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 입성이라는 목표를 정한 후, 어차피 졸업이 목전이라면 우선 맨땅에 헤딩이나 해보자는 생각에 냅다 지원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뭐든 밑져야 본전이었으므로, 그 때 공고가 올라온 모든 언론사에 말이다. 우대 사항 같은건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음으로 언론계에 도전하며 써낸 몇 개 안되는 자소서들은, 내게 '올 합격'을 가져다주었다. 대학 입시 때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두 곳의 회사를 거치며 1년차 하고도 반년이 지나가는 지금, 나는 이것이 분명 '미술'이라는 전공 덕분이었을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게 되었다.
스스로도 몇 번의 면접관 경험을 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면접관의 입장에 서면, 정말 생각보다 지원자의 많은 것이 보인다는 것. 그러니 단언컨대, 스스로의 이야기를 잘 풀어낸다면 '미대생'은 단연코, 매력적인 지원자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 도달해내는 첫 미끼는, 당신의 스토리를 중점적으로 써낼 수 있는 삼대장-지원동기/직무역량/앞으로의 포부에 있다.
지원동기 : 당신의 콘텐츠로 면접관을 후킹하는 '인트로'
중요한건, '찐'스러운 놈이 이긴다는거
앞선 글에서 나의 '지원동기'를 스스로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지만, 알다시피 회사란 열정만 어필해서 뽑아주는 곳이 아니다. 앞서 내용으로 담아낼 진심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그를 담아낼 조리법이 필요하다.
다들 '잘 쓴 자소서 예시'라고 하면 어느정도 찾아봤을 것이다. 사O인 등에서 합격 자소서들을 보면, 대략 아래와 같은 구성을 잡고갈 수 있다.
(1) 당신이란 사람의 목표와 해온 일
(2) 그 경험 중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 이 회사가 당신에게 감명을 준 이유
(3) 이런 가치관과 경험을 가진 당신이 이 회사에서 갖는 포부
내 경우, 넣을 소스는 아래와 같이 정의해볼 수 있었다.
(1) 목표 =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해석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일', 해온 일 = '미술품,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의 콘텐츠 창작 경험'
우선 먼저 말씀드릴 것은, 미술 전공이란걸 변명할 필요는 없다.(★★★) 전공은 아무튼 내가 열심히 공부해온 것이고,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어떻게 당신을 지금의 일까지 도달시켰느냐다. 목표와 해온 일, 그리고 이 일을 하고자 하는 이유를 잘 연결시킨다면, 적어도 자소서/지원동기라는 면에서는 충분히 설득해볼 수 있는 문제다.
내 경우, 목표에 가기까지의 스토리는 동일했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통학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사회에는 다양한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보고자 교내 인권부에 들어갔고, 내가 공부해온 '콘텐츠 기획, 제작' 능력으로 여러 이슈에 효과적으로 관심을 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왔다. 작품 활동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능력은 키운 방법이었다. 결국 미술 또한 스스로가 사회에 받은 영향과 그에 대한 생각을 콘텐츠로 풀어내는 과정이었으니까.
아마, 콘텐츠 제작이 아니더라도 여러분이 지원할 직무의 경험도 돌이켜보면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넣을 것이 없던 첫 이력서에서, 동아리 신입환영회 책임자, 근로장학생 등 쓸 수 있는것은 뭐라도 적었던 기억이 난다. 쓸게 없다면 뭐라도 해왔던 것을 나열해보자. 그리고 일기처럼, 경로를 천천히연결시켜보자.당신 경험의 의의를 정의할 수 있는건 당신뿐이니까. 당신의 경험을 다시 읊어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의 길을 정의하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2) '(내가 관심있던 사회문제)'에 관해 이 곳이 제시한 솔루션
일단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모르는 회사만 한가득인게 정말 당연하다. 이력서를 쓰다보면 당신이 좋아하는걸 떠나 모르는 회사를 찾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공고는 괜찮은데 회사가 뭐하는덴지 모르겠네...'라고 생각된다면, 일단 그 회사를 가볍게 공부해보자.
