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들

지나가다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

by 연어사리


10년 전 목표는 컴퓨터학원을 하며 유유자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현실을 모를 때 목표였다. NCS 사무행정 컴퓨터 강사만 해오며 현실적 목표가 바뀌고 현실의 경제개념이 탑재되고 나니 컴퓨터 학원이라는 것이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여기에는 남편과 아이라는 숨은 복병이 있었지만 그건 그냥 변경할 수 없는 구성이기에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컴퓨터 공부방을 하면 되지만 그러기엔 나의 꿈과 현실은 애매모호했다. 현실과 타협을 시작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용감하게 시작해보자.

큰 비용 없이 나 스스로가 유지할 수 있는 작은 가게를 알아봤다.


6개월을 찾고 찾았지만 월세가 작으면 가게가 너무 협소했고 조금 조건이 좋다 싶으면 너무 넓었다.

인테리어 비용은 내 예산에 없는 상태였기에 그저 창고와 매장 분리된 정도만 찾아 헤맸다.

때마침 외부 수업들이 몰려왔다. 한 시간 거리에 있던 광주광역시의 직업훈련학교에서 수업은 오전 시간에 진행되었고 오후에는 30분 거리의 순천 지역에서 하던 여성인력개발센터 수업은 오후 타임이었다. 끝나고 나면 저녁시간. 딱 그 시간에 수업이 들어왔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사업의 하나로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맡았다. 시장 안에 있는 공간에서 진행되는 수업이었고 한 달 가까이 매주 2번씩 저녁시간에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 주제도 '스마트기기 활용'이었다. 꿈과 가까우며 잘할 수 있는 주제였다. 수강생은 순식간에 최소인원을 넘겼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떻게 인원이 모일까 싶었지만 우려와 달리 쉬운 모집으로 순조로운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을 맡아 놓고 나니 기존에 하던 수업 일정들까지 한 달이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오가는 시간 속에 찾던 공간이 보였다.

시장 안에 있으며 오랫동안 비어있던 공간이고 주인의 사정으로 적극적 임대를 유도하지 않는 곳이었다. 관심 가는 곳이기에 적극적으로 주변을 탐색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주인과 만남을 가졌고 계약했다.


alley-gfe06c0ebb_1280.jpg PublicDomainPictures, 출처 Pixabay


작업실을 열어 놓고 한동안 문을 닫아 놨었다.

낮시간에는 문을 닫아놓고 일정을 다 마친 저녁시간 이후에 문을 열고 정리했다.

낮에는 수업일정으로 지역을 넘나들기 바빴다. 코로나19도 한참 심했고 코로나19 2차 예방주사까지 맞고 나니 몸은 정말 물먹은 스펀지였다. 바쁜 상황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계속했고 업종과 업태에 대해서 고민했다.

매장의 문은 많은 시간 닫혀 있지만 계속해서 움직였고 하루도 가게에 안 나간 적은 없지만 가게에서 사람을 만난 일은 없었다. 늦은 시간이기에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아는 이들은 아니었다.


하루는 엄마가 오시더니,

"친구들이 난리가 났어, 가게 얻어놓고 장사를 안 한다고"

"이모들한테 일은 계속하고 있다고 말해줘."


시장 입구에 있는 가게라서 생각보다 외롭지 않았다.

밤 시간 되면 불 꺼진 거리지만 시장은 활동적이었다. 길고양이가 신기한 듯 불 켜진 가게를 바라보고 갔고 술 취한 동네 사람들이 '여기는 뭐야?'라는 마음의 소리를 마구 표현했다.

일정이 정리된 한가한 주말이면 문을 열어놨다.

아는 사람이 아닌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다.

작업 중인 헤어핀을 하나 가져간단다.

"미완성인데요."

"저는 단순한 게 좋아요."

30초 정도 가격을 고민했다. 2천 원을 받았다. 물론 딱 원가였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손님을 받았고 팔 생각이 없는 물건이었지만 팔지 않는 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지인도 아니고 초대한 손님도 아니며 홍보하지도 않은 물건을 팔았다. 이상한 뿌듯함이 생겼다.

그리고 집에 와서 남편에게 자랑했다.

"나 오늘 2천 원짜리 머리핀 팔았어."


