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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Apr 18. 2023

학원에서 배우는 2가지

> 코끼리

오랜 시간 사교육 기관과 학교, 문화센터 등에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수업을 했다. 더불어 내 아이들을 키웠고 일가와 주변의 여러 아이들을 보았다. 거기에는 사교육 1번지라는 곳에서 ‘나를 키운 건 8할이 학원이다’ 부류의 아이들도 있었고, 반대로 열악한 환경에서 사교육의 언저리도 못 밟고 자라는 아이도 있었다. 학년 중간에 해외 유학을 떠나는 아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 대입에 성공한 아이, 실패한 아이, ADHD진단을 받은 아이, 어린 시절 천재라고 인정받았던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의도하지 않았어도 유년기에서 성년에 이르는 한 세대를 볼 수 있었다. 한 세대를 보았다는 것은 희미하게나마 ‘코끼리’가 전체로 보였다는 의미다. 전에는 코인지 다리인지 꼬리인지 헷갈리기만 했던 것들이 어느덧 구분이 되고, 대체불가한 각각의 역할이 보였다.     


학원은 아이들에게 학교만큼, 때로는 학교 보다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은 교육시설이 되어있다. 하지만 학원은 해야 할 교육과 하지 말아야 할 교육을 모두 하고 있다. 두 종류의 교육은 각각 다른 결과를 만든다.

코끼리를 인식할 때 비로소 그 상반된 교육과 결과들이 보인다.      


아이들은 단원으로 말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어려워한다. 7단원 9단원 이렇게 말하면 몇 페이지예요? 하고 다시 묻는다. 선생님으로부터 꼭 페이지로 답을 듣고 싶어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페이지가 쉽기 때문이다. 페이지를 찾는 데는 숫자만 안다면 다른 생각이 필요 없다. 어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단원을 찾는 데는 약간의 생각과 집중이 필요하다. 책을 폈을 때 해당 단원이 쉽게 나오지도 않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말하는 게 단원의 어떤 부분인지 알려면 지난 시간에 어디까지 배웠는지를 생각해 내야 한다. 많은 아이들이 허둥대며 책장을 앞으로 뒤로 넘기기 바쁘다. 해당 단원의 문제를 풀어오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꼭 페이지로 들어야지만 마음을 놓는다.      


저학년에서부터 보이는 이런 성향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배우느냐에 따라 강화되기도 하고 점점 옅어지기도 한다. 이 방식이 강화되면 고등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수학과 같은 추상 학문이나 ~생각해 보아라, ~설명해 보아라 와 같은 사고력과 논리가 요구되는 문제에  취약해진다.       


> 해야 할 교육

사교육에서 하고 있고 해야 하는 교육은 당연히 텍스트 중심의 지식 습득이다. 단기간에는 학교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최종적으로는 수능. 여기에 필요한 지식을 특화적으로 얻어서 학교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수능에서도 고득점을 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학원들은 학교와는 비교할 수 없이 부단히 노력하며 성과를 낸다.

학원이 하는 노력의 가장 큰 부분은 ‘무한 반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원은 공부를 하게 하는 장치라고 해도 무방하다. 학원에서 배우는 내용은 학교에서도 배우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학교는 공부를 하게 하는 장치가 아니고, 집에서도 어려우니 많은 부모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있지만 학원을 보낸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보내는 부모도 적지않다.      

  

세상에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이 있는 것처럼 학원에서 지식습득의 교육을 받다 보면 의도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다른 것도 배우게 된다.    

  

> 하지 말아야 할 교육

직접 운전을 하지 않고, 조수석에 앉아 가는 것은 참 편안한 과정이다. 조수석에 편히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바깥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차는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한다.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되기는 했지만, 어떤 길로 어떻게 왔는지는 기억에 없다. 후에 혼자 이 길을 와야 할 일이 생기면 초행길에 따르는 여러 어려움을 치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아이들이 학원에서 배우는 방식이다.      

 

시험을 생각해 보자.

시험이 공지되면 먼저 시험 시간표와 시험 범위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표에 따라 시험공부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에는 각자의 특성이 잘 반영된다. 어려운 과목부터 할 수도 있고, 반복을 위해 가장 먼 날짜의 과목을 제일 먼저 시작할 수도 있다. 교과서를 먼저 볼지 선생님이 주신 프린트를 먼저 볼지도 결정해야 하고, 중요한 부분은 어떻게 반복할지, 문제는 어떤 식으로 볼지도 결정해야 한다. 이런 결정들이 끝나면 교과서와 프린트, 참고서와 문제집을 들고 차근차근 공부를 해나간다.

아이들이  과정을 하나하나 인식하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지불식간에 아이들 머릿속에서는 이런 선택과 결정, 일의 순서, 중요함의 정도에 대한 판단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과정이 학과목 공부 자체보다 중요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논리, 추론, 판단력을 배우며 주관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쌓아간다. 이 아이들이 어떤 성인이 될지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원은 이 모든 과정을 생략시킨다.

시험이 없는 초등학생이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계획이나 결정을 할 필요가 없다. 참고서나 문제집을 비교하며 고를 필요도 없고 학교 선생님이 강조한 내용을 기억해 낼 이유도 없다. 심지어는 시험 범위를 몰라도 괜찮다. 학원이 그 모든 것을 다 해준다. 아이가 할 일은 그저 학원에 가서 앉아 있는 것이다. 입에 넣어주면 씹어 삼키기만 하면 되는데, 학원은 씹는 것까지 대신해주고 싶어 한다.