자소서는 성의의 문제다.약간의 차이를 주는 것으로도 글의 퀄리티는 점점 올라간다. 그런만큼, 자소서의 큰틀을 잡더라도 회사마다 같은 내용을 복붙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회사도 애정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보이기 마련이므로, 바로 이 (2)의 디테일만은 조금씩 수정하기를 꼭 바라는 바이다. 거짓말이라 자조하기보단, 당신이 그곳에 가고싶은 이유를 직접 만들어보시면서 말이다.
솔직히, 당시 내가 지원했던 곳들 또한 거의 처음 보는 곳들이었다. 그러나 마침 일간지/영문지/경제지로 성향이 모두 달랐기에, 전부 조금씩 내용을 달리할 필요가 있었다. 먼저 회사에서 내놓은 최근의 콘텐츠들, 회사의 역사를 모조리 읽고 나와의 연관성을 파악했다.
ⓐ영문지 : 당시 매우 심각했던 N번방 문제 때문에 탄원서와 외신 메일 총공 등에 참여하고, 학생회 차원에서도 관심을 촉구하고자 했던 일들이 있었다. 그 활동들을 하며 외신과 영문 매체가 이 사건을 강력하게 규탄하는 사례들을 많이 보았고, 국내 여론 형성에 이러한 동력이 매우 중요하다는걸 깨달은 경험이 있었다. 그 때의 경험과, 국내외 이주민들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한국뉴스의 중요성에 대해 적어냈다.
ⓑ일간지 : 가장 정석적이었다. 당시는 언론사 뉴미디어 채널이 막 끓어오르던 때였기에, 뉴스의 콘텐츠화라는 화두가 대단히 큰 이슈였다. 언론계는 꽤 보수적이기에 이들 직무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란이 오갔지만, 한때 이런 일에 무관심했던 나는 내가 관심있던 당시의 큰 화두들을 보기좋게 풀어낸 뉴미디어/인터랙티브 뉴스들에 감탄했고, 그에 이바지할 수 있음을 어필했다.
ⓒ경제지 : 경제지이므로 나의 스펙이 단연코 가장 열세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는 마침 청년층에 주식 열풍이 불 때였고, 당시 대세를 타고 처음으로 경제 정보를 봤던 입장에서 "이런 신세계가 있었다니!"하고 놀랐던 경험이 있었다. 그 때, '경제 인지 격차'는 어디에서 올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비전공자의 시선이었기에, 다양한 경제 지식을 세대가 통용할 수 있게 만들겠다 했다. 또, 지원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전에 내가 굉장히 감명깊게 본 기사를 쓴 기자님이 계신 것도 한몫했다. 그 분의 기사와 같은 경제콘텐츠를 만들겠다고 했다.
참고로, 취직을 하면서 새삼 깨달은걸 남겨보자면, 세상에는 이름을 들어보지 않았어도 잘 굴러가는 회사가 정말, 정말, 정말 많고 세상일의 대부분은 그 모르는 회사가 하고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괜한 '중소기업 공포증' 같은걸 가질 필요는 없다.(스타트업=중소기업이다.) 일단 회사에 대한 공부를 해보자.(아무 회사나 들어가란 얘긴 아니다!!)
(3) '(이 회사의 인재상에 맞는)' PD가 되어, '(당신이 해결하려 하고, 이 회사에서도 수행하고 있는)' 문제 해결할 것임.
다음, '인재상'을 우습게 보지 말자. 추상적인 키워드로는 와닿지 않는게 당연한 한 편, 스스로도 면접관이 된 후 깨달은 바, 회사는 기본적으로 회사의 뜻에 공감하고 오래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회사의 인재상이란 결국 당신의 목표=우리의 목표냐, 당신의 일하는 스타일=우리의 일하는 스타일이냐다. 회사란 결국 공동의 큰 목표를 갖고 남의 일을 함께 해주는 곳이니, 이왕이면 서로 꿈이 맞는게 좋지 않겠는가?
