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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사리 Apr 18. 2023

일주일이 사라졌다.

섬진강이 화가 난 것 같아요.

바쁘게 지내다 보면 며칠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쯤은 별일 아니기도 하지만 만약 건강상의 이유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참 슬플 것 같다 아니 슬픈 일이다.

지난 며칠도 바빴다. 늘 그래왔듯,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또 고 생각하고 쓰고 나를 위한 사색의 시간도 갖고 그런데 뜻하지 않은 건강의 적신호는 시간이 사라지는 마법을 보여줬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간 줄 모르게 지나갔고 또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내일이 오고 내일은 또 오늘이 되는 그런 날들이 하루 이틀 삼일 일주일이 지났다.


원래 계획은 브런치에 글을 하나 쓰고 나머지는 과제를 하고 책을 읽을 예정이었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흉통.

점점 더 짧아지는 통증의 간격.

이유 없이 숨을 쉴 수가 없고 공황장애일까.

공황장애가 있었던가.


"내일 죽는다 해도 아무렇지 않아. 슬프지도 않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야."

마흔 넘어 지병이 없었지만 자다가 돌연사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했던 말이다.

또한 내일 죽는다 해도 두렵지 않고 그만큼 열심히 후회 없이 살고 있다는 의미로 확언했던 말이었다.


막상 아프다. 심장근처의 두근거림.

약간 움직여도 숨을 못 쉴 거 같이 아프다.

2주 전만 해도 정말 열심히, 매주 2일 이상 하루 5킬로씩 걸었었는데.... 갑자기 아프다.

숨을 못 쉬겠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숨이 가쁘다.

원래 하려던 계획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강인한 멘탈을 가졌다고 모두가 믿어왔는데 강인함은 처음부터 허세였던 것 같다.

지난 4월 11일에 섬진강에서.

통증이 심해지기 전, 아프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인정하기 싫었던 마음.

점심시간 혼자 시간을 보냈다.

밥 따위보다 중요했던 마음 안에 소리.

그 속삭임을 조용히 듣고 싶었다. 온전히 마음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비가 오기 전의 하늘은 마치 화가 난 것 같았다.

마치 화가 나려 하는 누군가처럼 하늘은 표정을 갖고 있었다.

푸르고 하얗고 울퉁불퉁한 마음.

연하고 투명한 초록을 진하고 어둡게 물들이는 뾰로통한 불편함.


마음의 통증은 육체의 통증이 된 것일까.

며칠의 속앓이.

사실 늘 있어왔던 일인데 지쳤나 보다.

연이은 스트레스, 스트레스라고 생각조차 안 했던 일상이었는데 육체는 정신의 지배를 벗어나버렸다.


아침 일찍 병원을 갔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병원 진료를 보고 검진예약을 잡고 돌아왔다.

검진예약을 기다리는 중간에 어떤 증상이 나타난다면 언제든 응급실로 오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은 해야 할 것을 잊고 누워서 먹고 자고 책을 읽었다.

할 일이 있었던 것 같았지만 그냥 잊고 쉬어버렸다.

정신을 차리니 일주일이 사라졌다.

중요한 일들이 있었는데 놓쳐버렸다.

눈물이 난다. 서글프다.

이제는 포기해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 같다.

할 수 있음과 없음을 명확히 해야 할 것 같다.

 



다음 주 검진을 해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그저 중요한 일을 놓쳤다는 것과 이제는 포기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르고 있어요.

마음은 청춘이라고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생각부터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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