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여유가 쌓인다.
매일을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먹여야 할지 고민들이 쌓인다.
걱정 없이 메뉴를 정하는 것은 누군가가 매일 나를 위한 고민을 해주었기에 그 고민들을 뒤로 한채 나는 그 나머지 것들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행복한 고민이다.
매일 새로운 메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 아는 식당에 가서 아무거나 주세요 또는 오늘은 뭐가 좋아요? 그냥 그거 주세요. 할 수 있는 식당이 있을까.
어느 순간 급식처럼 식당이라면 방문한 식당만의 시그니처 메뉴를 하나씩 선택해서 먹게 된다.
그 음식이 생각과 다르게 입에 맞지 않으면 다른 식당을 선택한다.
그러나 갈 수 있는 곳이 정해져 있고 자주 가는 식당에서 정해진 메뉴 외에 새로운, 남들과 다른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1번 안정적인 선택으로 방문한 식당에 시그니처, 검증된 메뉴를 선택한다. 2번 검증되지 않고 주방장, 또는 주인의 선택에 따른 메뉴를 선택해 본다.
1번은 안정적인 선택이며 2번은 때때로 상상불가의 불확실성인 메뉴 선택이다.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을까?
1년이 지나고 고객도 주변 상인들도 나의 사업장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단골손님 중에는 나의 무작위 메뉴 선택을 믿고 맛있게 먹어준다.
물론 그전에 나는 몇 가지 선택 사항을 주기는 하지만 결과는 온전히 선택한 본인들이다.
단골이면서 또는 맛의 유무가 불확실한데도 나의 선택을 믿고 따라준다.
그것은 주인입장에서는 당연하지만 가게가 생긴 지 1년밖에 안되었고 사업주가 전문세프가 아닌데도 선택해 주는 단골들이 있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다.
그것을 이제야 알았다.
내가 무엇을 해줄 줄 알고, 물론 몇몇은 실패도 있었지만 그들은 계속 방문했고 그 조차도 재미로 느끼고 즐거운 식사시간을 즐겼었다. 이제는 무모하기보다는 안정적이면서도 다양한 퍼포먼스로 그들을 기다리고 또 준비한다.
새로운 음식에는 늘 평가가 따르고 맛의 호불호가 분명하다.
이제는 그 조차 즐길 수 있다.
나는 불확실한 음식을 팔고 그들의 비밀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밥값은 별도고 술대접까지도 별도로 받는다.
어찌 보면 식당운영이라는 것은 굉장한 이윤을 남기는 매력적인 장사다.
문을 닫았다고 생각했지만 손님들은 알아서 찾아온다.
잠깐 열어놓은 그 틈을 따라 들어온다.
마치 은하수의 흔적을 따라서 집으로 돌아가는 철새처럼
단골은 커튼사이로 보이는 빛을 따라서 찾아온다.
사실은 오늘 문을 연 이유는 냉장고의 재료들을 이용해 김치찌개를 끓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들어오는 손님들 덕분에 김치찌개는 못 끓이고 대화와 조언만 넘쳐난다.
사람은 외롭고 시장의 밤은 길다.
맥주는 냉장고에 가득 차 있고 취중 마음은 밤샘에 자신감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