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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사리 May 16. 2023

추억 속 가로수는 벚꽃나무가 아닌 미루나무였다.

동요 흰구름 속 미루나무가 이렇게 생겼어요.

오랜만에 섬진강을 따라 대숲을 걸었다.

오후 3시, 혼자가 아닌 동네 친구가 된 동생과 함께 걸었다.

나이가 들었는지 사람이 부쩍 그립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하는 대화가 좋아진다.

엄마의 음식을 먹으면 맛과 별개로 포만감이 채워지고 마음 안에 사랑을 꾹꾹 눌러 담듯 공통점이 있는 사람이며 생각이 통한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면 마음이 채워지고 행복해지며 무엇을 해도 힘들지 않게 느껴진다.


며칠 전 내린 비로 뿌옇고 노란 송홧가루도 미세먼지도 같이 날아가버렸고 오후 3시지만 하늘도 맑고 구름도 예쁘고 섬진강변 옆에 가득 채워진 이름 모를 풀들도 '나도 여기 있어'라고 하는 것처럼 존재감이 가득하다. 

우리는 대숲부터 병방리 가는 길까지 대숲과 이어지는 산책코스를 걸었다.

늘 혼자 걸었었는데 도란도란 대화를 하며 같이 걸으니 새로운 길을 걷는 것 같았다.

2023년 5월 14일 오후 3시 구례 섬진강

비소식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사라졌는지 하늘은 맑기만 했다.

맑은 하늘을 보면 복잡한 생각도 같이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보고하는 것인지 나누는 것인지 그냥 아무 말 대잔치이다.

30분쯤 걷다가 보도교를 찍고 우리는 되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동네 친구가 저 나무가 무슨 나무인 줄 아는지 물어온다.

"저거 미루(류) 나무 일건대."

우리는 하나의 소재가 생기면 그와 관련된 썰을 풀어본다. 말 그대로 아무 말대잔치일수도 있지만 때때론 꽤 재미난 이야기와 소식도 많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도로마다 벚꽃나무 가로수로 바뀌기 전에는 미루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는데 벚꽃나무를 심기 위해 모두 뽑거나 잘라버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났다.

어릴 적 부산에 있는 이모집을 가기 위해선 부산으로 가는 여객버스를 타야 했는데 부산으로 가는 길에 하동까지 달리는 구불거리는 길과 섬진강변 옆, 커다랗게 솟아있던 나무가 미루나무였다는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어릴 적에도 구불거렸고 지금도 여전히 구불거리는 구례에서 하동으로 가는 19번 국도, 그 옆 섬진강 옆 조그만 땅 위에는 밭고 있고 돌도 있고 길고 높은 미루나무도 있었다.

중간중간 심심하지 않게 솟아 있었던 미루나무 덕분에 동요 '흰구름'을 떠올리며 멀미를 참았었다.


흰구름(박목월 작사, 외국곡)

미루나무 꼭대기엔 조각구름이 걸려 있네

솔바람이 몰고 와서 살짝 걸쳐 놓고 갔어요

뭉게구름 흰구름은 마음씨가 좋은가 봐

솔바람이 부는 대로 어디든지 흘러간대요


2023년 5월 14일 오후 3시 구례 섬진강, 한가운데 솟은 큰 나무 미루나무

한참 잊고 있었었다.

익숙한 듯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던 미루나무, 미루나무는 원래 미류나무였다고 한다.

미국에서 들여온 버드나무, 양버들이라고 불렸던 포플러 나무란다. 아니 어디서 많이 들었던 말들인데, 여기서 알게 된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때 심어진 나무라는 것이다. 이후 1960년대도 녹화사업의 일환으로 많이 심었던 가로수라고 한다.


미루나무라는 단어 때문에 추억 속 토종나무일 거라 착각했었는데 원산지가 북아메리카인 나무였다. 게다가 먹을 게 없던 시절엔 미루나무의 열매를 먹었다고 하고 느타리버섯의 톱밥으로 사용되는 나무이기도 한단다.


이 정도면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비교해도 될 것 같다.

추억을 기억하고 나눌 수 있다는 것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 같지만 그만큼 인생의 깊이가 쌓여가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이제는 구례에서 미루나무 찾기가 쉽지 않다. 벚꽃나무, 산수유나무, 철쭉 등 다양한 꽃나무들은 쉽게 보이지만 미루나무는 어쩌다가 하나 둘 보인다.

아이들은 저 나무가 미루나무라는 것을 알까.

듬직하게 우뚝 솟은 저 나무가 동요 속에 나온 미루나무라는 것을 알까.

꽃나무들만 보다가 초록이파리 가득한 높이 솟은 나무를 보니 든든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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