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시현 Sep 08. 2023

류마티스

  외부로부터 내 몸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면역체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상이 생기면 이 면역계가 비정상적으로 자기 몸을 공격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하는데, 내가 앓는 증상이 이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병명은 류마티스 관절염.

  아주 오래전,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 모형 관절까지 들고 자가면역질환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놀라거나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손이 퉁퉁 붓고 관절 마디마디가 아픈 통증을 이미 충분히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가며 글을 쓰던 그때, 그 통증을 무슨 이름으로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동네 병원의 정형외과 의사는 자신의 은사라고 소개하며 나를 상급 종합병원으로 보내주었다. 종합병원 의사는 두 번째 방문에서 내 병이 류마티스 관절염이 맞다고 확인을 해주었고, 간호사는 관절염은 국민 10대 질환이라며 10대 질환자에 나를 등록시켜 주었다. 그날부터 류마티스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약은 복잡했다. 아침 약, 저녁 약이 달랐고 매일 먹는 약이 있고 일주일에 한 번 먹어야 하는 약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가능한 손을 쓰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손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잠깐 생각했다. 병원을 나와서 곧장 전자매장으로 가 식기세척기를 샀다. 그리고 글을 의뢰받던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이제 글을 쓸 수 없어요. 사무실 마스터는 손이 괜찮아지면 연락 달라고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다. 거기까지였다.

  손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다른 방법이나 도구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약을 잘 챙겨 먹고,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지 않고, 살림은 최대한 팽개쳐두고 장바구니 같은 무게감 있는 것도 들지 않고 걸레든 뭐든 손빨래는 금지, 이렇게 생활하니 손이 편했다. 열도 없고 붓지도 않고 당연히 통증이 없었다. 류마티스를 다루는 최적의 방법은 끝없는 이기심, 그뿐이었다. 그것은 코페루니쿠스적 깨달음 같기도 했지만, 끝없이 이기적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몹시 어려웠다.    

  

  이기적 삶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나의 외관이 멀쩡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슬프게도 겉모습으로 보기에는 너무 멀쩡했다. 열감이 있고 부어있는 손은 자세히 봐야 보였다. 세수를 하거나 물건을 집어 올리기가 어려운 팔꿈치 관절의 불편함은 보이지도 않았다. 커피잔 드는 것, 양치질, 젓가락질, 문 손잡이를 돌리거나 잡아당기는 것... 류마티스는 간혹 나조차 헛웃음이 나올 만큼, 사람들이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사소한 것들을 아주 사소하지 않게, 어렵게 했다. 밥통에서 주걱으로 밥을 푸려면 자연스럽게 손목이 한 번 비틀어진다. 나는 불편을 참으며 밥을 푸던지 이제 불편해질 것을 각오하며 밥을 푸던지 해야 했다. 너무 사소해서 집에서든 외부에서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은, 구차했다.

  둔중해 보이는 문 앞에서 서면 나도 모르게 주춤거린다. 대부분의 사람은 앞에서 주춤거리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 나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씩씩하게 문을 잡아당기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럴 때면 어쩐지 괄시를 받은 듯 마음이 서러웠다.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한 것도 아니고 입원을 해 환자복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닌 나는 내 병을 설명하고 내 통증을 설득해야 했다. 그것은 병이 주는 고통과는 또 다른 절망이었다.

  그래서였다, 일거리가 동반되는 모임을 피하게 된  것은. 지인들과의 짧은 여행, 교회모임, 심지어 명절의 가족모임까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항상 음식이 있어야 한다, 씻고 자르고 냄비든 프라이팬이든 들어야 하고 이어서 설거지가 따르는 음식은 내게는 관절 혹사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가까운 주위 사람들은 내가 류마티스로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이 나를 볼 때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고, 당연히 그럴 수도 없었다. 간혹 세심히 배려해 주는 친구도 있지만 그럴 때면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서 다른 오해가 생겼다. 오해는 순식간에 나를 이기적이고 경우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가족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질병과 통증으로 몸이 상하고 그 질병으로 인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마음 상했다.  그 둘 중 어느 쪽이 더 견딜만한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어느새 십 년을 넘기고 있다.


  세상에는 나눌 수 없는 게 많다. 빵 한 조각은 나눌 수 있지만, 그 빵을 만들기까지의 인내는 나눌 수가 없다. 질병과 고통 역시 배려는 받을 수 있겠지만, 나눌 수는 없다.

  나눌 수 있는 게 많은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나눌 수 없는 게 많은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까,,,?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행복과 불행은 서로 상쇄되지 않다.  작은 물질이나 지식과 경험같이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눌 때 기쁨이 따르지만, 그 기쁨이 나눌 수 없는 것의 무게를 덜어내지는 못다. 나눌 수 없는 것의 무게는 늘 그대로다. 심지어 그 무게를 조금 덜어내고자 하면 더 무거워다.


  나눌 수 없는 것은 나누지 말아야 한다.

  내가 택한 삶은 방식으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보였다...

  나눌 수 있는 것보다 나눌 수 없는 게 많은 당신,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어깨가 무거운 당신, 나눌 수 없어 홀로 있는 당신을 위로하는 것. 그것 할 수 있다.   

  홀로 아픔을 견디는 당신을 위로합니다.

  홀로 눈물 흘리는 당신을 위로합니다.

  외로운 당신을 위로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하노이 서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