언제 사람이 올지 모르니 배터리를 아껴야 한다.

 " 하, 진짜 내가 살다 살다 별 일이..."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와중에 육두문자를 뱉지 않은 나 자신의 훌륭한 인품에 스스로 감탄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의 한탄만으로도 마음이 좀 개운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흥분이 잦아든다. 나와 삼 평 남짓한 요 화장실만이 남아 고요로 침잠한다. 그저 내 맥박이 박동하고 옷 자락이 스치는 소리만이 선연하다. 화장실이 원래 이렇게 조용했던가. 여기 갇혀 있는 한 내 세상은 정말로 이게 전부라니. 나는 공부를 할 때도 고요한걸 못참아서 유튜브로 10시간짜리 ASMR이니, 공부에 도움이 되는 음악이니 하는 영상을 틀어놓고 공부하는 인간이다. 하물며 나는 화장실에서는 볼일을 볼 때 나는 소리가 거슬린다고 락 음악을 트는 습관이 있다. 그런 나로서는 이런 고요함이 실로 생경하기 짝이 없다.

 다시금 불안감이 고개를 디민다. 차라리 저 변기에 머리를 박고 기절한다면 이세계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내가 아는 한 변기에 머리를 박고 이세계에 가는 내용의 만화는 세상에 없었다. 뭐, 변기에 머리를 박아도 이세계에 가기야 가겠지. 삼도천도 이세계는 이세계 아닌가.

 나는 이 차갑고 쓸쓸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휴대전화를 켰다.
 변기에 머리를 박는 대신 이세계로 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있다. 게임이나 해야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이런 순간을 대비해서 게임 속에 제 2의 자아를 만들어둔 게 아닐까? 이건 정말 20대 씩이나 나이를 먹고 할 생각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게임을 끌 생각은 없다.
 화려한 불빛이 나를 감싼다. 곧 웅장한 음악과 함께 모바일 문명이라는 글씨가 화면에 떠오른다. 안빈낙도 안분지족이 별게 아니다.
 생각없이 손가락을 놀리다보니 학창 시절 생각이 난다. 학생 때는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 때도 휴대전화로 영어 단어장 따위를 보곤 했다. 돌이켜보면 꽤나 대단한 학구열이었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으니 옛날 이야기이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영어를 지금은 번역되지 않은 게임을 즐기는데 쓰고 있다. 학창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통탄할 지도 모르겠다. 취준은 또 언제 하지.

 이토록 단편적인 생각의 편린 사이를 이리저리 비약하는 사고는 내게 있어 참으로 유서깊은 습벽이다. 자각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서도 그것은 강박적으로 의식하지 않는 이상 고칠 수 없는 천성이 아닐까? 나는 복잡하게 생각하다가도 별안간 단순하게 결론 지어 버리고 만다. 흔하디 흔한 용두사미의 전형이 아니런지.

 이내 다시 생각을 거두어들이며 게임에 몰입했다.

 휴대전화 불빛 너머로 어스름히 땅거미가 진다. 슬슬 저녘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SNS로 메시지 하나가 왔다.

「 너 설마 아직도 거기 갇혀있어? 」

 예. 놀랍게도.

「 어어, 너 오늘 야근 없으면 이거 좀 열어주러 올 수 있냐? 」

「 아니 이 미친 새끼가, 진작 사람 불렀으면 됐잖아... 아냐, 얼른 갈게 기다리고 있어봐. 」

「 우리 집 비상용 열쇠 현관문 옆 화분에 걸려있으니까 그걸로 열고 들어오면 된다. 」

「 너는 어떻게 된게 사람 새끼가 대책이 없이 살고 있... 아니야, 얼른 갈게. 좀 쉬면서 기다리라.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