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도 예쁘다. 그러나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해져 봄꽃이 피고 벚꽃이 만개하려 하니 콧물이 뚝뚝 떨어지며 목소리가 갈라진다. 급기야 비염 몸살까지 오고 으슬으슬해진다.
아는 병이니 병원 안 가고 버텨보려 했으나 무리라는 신호가 계속해서 느껴지고 병원을 방문해야만 했다. 코로나19는 아닐 거 같지만 코로나19 검사를 해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실행되었다.
검사하는 분은 늘 그렇듯 능숙했고 나의 콧구멍은 마음의 준비 따윈 없이 찔렸다.
"켁~"
기침이 올라온다. 벚꽃축제 따위 상관없이 그냥 시원한 비나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벚꽃에 가려져 잘 안 보이게 느껴지지만 온동네 옅은 황사가 가득하다. 간간히 소방차가 지나가고 섬진강은 주변의 물줄기들은 바닥을 보이기도 했고 도로를 사이에 둔 공사현장에서는 흙먼지가 날린다. 축제를 앞두고 스마트폰은 드륵드륵 바쁘다. 여기저기서 산불소식과 함께 안전문자는 계속 울려댄다.
여전한 출퇴근길, 벚꽃이 만개했고 더불어 상춘객들도 몰려든다.
꽃구경 오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꽃구경하는 길에서 일상을 보내는 지역민도 있다. 운전 중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농기구를 몰고 나온 어르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일반 도로에 깜빡이도 없이 세워놓고 차 근처서 사진 찍는 상춘객들, 정말 무섭고 두려웠다.
설마 상춘객 매너는 차 크기와 비례하는 건가?
그네들은 자신의 즐거운 봄 휴가를 즐기고 힐링을 했겠지만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숨을 몇 번씩 내쉬는 하루였다.
꽃축제가 시작되는 주말을 앞둔 금요일, 일주일 전부터 고민했다. 고민을 더 가속화 했던 건 벚꽃이 만개 할 수록 눈도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젠 하다가하다가 알레르기성 결막염인가.
금요일 하루 연차 내고 쓰고 싶은 글을 쓸까, 아님 독서를 할까. 그러나 우유부단한 결단력과 훌쩍훌쩍 비염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가 시기를 놓쳐버렸다. 늘 그렇듯 연차 따위는 나와 상관없었던 것처럼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이었다. 금요일 저녁부터 구례는 사람과 차가 넘쳐났고 지난주보다 더 많이 북적북적였다. 꽃을 보러 온 사람들과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우리 가족은 그냥 집에서 지냈다. 집 밖은 꽃들로 인해 무서웠다.
고작 한주, 불과 며칠밖에 안 지났는데 화요일부터 내린 단비는 비염을 말끔히 없애버렸다. 그야말로 소중한 비였다. 전국에 내린 비소식에 꽃축제 시작을 앞둔 곳에서는 울상이겠지만 가뭄으로 인해 타들어가는 농작물과 식물들은 아마도 더 반가웠을 테다. 구례의 벚꽃이 예년보다 10일 이상 일찍 만개한 것은 맞다. 꽃이 한참 봉오리 맺히기 시작할 쯤에는 한낮의 기온이 20도 이상 올라갔고 덕분에 출근길 꽃봉오리가 퇴근길에는 만개하는 곳도 있었다. 빠르게 시작된 더운 날씨, 바짝 말라버린 땅들 그러나 벚꽃이 위치한 대부분이 강근처였기에 꽃들의 만개에는 큰 이변이 없었을 테다.
비염으로 인해 꽃을 즐길 새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꽃비가 내리면서 단비도 내렸다. 하루정도 폭우처럼 쏟아졌다. 길 위에 벚꽃잎들이 질척거린다. 비염이 멈추고 나니 벚꽃이 짠해 보인다.
순간의 아름다움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비가 오기 전 떨어지는 벚꽃잎들과 함께 바닥을 뒹굴던 바짝 마른 낙엽들.
그 낙엽들은 어디서 왔던 것일까.
더웠던 지난주는 꽃들의 순서가 사라져 버린 날이었다.
보통은 산수유꽃 지면서 개나리 피고 매화꽃 질 무렵 벚꽃이 피며 개나리가 지면서 철쭉이 올라온다고 한다. 그러나 따순 날씨에 순번은 뒤죽박죽 산수유과 개나리 매화 벚꽃은 같이 만개했고 또 같이 낙화 중이다. 수선화의 개화시기는 언제였었지. 언젠가부터 구례에는 수선화가 흔하게 보인다.
정말 꽃들의 축제구나.
개화시기를 못 맞춘 꽃들 덕분에 눈은 호강했지만 몸은 괴로웠다. 계절에 맞지 않는 여름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가득 넘쳤고 폭우 같은 비가 내리다가 멈췄다. 다시 겨울옷을 꺼내 입어야 하나. 날씨가 참, 널뛰기도 이런 널뛰기가 없다. 어디에 맞춰야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