가게를 열고 나면 개업식을 해야 한다는데 간판 디자인을 결정하는데 4개월이 걸렸고 다시 간판을 다는 것에 2개월이 걸렸다. 간판 디자인은 화려해졌다가 단순해졌다를 몇 번 반복하고 시그니쳐인 물고기가 몇 번의 변형을 반복한 다음에야, 친한 지인들의 평가를 참고해서 다시 원점. 맨 처음 그것으로 결정했다.

맨 처음 것으로 바로 했더라면 훨씬 좋았겠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1인 기업, 대표는 결정이 힘들었다. 결정이 미숙하고 실패가 두렸었던 나는 아직도 개업식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년쯤에 할지도 모르고 이사 가려고 결정한 때에 할지도 모른다.


많은 고민과 결과물은 쌓여갔다.

나에 대해 새로이 알아가는 지인들도 생겨났다.

이른바, 알고 보면 모두가 동네 사람들이다.

맞은편 건물에서 장사하는 채소가게 사장님들, 걱정스레 택배를 받아주는 건물주인 떡집 사장님, 어쩌다 퇴근하고 들러주시는 닭집 사장님, 야쿠르트를 판매하는 이모님, 재활용품을 정리하는 어르신, 알고 보면 학교 선배이며 후배인 지인들. 그리고 옆집에 사돈에 팔촌까지 동네 사람들이 되었다.


늦은 시간 방문을 약속한 언니들.

원래라면 한 명의 언니가 방문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약속을 펑크 냈던 언니는 친한 언니를 데리고 왔다. 알고 보니 학교 선배님들이다. 동문에 나간 적은 없지만 우리는 선후배였다. 그리고 여자이다 보니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그리곤 한참 이야기 끝에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문구랑 헤어핀을 내어 놓는다.

"언니들 골라~ 내가 직접 만든 건데 하나씩 가져가세요."

"야야~ 어찌 그냥 가져가냐!"

"그래, 이것 말고 머리 묶는 거는 없냐? 이거 이쁘네."

"나는 화려한 거 말고 심플한 거!"

"언니, 이거 머리에 하면 하나도 안 화려해~ 머리에 한번 해봐~"


가진 게 넉넉지 않았던 20대.

소소한 선물을 직접 만들어 지인에게 보답했었다. 그것은 서로에게 부담 없는 기쁨이 되고 추억이 되었고 지금도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이 되었다. 그런 과정은 판매를 우선해야 하는 상황에도 퍼주고 싶어졌다.

의도되지 않고 순수한 마음이었다. 바보 같을 수 있지만 그런 마음이었는데 언니들은 통 크게 판매 예상금액을 알아서 책정하고 다 결제하고 갔다. 그러면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주객이 전도된 거 같은데 '마음을 담은 선물' 또다시 행운을 가져다준 것 같았다.


대화를 통해 얻은 것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다면, 어떤 이가 이윤을 얻은 것일까?

언니들은 평상시 궁금했던 블로그에 관한 일반적인 의문을 해결했고 또한 지리산과 그 안에 있는 절에 대한 추억을 풀었고 딸이라는 입장에서 결혼에 대한 현실적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심야의 만남은 남편의 투정을 듣게 했다. 언니들과의 만남은 나에게는 최대의 이윤을 얻게 했다. 작업실의 홍보를 해결했고 작업실에 대한 존재와 방향성을 해결했다. 컴퓨터 공부방을 현실적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해결했으며 핸드메이드 제품과 디자인한 제품들의 쓸모를 알 수 있었다.

또한 재료비를 회수했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게인데 물건이 판매될 수 있음을 알게 했다.


그동안, 여물대로 여물었다고 생각했었다.

자신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더 이상의 성장과 노력은 필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돈의 가치보다 더 크고 멋진 다름의 가치를 얻게 된다.


정착한 지 7년 차, 순수한 인연으로 이곳에서 가장 처음 알게 된 언니가 있다.

광고업을 운영 중인 사장님이기도 한 언니는 저녁시간이 되면 한가해진다. 때론 내게 디자인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론 내게 자격증 관련한 스터디를 듣기도 한다. 가끔 책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자장면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시간이 되면 맥주도 한잔하는 편한 언니다. 요즘은 지나가다가 간판 불이 켜져 있으면 전화를 하고 운동 가다가 들르기도 한다. 운동 마치고 들를 때는 한참 이야기를 하며 차 한잔 하고 가기도 한다.

언니는 항상 순수하게 웃으며 해맑게 말을 건네 온다.

"지나가다가 들를 때가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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