회사에서 어째서 당신의 포지션을 뽑고 있는지, 해당 분야의 동향을 대략적으로 이해하고 녹여낸다면 플러스다. 이후 포부에 관한 질문이 없다면 여기서 간략하게 한 줄로 당신의 목표를 작성해낼 수도 있기도 하다
직무역량 : 미대 출신이라 못할 것 같다구요?의 역발상 만들기
"MZ세대라 그렇습니다" 전법처럼
알다시피, 미대생이라 하면 일터 외에서도 으레 받는 오해가 있다. "일을 쉽게 관둘 것 같고", "자기 고집이 셀 것 같고", "쉽게 멘탈에 타격을 받는"... ...솔직히, 나는 그 편견에 잘 맞는 사람이었다.(그래도 실제로 관두진 않았다) 그런 독고다이가 없으면 미술을 어떻게 하겠냐는 생각을 하는 한 편, 아무튼 우리는 지금의 관문을 통과해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앞까지의 이미지를 상쇄해낼 수 있다. 일단, 우리는 관련 직무경험이 별로 없을 것을 대비하므로, '미술하며 배운게 뭔지', '미술할 것 같은 성격이 어떻게 직무에 도움이 되는지' 비로소 적어낼 차례다.
먼저, 내 경우 PD 직에서나, 지금의 사업기획 직에서나 공통적으로 빛을 발했던건 기획이었다. 기획이란 능력을 파고들어보면, 트렌드를 발굴하고 소재를 조합하는 능력, 소비자를 정의하는 능력, 그리고 전반적인 상황을 조율하는 능력 등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들은 능력으로만 적었을 때는 추상적이기에, 이러한 능력을 당신이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안다는 것을 경험으로 보여줘야 한다.그러나 여기에 대단한 것은 필요없다.
내 경우는 (1) 학생회 인권 관련 콘텐츠 (2) 동아리 이미지 쇄신 콘텐츠를 적어냈었다. (1)을 통해 무거운 내용이라도 사람들이 흥미롭게 접근하고 얻어갈 수 있도록 인트로와 형식을 정리했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2)는 올드했던 동아리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새로운 슬로건, 이벤트를 기획하고 신입생을 모객했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을 하며 온갖 기상천외한 일들을 0에서 완성까지 끌어올렸기에 왠만한 일은 견딜 수 있는 '맷집'이 있었다.
결국엔, 미술을 이용한 경험이었다.
미술을 했기에, 콘텐츠에 소비자가 얼마나 필요한지 느끼고, 제한없는 환경에서도 콘텐츠를 제작해보고. 프로젝트를 창조해냈다. 미술이 '기획과 실무'를 아우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미술을 한 것은 분명히, 당장은 저 면접관이 모르더라도 우리에게 확실한 도움이 되었고, 이제는 말로써 설득해나가면 된다.
앞으로의 포부 : 결국 중요한건 '지금의 일'에 대한 관심. 한방의 훅
이쯤 왔다면, 이제 마지막은 앞선 내용들을 한 문단으로 정리하는 한 방의 훅이다. "이런 내가 이 회사에선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앞서 보여준 당신의 직무에 대한 고민과 이해도를 보여주자.
"그러니 이런 나를 뽑으면 당신 회사에서 이렇게 성장하고, 당신들의 비전을 이만큼 성장시켜주겠다. 나만한 사람 없을거다"라는 마인드로 말이다. 창피해할건 없다. 어차피 지금 공작새 깃털이라도 내보이지 않으면 안되니까.
이로써 미대생인 당신의 '취준생으로서의 캐릭터'들을 정리해냈다면, 이제 한 관문은 통과다.
미대생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항상 눈을 뗄 수 없었던 그 책.
경험 이후 얻게 된 확신이 있다. 미술을 전공한 내가 야속할 때도 있었지만, 미술을 해온 것은 내가 원하는 일을 찾는 과정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미래는 잘 모를 일이겠지만, 우선 지금의 일들을 해내는 데에 충실해보려는 입장에서는 확실하게, 그러하다.
물론 이는 '인턴 자소서'까지의 영역이고, 이 올합격 사례는 운이 좋았던 덕이며 굳이 따지면 '트렌드'에 잘 맞았기에 가능한 일이었기도 할 테다.
지금부터의 과제 - 지원하려는 회사의 강점과 약점 분석, 무엇을 만들어내고 싶은지 등의 문제는 이제 당신의 공부에 달려있다. 다만, 회사와 한 번 진하게 엮여보자는 '직진력'으로 회사를 좋아해보자. 맨땅에 헤딩이 생각보다 술술 풀릴지도 모른다. 미대생의 맷집으로, 0에서 완성까지 만들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