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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Dec 07. 2021

과정 중심주의 교육, 결과중심주의 교육

         

                                                             *이전에 발행한 같은 제목의 글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학년 초, 새로 결성된 수업(토론, 혹은 글쓰기)에 들어가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문득, 내가 몇 년 쉬다가 다시 수업을 시작한 듯 한 착각에 빠질 때가 많았다. 불과 1년 차이인데도 새로 올라온 아이들은 작년 아이들과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1살에도 세대차이가 있었다.


새로 만난 아이들은 대체로 더 똑똑하고 더 풍요로웠고 더 개인주의자들이었다. 동시에 기존의 관습이나 관념은 더 가볍게 여기면서, 변화하는 사회 풍조에는 너무 쉽게 동조하며 동화되었다. 그런 면에서는 한 해 한 해 더 고민이나 생각의 능력을 상실해가는 세대변화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을 변화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는 어른들과 ‘다르다’라고 했고, 그 다름에 약간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old’란 무가치, 악과 다름없었다.

그것이 변화든 다름이든, 왜 이렇게 변했는지, 혹은 왜 이렇게 다른지를 가늠해 보고자 할 때,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 ‘교육 사조’다.      


교육 사조란 일정한 시대와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관통하는 사상이다. 역으로 보면 시대와 장소에 따라 경향을 달리하는 흐름이기도 하다.

낭만주의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예술사조는 우리의 삶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긴 의무교육을 받은 모든 세대는 그 세대를 관통한 교육 사조의 영향력 아래 있다. 이런 교육 사조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강력하고 광범위 때문에  피교육자의 가치관과 행동양식 등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그 교육관의 결값이 된다.  


         

▶ 결과인가 과정인가?     


많은 학부형들이 초등학교 수학이 어렵다고 한다. 자신들이 다닐 때와는 딴판으로 수학을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사칙연산을 배우고 여러 도형과 그 넓이나 부피를 구하는 것 등, 초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수학 교과의 내용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갑자기 인수분해나 방정식이 초등학교 과정에 들어와 어려워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어려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예전의 수학에서 사칙연산은 답을 구하면 되었다. 한 자릿수 두 개를 더해 두 자릿수가 나오면 십의 자리 숫자를 십의 자리로 올려주는 것은 머릿속에서 계산하고 시험지에는 답만 쓰면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올라가는 숫자 자체가 하나의 문제가 되고, 다른 방식으로 하면 십의 보수가 되는 과정 하나하나가 덧셈의 답과 동등한 가치의 문제가 된다. 이것이 분수나 소수로 올라가면, 결국 같은 과정이지만 최대공약수나 최소공배수를 구하는 과정, 약분하는 과정 등이 다시 문제가 되고, 도형으로 들어가면 그림을 보며 공식을 도출하기 때문에 과정은 좀 더 복잡해진다. 도형의 넓이를 공식에 대입해 계산하면 간단하지만, 그림을 보며 과정 하나하나를 짚으면 체감되는 어려움은 배가 된다.

   

머릿속에서 이루어졌거나 연습장에서 이루어졌던 과정들을 꺼내어 문제의 답과 등가에 두는 교육, 과정 중심주의 교육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논리를 갖출 수 있게 되고, 자기 집중력을 높이게 된다.      


과정 중심주의와 대비되는 결과중심주의 교육은 아마도 이 땅에 성리학이나 유교 경전을 근간으로 하는 과거제도가 생긴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대과의 답안지인 대책에는 논리력, 창의력, 문장력 등이 중요한 요소였지만, 그 근간은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와 암기였다. 그들은 읽고 쓰고 암기하는 과정을 무수히 반복해 마침내 경전을 그대로 복기하는 결과를 냈을 것이다. 그런 결과가 없다면 과정의 노력과 인내는 어떤 가치도 가질 수가 없었다.    


