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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Dec 04. 2023

문해력

▶   본래 모습

  문해력의 기본은 당연히 읽기다. 사전에서는 글을 읽고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이해한다는 것은 글에 녹아 있는 중요한 정보나 의도를 알 수 있고 나아가 행간의 의미까지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해력을 확장하면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어법에 맞게 정확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쓰기’까지 포함한다. 이런 문해력의 정의를 보면, 나는 높은 수준의 문해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을 것이다.        


  위정자, 중식, 사서 선생님, 심심한 사과. 금일...

  이 어휘들은 매체를 통해 보도된 문해력 저하의 실제 사례들이다. 사례가 된 어휘들이 모두  한자이긴 하지만 대부분 어려운 용어도 전문적인 용어도 아님은 분명하다. 일반 대중이 너무 쓰지 않아서 사어가 된 단어들도 아니다.

  우리말에는 동음이의어나 다의어가 많다. 이런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장 전체를 보아야 한다. 문장 전체를 보고 문장에 맞게 해석하는 게 올바른 방법이다. 쉽게 말해서 ‘때려 맞추는’ 것이다. 한자, 동음이의어, 다의어 등이 혼재된 우리말에서 이 ‘때려 맞추기’는 아주 중요한 문해력이다.  하지만 ‘때려 맞추기’ 어느 정도 언어적 배경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말 그대로 무차별 두들기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어는 쉬운 수준이 아니다.  고등 국어는 내용과 수준을 정해놓고 그에 맞춰 작위적 글은 몇 편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기 발표된 들을 편집해 놓은 글이다. 고전문학부터 현대문학까지, 비문학에서는 인문사회에서 과학기술분야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때로는 전문적인 분야까지 깊게 다룬다.

  고등학교 진학률이 95%에 달하는 나라에서 결코 쉽지 않은 학교 국어 수준에도 불구하고 문해력이 점점 떨어진다는 것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다는 의미임에 분명하다.


  위에 나열된 단어들은 고등학교 교육 정도의 언어적 배경지식이 있다면 '때려 맞추기'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위정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이가 대중 앞에서 잘못 사용했다. 그는 위정자를 잘못이해하고 사용했는데, 대중은 그의 영향력에 눌려버렸던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옳게 알고 있던 뜻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도 부족한 문해력의 한 모습이다.   

   

  요즈음 학생들이 전체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그와 함께 학교에서도 읽기나 쓰기를 잘 안 한다. 칸공책이나 원고지 쓰기가 낯선 아이들은 글을 쓰라 하면 자 간 간격을 신경 쓰지 못한다. 물론 줄 간 간격도 어렵다. 이렇게 쓴 글은 가독력이 심하게 안 좋은 글일 수밖에 없다. 결국 비용을 들여 논술 과외를 한다.

  읽기 쓰기는 잘 안 하는 대신 교실마다 설치되어 있는 tv수상기로 ‘보기’는 많이 다.


  교과서에는 주옥같은 많은 문학작품이 나온다. 하지만 시를 제외한 산문작품들은 어쩔 수 없이 대부분 발췌다. 제대로 공부하려면 그 작품 전체를 읽어야 하지만, 그러기에는 학교도 학생도 너무 바쁘다. 발췌로 배운 작품에서 아이들 머릿속에 남는 것은 지은이와 제목 정도다. 작품 속에 흐르는 작가의 사상이나 인간의 복잡하고도 오묘한 감정, 잘 빚어진 언어들은 주마강산 격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내가 틀렸다거나 내가 잘못 알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게 몹시 힘든 것 같다. 그래서 ‘심심한 사과’의 의미를 먼저 찾아보기보다는 화자가 잘못했다 판단하는 동시에 비난하는 쪽을 신속히 선택하는 것 같다.      

  문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시간과 인내심이 많이 요구되는 그 길을 가거나 가려고 하는 사람이 아무래도 많지는 않아 보인다.  


         

 ▶ 새로운 문해력     

  벌써 한참 되었다. 나는 그네들의 말이 낯설었지만, 그네들은 세계공통어처럼 익숙하게 말하고 있었다. 멜란지하고, 비비드 해서... 주로 화장품이나 의류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홈쇼핑에서 들리는 어휘들이다. 그런 낯선 언어들이 들릴 때면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찾을 때마다 정확한 답을 얻는 것은 아니다. 부츠컷? 부츠의 목길이는 긴 것도 짧은 것도 중간 정도도 있는데 어디까지가 부츠컷이니?  내 말에 조카애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방송에서도 그렇지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알잘딱깔샌’, ‘700’같이 난해한(?) 언어들과 자주 부딪힌다. 몇 년 전, 어린 학생 입에서 나오는 ‘패드립’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뜻이 도저히 짐작이 안 되었다. 아이가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걔가 나한테 패드립 쳤잖아, 그래서 내가 걔랑 얘기 안 하는 거야."

  주위의 아이들이 그 아이 말에 수긍을 했다. 암호 같은 단어 하나로 공감을 주고받는 아이들... 신기했다. 패드립? 친구가 때렸다는 건가..? 욕을 했다는 건가...? ‘때려 맞기’가 안 되었다. 결국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고, 아이들은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때 약간 감탄을 했던 것 같다. 가족을 들먹이며 비난하고 조롱하는 상황을 이 보다 더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단어는 없을 것 같았다. 수식어 하나 없이 그 상황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단어, 그런 단어는 소통에 가장 좋은 단어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계속 쓰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 말 때문에 ‘바르고 고운 우리말’이 훼손된다고 배웠지? 그런 말 쓰지 말자- 힘도 확신도 없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네~~ 아이들은 영악스럽게도 정답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생산해 내는 신조어에는 바름과 그름을 떠나,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상황을 간단하고도 확실하게 나타내는 특징이 일정 부분 있었다.  하지만 우리 교과서에서는 한글을 훼손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그런 국적불문의 말, 줄임말을 들고 있다. 아이들은 교과서를 잘 배우지만 국적불문의 말, 줄임말, 오남용 되는 외국어는 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다.    

  

  어린 학생들과 청년들이 생산해 내는 신조어는 탄생도 빠르고 확산도 빠르고 소멸도 빠르다. 중장년층은 절대로 따라가지 못할 속도다. 이 각도에서 중장년층의 문해력은 아주 낮다. 조금 극단적이지만, 세대별 이해 못 할 언어는 세대 갈등, 세대 단절로 이어지고 심하게는 서로에 대한 경멸로 나타날 수도 있다. 틀딱이나 꼰대니 하는 어휘에는 이미 경멸의 의미기 담겨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신조어를 잘못된 어휘라고 쉽게 단정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언어는 문화처럼 ‘절대’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언어는 역사성과 사회성을 갖고 변화하는 속성을 갖고 있으니 이런 어휘들의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 길고 견고한 결과      

  일반 전체의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나라가 나서야 하고, 개인의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인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 낮은 문해력이 하나의 현상으로 나타나면서 정부와 교육계가 나름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바라는 만큼 결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다.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이미 되었기 때문이다. ‘읽기’와 ‘쓰기’는 ‘듣기’와 ‘보기’와는 확실하게 차이나는 인내심과 에너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해력은 계속 화두가 되어야 한다. 문해력이 낮은 개인이나 사회가 건강하다고는 결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회의 ‘격’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인내심과 에너지, 노력이 주는 결과는 모두가 알 듯이 길고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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