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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사리 May 09. 2023

비가 오는 밤, 손님이 찾아옵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가 깊어가는 구례현상점

어둑한 시장골목, 밤이 되면 더욱 조용해진다.

구례현상점의 입구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얼마 전까지 매장을 가리던 건물이 사라져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훤하고 간판의 물고기는 더욱 잘 보인다. 멀리서 보여도 하얀 바탕에 물고기 그림이 또렷이 보인다.

구례현상점을 알리기에 적극적이어야 하는 연어는 왜 그리 부끄러운 게 많았을까 저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라는 사실을 말하며 구례현상점의 위치를 말하기는 것이 참 어려웠었다. 내 상점이 어디에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왜 그리 부끄러웠을까. 스스로 기준에 예쁘지 않았고 정돈되지 않았으며 화려하지 않았다. 부끄러운 마음이 자꾸 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기준이었다.


구례에 살기로 결정하고 명함을 만들고 작업실을 정하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상대가 명함을 주지 않아도 먼저 명함을 내밀었다. 그것이 구례현상점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할 것이라 확신했다.

여전히 그런 사실들에는 변함없지만 아직도 구례현상점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주말만 되면 비가 온다고 느끼는 것은 착각일까 아님 빈도수에 대한 확증일까.

기억 속 주말은 비가 안온날보다 온날이 많으니 확증이 맞을 테다.

비가 와도 손님은 찾아온다.

밤이 늦어도 손님은 찾아온다.

서로가 원하는 것이 있고 원하는 것을 채워줄 수 있다면 손님은 방문한다.

날씨가 안 좋거나 시간이 늦었거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구례현상점을 찾는 사람들이 가진 이야기는 다양하다.


컴퓨터를 잘못해서 컴퓨터 기능을 배우기 위해 컴퓨터는 잘 하지만 자격증이 필요해서 아니면 작업실에 있는 다양한 소품재료들이 필요해서 때론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기 위해 오다가다 책 이야기를 하기 위해 오기도 하고 필요한 자료나 사람들의 속삭임을 피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비를 피하기 위해 잠시 입구에 서있다가 들어오기도 하고 아는 사람이라서 들어오기도 하고 신기해서 들어오기도 한다.


가족과 저녁밥을 먹고 어둑어둑 해질 때쯤 구례현상점에서 전 직장의 동료이자 국악공연을 기획하는 동생을 만나기로 정했다. 언제 만나도 편하고 언제 만나도 즐겁다. 가끔은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참 편한 사이가 되어버린 콩한쪽도 나누어 먹을 수 있고 술을 진탕 먹어도 취하지 않는다고 느낄 만큼 편안한 동네 사람.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정보를 나누기 위해 가끔은 커피숍에서 가끔은 구례현상점에서 만난다.



생각을 정리해서 서류로 만들고 연어가 거드는 것은 잘 아는 수치자료들 중에서 필요한 것을 그래프로 만들어 보여주는 것뿐, 선택은 친구의 몫이다. 어제의 공연은 대성공이었고 앞으로의 또 다른 공연을 준비하고 새로움을 기획하고 즐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구례를 살아가는 청년이니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어렵다. 때론 비난을 때론 칭찬을 때론 허탈함을 안아야 한다.


비가 와서 흐릿하고 물과 불빛에 반사되어 거리는 흑백영화 같은 느낌이지만 우리의 생각은 늘 컬러풀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류는 정리되어 가지만 우리는 더 즐거워진다. 때마침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우와, 이런 곳이 있었어요? 원데이 클래스 하는 곳 같아요."

처음엔 원데이 클래스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몸이 한 개라 개인적인 만남과 교육만을 진행하는 곳이 되어버린 구례현상점. 가끔 상점이라 하니 전화로 편집샵인지 묻는 전화가 오기도 하지만 편집샵이라 하기엔 애매한 작업실일 뿐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사람이 찾아오니 신기하다.


물론 시장분들 중엔 여전히 의문을 갖고 계신 분도 있을 테다.

"저기는 왜 낮에 안 열어?"

맞는 말이다. 낮에는 내가 바쁘다.

또 외부수업이 있는 날에는 바쁘다.

외부 수업이 늘어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다양한 것을 시도할 수 있는 것도 행복한 경험이다.

비가 오면 비 때문에 갈 곳을 잃을 때가 있다.

사람이니 갈 곳을 잃을 수도 있고 새로운 곳을 찾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하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손님을 부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흐릿한 흑백 비 오는 풍경의 해사한 불빛 같다. 연어는 가끔 글을 쓰다가 길을 잃는다.

그럴 때는 구례현상점의 처음을 떠올려 본다.

준비된 것 없이 테이블만 덩그러니 놓인 채 녹차를 우려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던 그 마음. 추운 날 난로가 준비되지 않은 채 손을 호호 거리며 밖을 내다보면서 밖이 더 추울까 안이 더 추울까를 생각했던 그날, 그게 벌써 1년도 더 된 일이 라니 이제는 추억이다.


어제 잠들기 전, 영화배우 양자경 주연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았다. 주인공 에블린은 매 순간 후회하는 선택을 한 멀티버스 속 최악의 에블린이었고 그 덕분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에블린이 되기도 한다. 지난날의 후회들은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 매번 해왔던 선택과 노력은 현재의 구례현상점을 이끌어 가게 했다.

최악은 최악이 아니고 때론 최선이 되기도 한다.

지금이 있기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함께 했다.

비가 오는 것도 이제는 이야기가 된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완벽한 것만이 대세가 될 것 같지만 완벽한 것이 전부가 아니며 세상은 아직 이야기를 원하며 과정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구례현상점은 그런 면에서 기록원이자 레코드이다. 동영상이 저장되는 곳이 아니지만 추억이 저장되는 그런 곳이다. 오늘 하루도 많은 이야기를 경청하며 감사의 마음을 글로 남겨봅니다.

응원과 관심 남겨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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