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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Dec 12. 2022

싹.

   “장동, 너 어디가? 오늘도 결석할 거야? 담임이 어제 너네 집 어디냐고 물었어.”

  교실에서 동이 바로 뒷자리인 건우가 교문 앞에서 몸을 돌리는 동이를 발견하고 소리를 쳤다. 동이는 그런 건우를 향해 주먹을 턱 밑으로 올려 보이며 말했다.

  “븅신 새끼, 상관 마, 너 교문 앞에서 나 봤다고 담임한테 이르면 죽는다.”

  건우는 계속되는 결석에 담임이 동이 집을 찾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말했지만, 담임은 집을 방문하는 행동 같은 건 하지 않을 것이다.   


  신학기 둘째 날부터 동이는 학교를 빠졌다. 결석 다음 날 담임은 집으로 전화를 했고, 그 전화를, 슬프게도 고릴라가 받았다.      

  4년 전, 공항에서 “아빠야”라고 엄마가 소개해 준 고릴라를 처음 만났다. 우람한 키에 한눈에 봐도 털이 북실북실한 새아빠를 보며 동이는 진화가 덜 된 유인원을 떠올렸다.

  엄마가 자신을 데려가 주기를 3년을 기다린 동이에게 한국은 마냥 꿈의 나라였다. 한국에만 가면 몽고에서의 외로운 생활, 외할머니의 구박이 다 끝나고 보고 싶은 엄마와 함께 행복하기만 하리라 믿었었다. 하지만 술에 취한 듯 붉은 얼굴에 흙 묻은 장화를 신은 새아빠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동이는 알 수 없는 불안에 마음이 떨렸다. 불안은 이곳이 행복의 나라가 아님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동이는 새아빠를 고릴라라 이름 붙였다, 물론 혼자서만. 가끔 엄마 앞에서 고릴라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아직도 혼자서는 마트에 못 가는 엄마는 그 단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고릴라와 담임이 통화를 한 다음 날 동이는 등교를 했다. 교무실로 동이를 부른 담임은 결석의 이유와 동이의 상황에 대해 이것저것 묻다가 시퍼런 빛의 동이 손목을 보았다. 담임은 이내 소매를 걷어 올려보더니 아예 교복 상의를 들췄다. 교복으로 가려진 동이 몸은 온통 푸른빛이었다. 동이의 옷을 가지런히 한 담임은 양호실로 동이를 데려가려 했지만, 동이는 양호실 따위는 결코 가지 않았다. 이 정도로 양호실에 가야 한다면 동이는 매일 양호실에 가야 했다. 그런 동이를 보며 담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가 너 이렇게 때릴 때 엄마는 뭐하시니?”

  “그냥 있어요.”

  그날부터 담임은 고릴라와 통화하지 않았다. 한국말이 서툰 엄마와도 통화할 수 없으니 결석이 길어지면 동이에게 직접 전화했지만 그 전화는 안 받으면 그뿐이었다.


  동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담임의 눈빛이 너무 싫었다. 동이로서는 그 눈빛을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냥 한심해하거나 불쌍해하는 눈빛 아니고,  물론 다정한 눈빛 일리도 없었다. 머리가 아프거나 배가 너무 아플 때 나오는 눈빛... 통증이나 괴로움을 참고 있는 듯한... 암튼 그런 복잡한 눈빛이었다.

  담임은 그 눈빛으로 말했다. 학교는 나와라, 중학교는 졸업해야지...  


  오늘은 학교에 갈 생각도 했지만, 교문을 보자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건우 녀석을 만나니 학교 갈 마음이 더 없어졌다. 이미 닫힌 교문을 뒤로하고 터덜터덜 걸어가자 이내 시장 입구였다. 거기 서서 PC방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노래방 사장이 이리 오라며 손짓을 했다. 어쩐지 반가워하는 눈빛이었다.

  “동이야 너 잘 왔다. 그지 않아도 너한테 전화를 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오늘 내가 서울 나갈 일이 있어 6시는 돼야 올 것 같아. 그때까지 네가 노래방에 좀 있어라. 있을 수 있지? 오늘은 용돈 좀 더 줄게”

  건우 녀석 때문에 꿀꿀했던 기분이 이내 시원해졌다. 동이로서는 웬 떡이냐였다.

