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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사리 May 03. 2023

커피 없이 3개월입니다.

커피 대신 유기농 보리커피

커피를 끊고 싶다고 해서 마음먹은 대로 커피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커피 없는 삶을 간절히 바랐었지만 아침이면 피곤한 몸을 출근상태로 각성하기 위해서 자유를 놓아버린 이성처럼 커피를 찾아서 마시고 외출을 했었다.

그런 삶이 자유 의지를 박탈당한 좀비와 무엇이 다를까만은 모두들 그렇게 살아간다.

산업혁명이 준 물질의 풍요로움은 인간 역시 기계와 같은 일정한 업무의 패턴을 수행하길 바라고 노동이 금전이 되는 시대에서 금전은 자급자족의 불편함을 이겨내 주는 모든 가치가 되었다.


그렇게 커피와 함께 삶은 지속되고 커피 한잔에 웃음과 설움을 떨쳐내는 우리는 커피중독예찬론자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불가항력적으로 커피를 마실 수 없다면, 기후변화로 커피의 생산력이 급감한다면 인공향미로 조제된 인공커피를 마시면 될 것이다. 그렇게 또 커피중독으로 아름답고 여유로운 삶을 즐기겠지.


"커피야 이제 우리 그만 헤어지자."

몸이 안 따라준다. 카페인이 안 받아주는 것일까 그래도 맛있어서 참고 넘기고 넘겼다.

커피가 주는 그 멋진 시간들과 진한 갈색이 주는 눈의 즐거움, 구수하고 향긋한 커피 향의 유혹들, 오감을 자극하고 또 생각나게 하는 멋진 카페에서의 날씨 변화에 따른 각자의 매력은 나를 절대 놓아주지 못할 것 같았다.


창작을 하는 사람의 고통은 잠을 줄여 시간을 늘리는 것, 커피는 기호식품이 아닌 필수품이자 식량이었다.

그런데 이젠 몸에서 '더 이상 안돼'라고 소리친다.

두근두근.

혈관 깊숙한 곳 맥박에서부터 커피를 거부하지만 학습된 외부적 기억은 몸의 반응을 거부한다.

오르조 유기농 보리 커피

두근두근 맥박소리가 수시로 들린다.

이명의 한 종류라고 하지만 원인은 모른단다.

약이 처방된다.

술, 담배, 커피 금지.

술은 없어도 된다. 담배도 없어도 된다.

커피 너 만은 안되는데...... 나는 살기 위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사색하는 과정을 더 즐기고 싶어서 커피를 끊기로 했다. 잠시만이겠지. 그렇지?


한 달이면 될 줄 알았다.

두 달이면 이제 되었겠지.

이제는 커피 없는 일상을 받아들이고 대체품을 찾아 나섰다.

웹소설 <황제궁 옆 마로니에 농장>에 주인공 헤이즐은 친구가 된 제국 대신을 위해 치커리로 만든 커피 대용차를 선물했었는데 내겐 헤이즐 같은 친구가 없었다. 일상에서 커피를 대신할 음료를 못 찾고 계속 헤매다 커피를 먹기 위해 약을 끊는 멍청한 짓도 해보았지만 몸이 들려주는 간절함에 결국 멈추었다.


약을 복용하고 커피와 비슷한, 모든 것을 찾아 헤맸다.

디카페인 커피는 안 먹는 게 나을 거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커피는 연갈색의 크레마와 약간의 구수한 탄내, 진한 갈색의 음료, 그것만이 필요했다.


검색과 주변의 추천, 유기농 보리 커피를 마시고 있다.

2주째 행복해지고 있다.

카페인이 없어서 늦은 오후는 병든 닭처럼 꾸벅거리고 피로에 찌든 하루가 되었을 땐 머리만 대면 잠이 들지만 자율신호를 기억하는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쓴맛이 올라오는 것 같았던 아침의 불쾌함은 사라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헌책방 카페에 가서 커피를 못 마시는 불편함을 투덜거렸다,

내 말을 재밌게 들어주시는 사모님께 혹시 원두 로스팅 하시면서 보리 로스팅도 해주시면 안 되는지 살짝 청탁 아닌 청탁도 해보았다. 조금 더 신선한 보리커피는 더 매력적이겠지.


카페인이 없는 보리 커피를 마시며 카페인이 없어도 크레마가 있는 탄맛의 향긋함을 즐길 수 있으니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해지고 있다. 매일 아침 가볍고 상쾌한 뇌의 울림을 느끼지만 강제적인 각성은 없다.

말린 과일이 들어간 찐 보리빵과 보리 커피 한잔으로 시작하는 일상은 내가 보리가 되어가는 것 같음을 알려준다.

그래도 마실 수 있으니 되었다.




건강의 적신호가 생기고 있네요.

오늘은 마지막 검진을 보고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 같아요.

진실이 무엇이든 검진을 더해야 할 것 같다는 몸의 신호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노력에 비해 몸관리를 못한 것이 잘못이겠지요.

앞으로 더 많은 날을 즐겁게 살아가려면 이제부터 더 노력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나이 먹는다는 것은 날마다 겸손해져야 함을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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