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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Jul 11. 2023

하노이 서경


  거리는 흡사 놀이공원의 범카장 같았다. 시장 안의 길은 따로 중앙선이 그어져 있지 않았다. 아슬아슬 교행이 될 것 같은 거리에, 올라가는 차, 내려가는 차, 반대로 후진하는 차, 관광객을 태우고 있는 전기자동차, 승용차, 오토바이, 그리고 사람들이 한 데 뒤섞여 끊임없이 달리고 걷고, 클락션을 눌러댔다. 사고가 안 나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앞에 가던 차가 멈추면, 뒷 차는 앞 차 꽁무니를 물며 사람 한 명도 지나갈 수 없는 간격을 두고 섰다. 가만히 보니 그렇게 서야만 종횡무진하는 오토바이가 끼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전기 자동차에 타고 있는 관광객들은 그 아슬아슬한 운전에 두려움과 경탄을 함께 느끼며 함성을 질렀다. 관광객들은 함성을 질러지만 운전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그저 씽긋 한 번 웃을 뿐이었다.

  전기 자동차는 놀이공원의 꼬마기차처럼 옆면이 없이 지붕과 기둥으로만 되어 있었다. 의자에 앉아 밖으로 팔을 내밀면 지나가는 사람이 닿았다.


  시장통 안, 차가 다니는 도로 사이사이마다 끝이 안 보이는 골목길이 연이어져 있었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다른 골목으로 통하는 연결구가 있는 듯했다. 이 시장 안에 몇 개의 골목이 있는지, 한 골목에는 몇 개의 상점이 있는지 가늠되지 않았다. 상점들은 대체로 작았고, 물건들이 상점 앞 매대에까지 수북이 올려져 있었다. 어떤 상점은 상점보다 매대 위에 있는 물건들이 더 많았다. 한 골목은 같은 종류의 상품을 팔았다. 어떤 골목은 장식품을 다루는 상점들이었고, 어떤 골목은 화려한 베트남 전통의상과 스카프였다. 또 다른 골목에는 과일이 즐비했고, 커피를 파는 골목도 있었다.

  과일 골목 모퉁이에서 중년의 자그마한 여자가 좌판을 지키고 있었다. 좌판 위에는 어린아이 주먹만 한 붉은 게와 길쭉한 맛조개, 이름 모른 생선이 보였다. 생선 비린내는 시장 안의 다른 모든 냄새를 덮었다. 하지만 냄새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시장통 가게였지만, 예전부터 전문가들이 하나 둘 모여 이루어진 상가라 했다.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들다 보니 지금도 그 명성이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육의전같은 것이 그 시작이 아니었을까 추측되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온에 습다 보니 체감온도는 실제 온도보다 높았다. 그 고온을 견디는 나름의 방식일까? 웃통을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남자들이 많다. 웃통을 벗은 남자도 아무렇지 않았고 주변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사람들이 대부분 키가 크지 않았고, 몸피도 왜소한 쪽에 가까웠다. 대부분이 젊은 사람이었다. 비만인 사람과 노인들을 보기 어려웠다.

  비만이 없는 것은 한 번 후루룩하면 없는 쌀국수 때문이란다. 노인이 안 보이는 것은 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전쟁의 영향으로 기성세대가 많이 사망한 탓이라고 후에 들었다. 현재는 인구의 50프로가 30대 미만인 젊은 국가라는데 어쩐지 슬픈 느낌이었다.      


  카페에는 원색의 민소매 티나 짧은 스커트, 혹은 낡은 청바지를 입은 청년들이 거리를 향해 앉아 있었다. 상점 매대 앞에 목욕탕에서 쓰는 플라스틱 앉은뱅이 의자를 놓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네트백이나 라탄백 등이 주렁주렁 걸려있는 상점에서 거리로 나와 호객행위를 하는 머리가 긴 여자들도 있었다. 그 여자들 앞 뒤를 묘기 부리듯 아슬아슬하게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여자들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문을 다 열어놓은 식당 안에서 음식을 테이블 앞에 두고 한 여자가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어딘가 구슬픈 느낌의 베트남 노랫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웠지만, 호기심 어린 얼굴로 여자를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 노랫소리와 함께 거리에는 쉬지 않고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경적이 울렸다고 차가 서거나, 운전자들 간에 시비가 붙지는 않았다.


  여기저기서 쉼 없이 경적이 울리고 쉽없이 자동차가 달리고, 그 사이사이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때때로 자전거가 지나갔다. 인도가 따로 없기에 자동차 도로가 인도가 되었고, 인도는 자동차 도로가 되었다. 검은색 도로 바닥에는 물기가 많았다. 어떤 곳은 흥건하게 물이 고여있기도 했지만, 역시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사람들이 보여 북새통을 이루는 이 거리에서 개의할 것은... 잘 보이지 않았다. 바쁜 듯 여유롭고 복잡한 듯 한가하고 무질서인 듯 질서가 있는 세계, 그곳의 규칙은 그런 모습이었다.        


 시장을 벗어나면 아담한 느낌의 호수가 시선을 빼앗는다. 전설 속 거북이의 후손이 살았다는 호안끼엠 호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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