조수석에 편히 앉아 어떤 길로 오는지도 모른 채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처럼, 아이들은 학원이라는 차에 앉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지만, 오는 과정에서 배우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나치고 배우고 만다.


학원을 보내는 가장 나쁜 방법은 학원을 학교처럼 일상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준비하지 않고 선택하지 않고 결정하지 않는 과정들을 일상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즉 배운다.     


조수석에 앉아 있더라도 운전자가 안전운전을 할 수 있도록 운전과 주위 상황을 살피며 자동차가 가는 길을 주시한다면 나중에 혼자 갈 때도 어려움 없이 그 길을 갈 수 있다. 학원도 이와 같이 보내야 한다.


계속해서 진도와 무엇을 배웠는지를 살피고,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을 점검해야 한다, 초등학생이라면 학원에서 배운 내용과 다음 시간에 배울 목차 등을 아이 입으로 설명하게 하는 것이 좋다. 중학생 이상이라면 반복 학습은 혼자 하도록 두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된다.      


>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초등학생 자녀를 둔 많은 학부모들이 독서, 논술 같은 학과목 연관학원을 보낼지 말지를 놓고 갈등한다. 늘 그렇듯 나만 손 놓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 아이가 뒤떨어지는 게 아닐까 등등의 염려에서 비롯된 갈등이다. 영어 수학과 같은 ‘필수과목’은 오히려 갈등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야말로 ‘필수’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질문을 하는 학부모에게 나는 여유가 되고 아이도 다니고 싶다고 하면 보내도 좋을 거라고 답한다. 사실 이 대답에는 안 보내도 된다는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다.       


좋은 학교와 상위권 성적은 의자 차지하기 게임과 같다. 처음에는 게임 참여자 수에 버금가는 의자가 있어 의자를 차지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의자의 수는 줄고 탈락자가 속출한다. 마침내 하나의 의자만 남는다. 의자 주위에는 투지로 눈빛을 반짝이는 소수의 아이들만이 남아 있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이제 마지막 승자를 가려야 한다.

내 아이가 마지막 그룹까지 올라갈까? 더 나아가 의자를 차지하는 최후의 1인이 될까? 학원은 그 마지막 자리에 당신의 아이를 앉힐 수 있다-고 속삭인다.      


어지간한 월급쟁이 수입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공부한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그런 부모의 열성도 대단했다. 주말마다 수십 킬로를 달려 아이를 학원으로 픽업하는 엄마, 과목마다 고액개인과외를 붙이는 부모, 서울의 강북에서 강남으로, 지방에서 서울로 학원 유학을 보내는 부모...

후에 그 아이들은 부모의 열정과 쏟아부은 물질에 상응하는 정도의 결과물을 냈을까...?  


안타깝지만, 그 과정과 결과에 제대로 선긋기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받은 결과물은 아이의 능력으로 그 정도는 내겠다 싶은 정도에서 대체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과정들이 없었다면 도저히 낼 수 없는 결과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글쎄’였다.       


학원을 보낼 때 학원을 보내는 기간과 성적 사이에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일반적인 아이라면 어느 정도 학원을 보내어 도움을 받으면 성적이 올라간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이 상승세가 학원에서 공부하는 기간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학원을 장기간 보낸다고 성적이 계속해서 상승세를 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성적이 가장 많이 올라간 그 지점을 한계점이라 한다면 한계점을 지나서는 성적이 유지되거나 또는 떨어질 수도 있다. 유지가 된다면 그 학생은 가능성이 충분함으로 두려워하지 말고 자기주도학습에 도전해 보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성적이 떨어지거나 저점에서 올라가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면밀히 살펴서 방향을 바꿔야 한다. 학원에 자선사업을 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공부에 대한 재능은 말할 필요 없이 명석한 머리이고 다음이 노력을 지속할 수 있는 의지다. 불편하지만 노력으로 명석함을 이기기는 어렵다. 학원에 와서 소기의 성과를 내는 아이들 역시 이런 유형의 아이들이다. 그러나 명석한 아이들 역시 학년이 올라갈수록 의자를 차지하는 게 어렵다. 의자의 수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 아이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서는 반드시 부모의 바람을 내려놓아야 한다. 아직 어리다거나, 어려서는 공부를 못했는데, 자라면서 늦머리가 틔여 명문대에 갔다는 식의 희소 확률에 기대 자신을 속여서도 안된다. 냉정하게 아이를 직시하면 아이가 공부가 될 아이인지 어려울 아이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될 아이라 판단이 되면 그 아이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라면, 공부에 대한 압박으로 부모와 갈등의 골만 깊어지지 않도록 세심히 노력해야 한다.      


학원이 아이의 타고난 능력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다시 말하면 학원을 보내든 안 보내든 아이의 현실적인 장래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어떤 학원을 보낼지 말지를 놓고 머리 아픈 갈등을 할 필요가 없다. 어떤 학원을 안 보낸다고 아이의 장래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어떤 학원을 열심히 보낸다고 핑크빛 장래가 기다리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 철학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건 부모의 철학이다. 이 철학은 모든 사람이 오른쪽 길로 가지만 나는 왼쪽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지능과 성향을 포함해 내 아이가 갖고 있는 것을 담담히 받아 들 일 수 있는 이성, 주어진 환경에 대한 현실 인식이 포함된다. 학업에 관한 부모의 영향력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줄어들지만 아이가 세상에 반응하고 적응하는 방식,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에는 부모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힘은 보이는 힘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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