  “알았어요, 갔다 오세요,”

  어차피 손님도 별로 없을 거고, 혼자서 신나게 노는 일만 남은 거였다. 노래방 사장은 동이에게 노래방 기계도 자유롭게 사용하게 했지만, 무엇보다 카운터 뒤에 있는 컴퓨터 사용을 제지하지 않았다. 동이 원한다면 그 컴퓨터로 게임도 할 수 있었다.  

  노래방은 지하 1층이었다. 계단을 뛰어내려와 카운터 안쪽 소파 위로 가방을 던졌다.      


  온통 외국인인 이 시장은 학교를 빠진 동이의 단골 배회지였다. 1년 전쯤 시장통을 하릴없이 오가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이 켜져 있고 음악이 나오는 이 노래방을 발견했었다. 그때부터 노래방은 동이의 안식처가 되었다. 덥거나 춥거나 거리보다는 실내 노래방이 한결 나았기 때문이었다.

  노래방 사장은 한국에서 가장 동이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노래방 사장이 좋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동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어떤 설교도 하지 않았다. 노래방 사장이 요구한 건 딱 한 가지였다. 동이가 몇 시간 씩 노래방을 지키는 날이면 사장은 동이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어줬는데, 그럴 때면 꼭 다짐을 했다. 이건 너 그냥 쓰라고 주는 용돈이야. 네가 노래방 봤다고 주는 돈 아니야. 어디 가서 노래방 봐주고 돈 받았다는 소리 하면 절대 안 돼.

  사장은 그런 어렵지 않은 요구를 할 뿐, 보통 한국 사람들처럼, 너 어느 나라에서 왔니? 왜 왔니? 학교는 왜 안 가니? 등등을 묻지 않았다. 한국말 참 잘한다는 칭찬도 하지 않았고, 욕하지 마라라는 말 따위도 하지 않았다. 동이는 그런 말들에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동이가 한국의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 배운 말은 “ㅈㄴ”와 “ㅆㅂ”이었다. 아이들은 대부분의 말에 그 단어를 썼는데, 자꾸 듣다 보니 차이점을 알게 되었다.  “ㅈㄴ”는 보통 단어 앞에 썼고 “ㅆㅂ”은 문장 맨 뒤에 썼다. 한국말이 익숙해지면서 동이는 그 단어가 주는 쾌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문장 뒤에 그 단어를 붙이면 뭔가 안에 있는 게 해소가 되고 기분이 시원해졌다. 그래서 애들이 이 말을 자꾸 쓰는구나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의 어른들도 이 말을 많이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들보다 이 말을 더 많이, 더 익숙하게 쓰고 싶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너 학생인 거 같은데..”

  노래방에 앉아 ㅆㅂ을 감탄사처럼 연발하며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데, 알록달록한 모자를 쓴 아줌마가 들어와 말을 걸었다. 가스검침원이라고 했다. 가스검침원이면 가스 검침이나 하고 가면 되는데... 동이는 짜증이 올라왔다.

  “너 중학생이니? 근데 왜 학교 안 가고 여기 이러고 있어. 노래방 주인하고 무슨 사이야? “

  ’이 아줌마가 진짜..‘

  가스 검침원은 뭔가를 눈치챈 듯 동이의 등을 두들기며 말을 이어갔다.

  ”가기 싫더라도 학교 가야지. 그래야 어른이 돼서 제대로 살 수 있어. 커서 뭐 하고 싶은 게 있지? 그거 하려면 학교 가야 돼 “     

  아! 동이도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어른이 되면, 애새끼 데리고 너희 나라로 가버려, 소리치며 동이와 엄마를 두들겨 패던 고릴라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동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발길질하던 4학년 때 아이들, 몽고, 몽고간장 하며 놀리던 5학년 때 아이들, 3년이 지나도 한국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혀를 끌끌 차던 집 앞 슈퍼 계산원, 그들 모두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동이가 어른이 되어 하고 싶은 것은 딱 그 한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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