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공을 원망하기부터, 직업인으로 자리잡기까지
"다음 직원도 미대로 뽑아야겠다"
최근 회사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0에서 1을 만들어야 하는 스타트업에서의 칭찬. 어찌보면 '내걸 만드느라 잡부가 되어버린' 미대인들의 웃픔을 상징할 수도 있겠지만, 멍게씨는 뭘시켜도 걱정없다, 는 그 말은 매일 수면 아래 물장구를 열심히 치고있는 요즘의 내게 제법 힘이 되었다. 나름의 주체성과 다능인으로서의 힘을 조명받는 말이었으므로, 기뻤다.
처음 이 시리즈를 썼을 때, 나는 명백히 화가 나 있었다. 아무 현실도 알려주지 않았던 예대생활이 짜증나서, 취업률이 낮은 과라는 조롱에 화가 나서, 우리를 이루고 있는 이 환경이 어떤지 말하고싶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다시 이 시리즈를 썼을 때, 그보다는... 이 험난한 회사생활에 더없이 강인할 수 있는(!) 미대인의 능력에 대해 말하고싶었다.
이 글은 순수예술을 너무나 애정했던 미대생으로서의 취준에 관한 글이지만, 단순히 취준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대학생의 가장 큰 난관인 취준을 매개로 하여, '미대생'이란 경험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가 배워온것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라고, 우리가 가장 잘 아는 강점이야말로 더 바꿀 수 없는 가치라고. 예를 들면 이런 능력들이다.
(1) 0에서 1을 만드는 사고력
미대인들은 이미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경험을 수도없이 많이 해왔다. 머릿속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레퍼런스를 수집하고, 끝까지 마감을 해보고,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하는 기획력을 갖추고 있다.
(2) 0에서 1을 만드는 체력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실험해내는 체력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로는 요구받은 방식으로도 말이다. 조금 시간이 걸릴지라도, 결국에 제때 온힘을 다해 답을 찾아내는게 우리의 능력이다.
사실은 요즘도 헷갈린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쌓아왔던 능력이 볼품없는 것이었을까?하고. 그러나 돌이켰을 때 내가 만난 미대인들은, 더없이 똑똑하고 풍성한 사람들이었다.
미대인은 극단의 자유 앞에, 자신의 것을 세우는 일을 경험해본 사람들이다. 이렇게나 열심히 사고하고, 말하고, 생산하는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이들이 '자신만의 가치'를 부르짖는 지금 시대에 얼마나 빛을 발할 수 있을까. 힘들때면 그렇게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던 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내가 배운 것이 볼품없다고 느껴질때면, 회사생활 앞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될 때면 되새긴다. 우리는 세상이 원하는 한끗다른, 색다른 답을 만드는 법을 배운 이들이라고.
이제 새로운 사회로 나가려는 미대인들에게, 미술을 전공한 것이 우리의 자랑이길,
이 경험이 앞으로의 우리에게 더 큰 길을 열어주는 여정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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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면 길었던 시리즈가 끝났습니다.
부족한 이야기를 재밌게 봐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
혹시, 미대인 취준에 관해 궁금한 이야기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조금 더 이어가볼까 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기다리는 동안 또다시 좋아하는 이모저모에 관한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