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어'다.
'구례'라는 시골에서 태어나 '창원'이라는 도시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다시 '구례'로 돌아왔다.
전남에서 경남으로, 언어와 생활이 다른 극과 극 체험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 사는 곳인데 언어와 생활이 달라봐야 얼마나 다를까 싶지만, 이사하고 2년 가까이는 상대의 말을 듣고 실수하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 힘들었다.
지금은 사투리나 억양만으로 경남의 어디쯤? 경북의 어디쯤 정도는 알게 되었다.
구례로 다시 돌아왔다.
구례는 그대로지만 인구도 많이 줄어들었고 아파트도 많이 생겼다. 널찍한 공원과 운동장, 수영장과 각기 다른 종목의 체육관들도 생겼다. 섬진강 인근 둑에는 초록의 멋진 잔디와 걷기에 아름다운 길이 있다.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구례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저 강변 어딘가에서는 친구들이랑 어릴 적 놀았었지.
저 산 밑에는 길이 있었지. 길 따라 오르면 사성암에 힘들게 올라갔었는데.
저기 어딘가에서는 삼촌이 낚시를 했고 은어도 먹고,......
섬진강이 유명한 것에는 상류와 중류, 하류의 각 풍경이 주는 매력도 있지만 지리산을 따라 휘감는 것처럼 길고 커다라며 배가 다닐 수 있었던 기억을 가진 오래된 시간의 매력이 있었다.
사람은 보는 것보다 먹는 것을 더 잘 기억한다. 섬진강에는 맛있는 은어와 재첩국이 있다. 강을 따라 맛있는 음식점들이 있었다. 이제는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있지만 아직도 섬진강 길 따라 맛집들에는 은어회, 은어튀김, 재첩국을 판다.
사람들은 은어만을 기억한다.
섬진강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산다. 가장 많이 잡히는 것이 은어였을까?
아마도 먹을 수 있어서 그랬을까? 차를 타고 따라가는 길 옆, 맛집의 간판들에 쓰인 메뉴 때문이었을까?
많이 노출된 것일수록 기억에는 많이 남는다.
만약, 사람을 생물로 표현한다면 어떤 것이 어울릴지 생각했다.
구례에서 태어나 창원에 살다가 구례로 돌아왔으니 '은어'보다는 회귀성 어류인 '연어'가 어울렸다.
바다가 좋지만 산란을 위해 모천으로 돌아온 연어, 은어와 연어는 섬진강에서 산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도시라는 바다로 떠났다가 돌아왔으니 연어가 되기로 했다. 구례에서 다시 살아갈 목적, 별명처럼 또 하나의 이유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특별하고 희귀하지만 냉동실에서 자주 봐서 친근한, 그래서 '연어'가 되길 바랬다.
모천으로 돌아온 연어는 잘 살아갈 수 있었을까?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가 돌아왔다.
정말 단순했다. 아이만 친정에 맡겨놓고 가면 다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도 처음이고 아이도 엄마가 처음이다.
적응을 못하는 아이를 떼어 놓는 것은 진짜 어려웠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내가 외부 스케줄을 잠시라도 하려고 하면 친정식구들까지 모두가 아침부터 엉망진창이 되었다. 도시 어린이집에서 잘 적응하던 아이가 왜 이렇게 힘겹게 하는 것인지 이유도 모른 채 시간은 흘러갔고, 아무것도 안 하고 아이의 적응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
계약직 사무업무를 시작했다.
월급은 최저시급, 이력은 솔직하게 적었다.
첫 면접에서 담당 이사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경력사항을 보니 여기서 일하기엔 아까운데 일하실 수 있겠어요?" 아이 때문에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었고 일을 안 할 수도 없는 처지였기에 솔직하게 답변했다.
사무실 출근하고 며칠 안돼서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오기 시작했다.
구례읍에서 차로 20분의 산동면, 경상도 사투리 쓰는 젊은 여자가 갑자기 생긴 동네 사무실에 출근했다는 소문이 났나 보다. 월급은 적어도 안정적인 사무직일은 구하기 힘든 곳인데 사람 소개해달라는 말도 없이 이미 구했다는 말에 도대체 누가 일하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구례는 신기하지만 지역 사투리가 특색이 있다. 다 같은 전라도 사투리라고 생각하겠지만, 남원과 가까운 산동면은 남원과 구례 사투리가 섞여 있으면서도 독특한 억양이 있다.
산동 사람이라면 말투만 듣고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집이 어디요?"
인사말에는 인사말이 나와야 하지만 뜬금없이 '집이 어디요?'라니 황당하겠지만 나는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들이 원하는 답변을 안다. 차근히 내 소개를 했다. 나는 누구고 이 동네에는 어떤 사촌이 있고 부모님은 어느 동네에 산다를 명확히 이야기했다.
그 뒤로 네다섯 명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던 것 같다.
며칠 뒤, 동네 사람들은 친근하게 대해줬다.
낯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은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늘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낯선 사람은 호기심이다. 모천으로 돌아온 연어는 아무렇지 않은 감정이지만 계속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고 낯설음이었다.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구례를 떠나 사느냐 마느냐 계속 고민할 때, 도시에서 태어나 살다가 정착한 사촌에게 고민을 이야기했다. 사촌의 답변은 뼈를 때렸다.
"여기서 계속 산거 아니면 너도 외지인이야."
갑자기 나는 구례 사람도 창원 사람도 아닌 외지인이 되어 있었다.
사촌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먼저 정착한 사람들 말이 그러더라. 최소 10년은 살아야 구례 사람이 된데."
가족을 비롯한 친척과 친구들이 있지만 나의 삶의 대부분은 이곳이 아니었다.
언제든 쉽게 떠날 수 있고 언제든 쉽게 돌아갈 도시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도시에 살면서도 구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구례가 고향이니깐, 외지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외지인과 구례 사람의 구분은 '삶의 주된 거처가 어디인가'였다.
연어는 구례 사람이 아닌 외지인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구례 사람에 가까운 외지인이다.
밥을 나누어 먹을 이웃도 생겼고 남는 음식을 나눠주고 올 친구도 생겼다.
가끔은 엄청나게 많은 양의 떡볶이 냄비를 들고 집을 나서도 떡볶이를 버리지 않고 집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인맥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