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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사리 Mar 28. 2023

백발의 의무교육, 방송통신중학교

주말 등교하는 만학도의 기대와 회한

3월 봄이 시작되었다.

가로수의 벚꽃이 만개하고 있지만 예년에 비해 빨리 핀 벚꽃사이로 산수유꽃도 아직 보인다.

가로수 나무 아래에 개나리의 화사함과 산수유꽃의 작은 꽃봉오리들. 과수원 근처 고고한 향을 찾아가면 그곳은 매화가 잔뜩이다. 어느 곳에 가면 수선화도 군락을 지어 피어있고 개나리가 지면 진달래가 곧 피겠지. 또 더 피어날 것들이 많겠지 라는 생각만큼 구례는 발길 닿는 곳마다 꽃이 천지다.

3월 도로 양옆 가로수는 벚꽃이고 벚꽃은 온 동네를 연분홍으로 물들였다.

연분홍의 꽃잎들은 황홀하고 초록의 이파리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3월의 아름다운 구례, 나는 구례를 등지고 순천으로 향한다.

매년 이맘때 주말이 되면 순천연향중학교부설방송통신중학교로 향한다. 3월에서 5월까지, 특별한 일이 없다면 우리는 6시간 동안 한 팀이 되어 백발의 열정 넘치는 중학생들을 만난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대부분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필수 코스로 의무 교육을 받는다.

때때로 의무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의무교육이라는 존재자체가 미미할 때 태어나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세대가 있다. 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주말마다 시작되는 의무교육 방송통신중학교.


만개하기 전, 구례 벚꽃길


매년 3월부터 주말을 이용해 방송통신중학교에서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수업을 진행한다. 방송통신중학교는 한 달에 두 번, 주말에만 출석을 진행하고 나머지 대부분 수업이 이러닝으로 진행되기에 학기 초 이러닝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넷에 익숙해지도록 진행되는 교육이 ICT활용교육이다.


2018년 구례에서 정 붙이기 힘들어서 순천에서 다시 시작할 마음으로 갔다가 주말 남는 시간 한시적 경험으로 시작하게 된 교육. 첫 해는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백발 성성하며 완고할 것 같은 그분들에게 잘 가르칠 수 있을지 걱정이었고 가르칠 것이 너무 많은데 3시간 동안 그것을 다 하려 하니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실제 수업을 진행해 보니 이건 더 많은 불편과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학교의 시설은 예상과 다를 때가 많았고 학생들의 열의는 높았으며 실제 수업시간은 60분도 50분도 아닌 40분이었다. 당황스러움의 연속, 게다가 ICT 교육이라는 것은 정해진 범위는 있으나 학생들이 가진 ICT 환경은 천차만별, 게다가 학생들의 ICT 이해도도 천차만별이었다.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그렇게 6년째, 매년 3월이 되면 방송통신중학교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 마음은 두려움이었지만 지금은 배우는 마음과 경청하는 마음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내년에도 진행할지, 항상 미지수이다. 내년에도 교육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막상 닥치면 또 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매년 백발의 중학생들을 만나게 되면 겸손하고 다시없을 귀중한 경험이 되는 것은 사실이며 배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생긴다. 배움조차 풍족하고 다양하게 경험하는 요즘 아이들과 배움의 시작부터 모든 것이 두렵고 어려운 백발의 학생들. 중학생이지만 인생을 다 알아서 겁이 많아진, 그렇지만 큰 용기를 내어서 금쪽같은 주말에 배움으로 채우는 그들.

백발의 중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새롭고 두렵고 작아진다.

그들의 표정에서 설렘과 새로움, 후회와 기대에 찬 목소리를 듣는다. 그들이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이해하게 된다. 주름진 손으로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메모하며 동그랗게 뜬 눈으로 아기새처럼 바라보는 백발의 신입생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부모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또한 교육을 하는 강사로 성장을 경험했다. 그것이 전부일 것 같았는데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며 또 다른 성장을 경험한다. 결혼 전 수업을 할 때면 백발의 학생들은 두려움이 앞섰다. 왠지 그들 앞에 서면 작아지고 그들의 느릿함이 무서웠다.

지금은 나 자신도 느려지고 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삶에 익숙해질수록 느리고 천천히 가는 방법을 배워간다. 기억력이 전과 같지 않을수록 그들을 이해하고 길에서 만난 사람이 어디서 만났던 누구인지 기억 안 나는 순간들이 많아질수록 그들과 가까워 짐을 알게 된다.


그들의 주말은 위대하다.

그들의 시간은 쇠(金) 보다 단단하며 보석처럼 찬란하다.

그들의 주름진 손에는 회한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눈에는 빛이 가득하다.

어쩌면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바빠져서 수업을 진행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내 마음이 또 흔들리면 시간을 만들어서 또 하게 되겠지.

일주일밖에 안 지났는데 만개한 벚꽃 분홍빛이 하얀 눈꽃처럼 변해간다.

그들의 머리색깔과는 조금 다른데, 벚꽃의 분홍과 그들의 머리색이 겹쳐져 보인다.





매년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그들에게 배우는 것인지 가르치는 것인지 잘 모르게 될 때가 많습니다.

해마다 혼자는 아니고 보조강사님 두 분과 함께 셋이서 한 팀으로 움직이는데 매번 수업을 마치면 한숨과 함께 그들의 노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벚꽃 피는 봄, 신입생으로 시작하는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중학교 졸업과 고등학교 진학을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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