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좇는 N 잡러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고 생각한 대로 살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좋아 보이거나 예뻐 보이는 것들, 화려해 보이는 옷차림……. 그런 것들에 따라 꿈이 변했던 것 같다. 막연한 꿈을 꾸던 10대, 스무 살을 넘기는 인생은 화려하고 멋있을 것만 같았고 서른이 넘어가면 인생이 끝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극단적이면서 자기애적인 삶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라 누구보다 확신했었다.
지금의 나는, 마흔 살이 넘어 40대가 되었다.
현재의 직업?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N 잡러이다.
그래도 나를 딱 한 줄로 표현한다면.
"구례에 사는 컴퓨터 강사"
구례에서 컴퓨터를 가르친다고 설명하면 듣는 사람들은 '방과 후 강사'나 '학교 컴퓨터 선생님'을 떠올린다. 하지만 둘 다 해당하지 않는 컴퓨터 강사이다. 방과 후 수업도 하지 않고 학교에서도 일하지 않으면 도대체 구례에서 무슨 컴퓨터를 어떻게 가르친다는 것인지……. 답을 정해놓은 상태에서는 무엇이든 오답이다.
도시에서 15년을 살았다.
고향으로 귀촌한 지 7년 차, 결혼한 지 10년 차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낳았고 경력단절 여성을 가르치던 나는 경력단절 여성이 되었다. 다시 일하기 위해 아이 맡길 곳을 찾았으나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잠깐이면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친정에 아이를 맡기러 왔던 철부지는 그때서야 엄마가 된 것 같다. 도시에서 살며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면 항상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던 아이가 새로운 어린이집에서는 떨어지지 않고 서툰 말로 못 간다고 계속해서 표현했다. 몇 번이고 아이를 놓고 뒤돌아서는 순간이면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가진 능력을 펼친 곳이 없는 곳에서 그저 경력단절 여성일 뿐이었다.
아이와 타협이 되는 순간이 오면 나는 다시 일할 수 있을 테니깐 그때까지만 참자.
그런 시간이 7년이 되었다.
평일에는 직장인으로 일했다. 저녁 시간, 주말, 휴일 등 잠깐잠깐 짧은 시간이라도 컴퓨터 수업을 진행할 수 있고 경력에 한 줄이라 남길 수 있다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경력은 계속되었다.
컴퓨터 강사를 시작했던 때에 노동부는 고용노동부가 되었고 고용노동부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선 NCS(국가 직무 능력 표준) 강사로 해마다 보수교육을 받았다.
학원 강사로 등록되고 학원 강사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는 데 필요하다고 해서 받아놨던 직무교육 이수, 덕분에 다양한 수업을 진행했었고 다양한 수강생들을 만났었다. 컴퓨터 수업을 진행하는 내내 겸손해지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꿈을 펼칠 수 없다면 어디서나 한없이 겸손해지고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2000년대 후반, 향후 10년 이내에 없어질 직종 중에 하나가 컴퓨터 강사였다.
알면서도 컴퓨터 강사일을 선택했다.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면 어디 가서나 최소한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있었다. 게으르고 만사 대충대충인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컴퓨터를 가르치는 일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 선택의 폭은 다양하지 않았다. 대신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멈출 수밖에 없음이 싫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2022년 11월, 구례현상점을 운영하는 컴퓨터 강사.
생계를 위한 직장인이다. 나 자신을 위한 사치이자 나를 찾는 곳, 꿈을 위한 작은 작업실 구례현상점을 운영하며 문서 초안을 작성하거나 완성된 문서를 수정하거나 디지털 디자인 작업도 하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 부수적이지만 가끔 전화가 오면 출장도 나간다. 컴퓨터 관련한 자잘한 문제 해결을 위한 출장이다. 보수는 돈이 아닌 여러 가지다. 책을 받아오기도 하고 차를 마시고 오기도 하고 커피를 받아오기도 한다. 가끔이지만 농산물이나 간식을 받아오기도 한다.
컴퓨터 강사이고 싶고 창작가이고 싶으나 결국은 N 잡러이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컴퓨터 강사로 살아가며 현실과 타협하는 나는 여전히 꿈을 좇고 있다.
컴퓨터 스터디는 현실적인 목적보다 꿈을 위한 목적이 크다.
정해진 수업과정이 진행되기보다는 컴퓨터 스터디가 왜 필요하고 왜 이런 만남을 해야 하는지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결론은 컴퓨터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알고 있는 컴퓨터 관련한 상식들을 알려주는 수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창작활동들을 하지만 여전히 주문 들어오는 것들 만들기 바쁘다. 재고가 좀 쌓이고 예쁜 결과물들 사진도 찍어서 화려하게 소셜 네트워크를 보여주고 싶지만 현실은 낭만적이지 못하다.
재료가 부족한 날엔 짜증이 나고 괜히 꿈에서 멀어진 것만 같아 화가 난다. 그렇게 억지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결과물은 결국 재작업이다. 버리지 않는다면 다행인 것이다.
하나의 위안이라면 바쁜 하루 속에 내 창작물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 '구례현상점'이 있어서 좋다.
구례현상점에는 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있다.
일을 의뢰하게 되며 알게 되는 사람들, 가까운 지인이지만 컴퓨터에 대한 고민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도시에서는 어떤 조건으로 일을 하고 어떤 자격증을 갖고 싶은지 궁금한 사람들, 함께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 책을 좋아해 글과 책에 대해 이야기 위한 사람들...... 구례현상점에는 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한다.
그러고 보니 외부에서 새로이 유입되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아마 나와 일면식 없이 새로이 알게 되는 구례현상점의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