결과중심주의 교육에서는 결괏값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과는 결국 시험점수거나 합격자 숫자이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시험 만능주의나 점수 만능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이어진 결과 중심주의 교육의 폐해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이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시험 만능주의, 줄 세우기, 창의력 상실, 사고력 결여 등등.

과정 중심주의 교육은 이 결과 중심주 교육에 대한 반향에서 시작되었다.      


두 교육관은 정치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수적 분위기에서는 대체로 결과 중심주의 교육을 지향했고 진보적 분위기에서는 과정 중심주의 교육을 지향했다. 이런 현실을 되짚어 보면 우리나라 과정 중심 교육의 태동기와 성숙기를 알 수 있다.

     



글짓기의 예를 보면 두 교육 사조의 차이와 그에 따른 결과를 좀 더 선명히 이해할 수 있다.       


 글짓기는 다음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글감 정하기 → 구상하기 (자유 연상)

       →  조직하기(다발 짓기) → 초고 쓰기

                 → 퇴고    


      

▶ 결과 중심주의 교육     

결과 중심주의 교육에서 글짓기는 마지막 단계인 퇴고를 마친 원고다. 눈에 보이는 원고지에 있는 원고에서 선생님은 맞고 틀린 부분을 지적하고 우열을 가른다. 선생님은 채점자인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권위자라는 의미다. 아이들은 이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단순한 과정인 듯 하지만 아이들은 여기에서  세상의 질서와 가치, 거기에 대한 인정과 순응을 배운다.       


하지만 이면에는 원하지 않은 결과들이 있다. 아이들은 틀리지 않아야 하고, 더 잘해야 하므로 새로운 것을 의욕하기 보다는 이미 잘 되어 있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고, 선생님의 기준을 목표로 정하게 된다. 이런 과정의 누적은 몰개성이나 사고력의 결여로 연결된다.     

      

▶과정 중심주의 교육     

과정 중심주의 교육에서 글짓기는 그 첫 단계인 글감 정하기부터 시작된다. 글감을 정하기 위해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면 이미 글짓기가 시작된 것이다. 글감을 정하고, 정해진 글감에 따라 자유롭게 연상되는 어휘들을 떠올리고, 그 어휘들을 다시 스스로 정한 기준으로 다발을 짓는다.

이 모든 과정이 글짓기임으로 마지막 단계로 완성한 원고는 특별히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생각이나 상상에 정답과 오답이 있을 수 없다. 같은 이유로 우열을 가를 수도 없다. 결국 채점이 불가능하다. 선생님은 더 이상 채점자 즉, 권위자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나’를 확인하고 확인받는다. 내 느낌, 내 생각, 내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선생님의 채점 혹은 권위, 그리고 지켜야 할 여러 약속이나 규칙에 제한받을 필요가 없다.      


과정 중심 교육환경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톡톡 튀는 개성과 창의력, 높은 자아 존중감을 갖는다. 동시에 동전의 양면처럼 개인주의적 성향, 나아가 이기심이 강화된다.

     

네 마음 가는 대로 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

광고 카피나 노랫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말들이다. 과정 중심주의 교육의 발현은 이런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은 과정 중심주의 교육 1세대가 과정 중심주의 교육 2세대를 키우고 교육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 교육 사조의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동시에 누적되어 나타나고 있다.

     

학교 폭력 피해 아이의 마음이나 아픔은 안중에도 없고, 그런 생각조차 하기 싫어하는 가해 아이들이나,

옆에 있는 임대아파트 아이들은 그들 단지 어린이집에 들어올 수 없다고 소리를 높이는  엄마들이 갖는 문제가 모두 그들이 받은 과정 중심주의 교육 때문이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당한 영향을 받았음은 부인할 수 없다.     

 

두 교육 사조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는 없고, 서로 보완적 관계가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를 위한 첫걸음은 두 교육 사조를 알고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나 ‘내 아이’가 받은 교육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다음 발걸음을 떼기가 좀 더 수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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